善 ;

< 눈뜬 사람 천명에 장님 천명 > 이라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이치를 아는 이가 천명이면 모르는 이도 그만킴 은

있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사회란 선한사람, 악한사람이 섞여 살기 마련이란 뜻도 된다.

도덕이나, 윤리가 사람의 행동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할때, 그 가치기준이 다르다고 할수 있겠지만, 

이땅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다면 엄연히 덕목을 다루는 규범과 가치기준 의 질서가 정연하게 있어야 하고

이를 통제하는 사회제동 ( Control mechanism ) 이 있어야 하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사회를 떠나서 개인은 없다. 사회가 먼저냐 ? 개인이 먼저냐 ? 하는 문제는 닭 과 알의 문제와도 같은 이론적인

문제라 하며 덮어 둔다 치드라도, 이것을 역사적인 문제로 본다면 어느 한편의 주장에 의하여 결정, 긍정 되여

질것이 아니라는 것, 도 알아야 할 것이다.

사회와 개인이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다. 개인과 사회(집단)는  상호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마추어 가야 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 적대시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말 이다.

역사시대 이든, 그이전의 시대라고 해도, 그 어떤 단계의 시대에 살았던 인간이라면, 하나의 사회 ( 집단 ) 속에서

태여나는 것이고, 출생 직후부터 그 소속된 사회 (집단) 로 부터 그들의 속성대로 만들어 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라든가, 유전의 문제를 떠나서, 그가 길러진 집단으로 부터 획득될수 밖에 없는 획득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어릴때부터 얻어지는 관념이란 타인으로 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 사회로 부터 유리된 인간에게는

언어는 물론 정신마저도 갖일수 없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인도에서 발견된 늑대 소녀들의 예로 보아도 알수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알이 없다면 닭도 없을 것이고, 닭이 없다면 알도 없다. 個 (개 ) 가 勝(승) 하면 사회(집단) 는

亡(망) 한다 . 개인과 사회 (집단 ) 의 관계가 원만 하게 될때, 우리는 이땅에 Utopia 에 가까운 세상을 구축할수가

있다. 이에 앞서서 우리가 알아야 할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는 누구인가 ? 우리를 조정하고 있는 나 는 ,궁극적으로

나를 조종하고 있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 를 알아야만 한다.  인간의 마음 51 개를 알려고 하는  잘된 이론이

유식학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스고 있다. 勝義善인 無爲法을 터득한 사람 에게는  이 글은 무의미 하다. 

유식에서 말 하려는 善을 이해하는데 도음이 될것 같아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 과 순자(筍子) 의성악설(

性惡說) 과의 비교연구 ( 성낙훈 (成樂熏씨의  논고 ) 의 일부를 옮기 면서 함께 생각해 보려 한다. (여기 옮기는

글은 원문과 다를수 있음)

 

* 孟子의 性善說 과 筍子의 性惡說의 比較硏究 , 成樂熏 論文 中에서;

唐儒(당유) 韓愈(한유)의 말에,

< 후세의 학자들이 孔씨를 높이고 仁義(인의)를 숭상 하고 왕도를 귀히 여기고 패술(覇術)을 천히 여길줄 아는

것은 孟子의 공이 홍수를 다스려 중국을 편안케 한 우(禹)의 공에 못하지 아니한 것이다 > 하였다.

이것은 孔子 이후 유교사상에 있어서 孟子의 중요한 지위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孟子의 학설의 특징은 性善說에 있다. 그가 말한 仁義는 性善說을 근거로 하였다.

송유(宋儒) 정자(程子) 는;

<孟子 가 세상에 크게 유공한 것응ㄴ 性善說을 발명한 때문이다>  하였다.

孟子가 宋代(송대) 신유교학자들의 극히존중한바가 된것은 性善說 때문이다.그것이 宋代 신유교철학의 기본이

되였다.그리하여 <孔孟의 學> 이라는 말이 생기기까지 되였다. 孟子보다 조금 늦은 전국말기에 孔子의 學을

현양한대유가 筍子인데, 筍子의 학설의 특징은 性惡說 이다. 漢儒(한유)들의 인성론(人性論)은 대개 맹자와 순자

를 종합, 절충한것이었느데, 송대에 이르러서는 孟子의 성선설 만이 토용되고 筍子는 도(道)를 모른다고 배척을

받게 되였다. 지금 여기서는 양가의 설을 비교연구함으로서 그들이 각각 다르게 주장하게 된 근가를 대조하고

다시 서로 공통된 점을 발견하는 동시에 후세에 준 영향을 고찰하고자 하는 바이디.

 

性의 자의에 있어서는 맹자와 순자와의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 배우지 아니하고도 능하고 힘쓰지 아니해도 하는것> 이것이 性( 8 識을 의미한다, 나의 주석)의 자의이다.

그러나 性字를 응용하여 性의 내용을 말함에 있어서는 각각 지칭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이것이 性善, 性惡으로

筍子는 心, 性, 情 삼자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정의를 내렸다.

< 生의 그러한 바를 性이라 한다. 일삼지 아니하고도 절로 그러한것을 性이라 한다. 性의 좋아함, 미워함 , 기뻐함,

성냄 , 슬픔 , 즐거움 이것을 情이라 한다. 情이 그러한것을 心이 택한다. 이것을 생각이라 한다. 생각이 쌓여

행동으로 익혀서 이루는것을 僞(거짓 위)라 한다.( 筍子正名篇)

이것으로 본다면 筍子는 心 과 性情을 구별 하였다. 그가 말한 性은 사려선택하는 心을 제외한 情性 만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性惡篇에 따르면  情性만을 순응할때는 惡이 된다는 것이다. 나면서 부터 利 (이로울 이, 마나식)

를 좋아함, 미워함, 성색(聲色)을 좋아함이 있는데 여기에 순응하면 쟁탈이 생기고 음란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筍子의 性惡說의 골자다. 그러고 본즉 그가 말한 性은 情性만을 말한 것이요 性의 惡을 다스리는 (對治)

仁義法正(인의법정) 은 心에서 나옹다는 것이다.이것은 情惡說 이요 心惡說은 아니라고 할수 있다.

 

이제 맹자가 지칭한 性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자.

筍子는 감동하는 情과 사려하는 心과를 구별하고 情만을 性이라 하였고 仁義는 心의 사려에서만 이루어 진다

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孟子는 情과 心을 구별하지 않고 한꺼번에 둘을 포함하여 性이라고 불렀다.

<측은 한 마음은 仁 이다(測隱之心)> 하면서,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급히 구하려 하는 동정심을 예로하며

이것은 감정과 마음을 구별하지 아니한 것이라 하였다. < 중인의 입에 동일한 기호가 있으니 그것은 맛난음식이요

중인의 눈에 동일한 기호가 잇으니 그것은 미색이다. 중인의 心에도 동일한 기호가 있으니 그것은 理義(리의)다

理義가 우리의 心을 기쁘게 함이 육미(肉味 고기맛) 가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함과 같으니라> 한것을 보면,

그가 말한 心은 역시 사려인지 감정인지를 구별하지 아니한것인 동시에 心이 性을 말하는 것이라 볼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孟子역시 감성과 마음을 (사려,思慮) 을 구별하여 말한 데도 있다.

<소체(小體)를 따르면 小人(소인) 이 되고 대체(大體)를 따르면 대인(大人)이 된다. 이목구비는 소체요 心은 대체다

이목구비는 思하지 못하고 物(만물 물)에 접촉하여 흡인할 뿐이나 心은 思하는 것이니, 思하면 得(얻을득) 하고

不思하면 不得한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준 혜택이디> 하였다. 이것은 性善의 근거를 사려하는 마음에 둔

것이다. 감정만으로는 善이 되질 못하고 사려하는 마음만이 善이 된다는 것이다.앞에서 말한 < 측은지심>은 

情善說이 되는 것이고, 여기 인용한<소체대체>설은 情善이 아니라 情과 구별되는 心의 善이다.

筍子의 性惡說은 情만을 性으로 본 것이요 孟子의 性善說은 느끼는 情과 사려하는 心을 구별하는 경우와

구별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논리의 통일성에 의혹이 생기게 되지만   그런것은 아니라고 論은 한다

孟子가 측은 등의 四端(사단)을 말 할때, < 知(알지)가 四端을 모두 확충 해야 한다> 또 <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모두 내가 갖이고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지 아니한다.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느니라> 하였다.

이것으로 볼때, 당초에 善端(선단) 의 발로 를 말할 적에는 측은의 程을 들었으나 智(지혜지) 가 그것을 확충하지

못하고 心이 사려하지 않으면 < 인의예지 > 를 행할수 없는 것이고 보니 측은의 情과 그것을 확충할줄 알고

생각할수 있는 < 心 > 그것이 합하여 性善이 되는 것이라는 논리에서 이다.

그러면 뱅자는 性은 완전히 선하고, 情과心에 악이라고는 없다고 보았느냐 하면 그런것은 아니다.

<측은지심은 사람마다 다 있고 선악지심도 사람마다 다 있고 공경지심은 사람마다 다 있고 시비지심도 사람마다

다 있으니 측은지심은 仁(어질인)이요, 선악지심은 義(옳을의), 공경지심은 禮(예절예), 시비지심은 智(지혜지) 다.

인의예지는 내가 본시 가졌지만 思(생각할사) 하지 않는도다. 그러므로 구하면 얻고 버리면 失(잃을실)한다>

한것을 보면 <인의예지>가 心인 동시에 그것을 생각하며 구하는것도 心이다. 이것뿐이라면 心에는 惡 이

없게 되지만 그와반대로 <인의예지>를 생각지 않고 버리는것도 역시 心이 나니라고 할수 없으니 惡의 기원도

역시 마음이 되고 만다. 그리고 孟子가 <소체대체>를 구별하며 말 할때 대체인 心이 思하면 得, 不思면 失 이라고

한것은, 말하자면, 心이 善을 思하여야 한다는 말이지. 일반적으로 心이 思하는것이 善이 된다는 말은 안ㄴ 것이다.

情에 있어서는 筍子가 성악의 근거로 열거한 호리(好利함, 성색(聲色)을 좋아함이 사람에 있다는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입이 맛에 대해서와 눈이 색에 대해서와 사지가 안일한데 대한것은 性 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命(목숨명)

이 있는 가닭에 군자는 그것을 性이라 하지 않는다> 했다. 이것은 신체의 욕구까지를 性이라고 긍정한 것이었다.

다만 이런것은 사람으로서 얻으려고 힘쓸것이 안기에 <인의예지>만을 性이라하여 四端(4 가지 단정한 마음)을

확충하기를 가르친 것이다.대체로 孟子는 情에 있어서는 <이목구비등의 감관> 에 따르는 정욕은 惡의 기원이

되는것으로 보았고 意識(의식, 제 6 識)으로 되는 측은, 선악, 공경, 시비 등의 정서는 善으로 보았다.

心에 있어서는 <인의예지>가 내가 갖이고 있는 본래의 마음 그대로 로 思 하는 心 이라면 善 이요 그 반대라면

그 心을 不善 이라고 보게 된다. < 仁은 人心이다. 닭 과 개 를 잃어버리면 찾을줄을 알면서 心 을 잊어버리고는

찾을줄을 모르는구나> 한 것은  仁心을 잊어 버렸을 때는 마음이 전연 無하다는 말이 아니고, 仁心이 없으면

사심(邪心,간사한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본심을 잃어 버렸다는 뜻이 된다.

 

筍子의 性惡說에 대하여 알아 보자;

<눈이 색을 좋아하고 귀가ㅡ소라를 좋아하고 임이 맛을 좋아하고 마음이 利 (이로움)을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사람의 情性에서 나온 것이니, 자연적으로 감동하여 생기는 것이다. 성인은 마음으로 사려하여 인위적으로 예의를

내고 법도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보면 예의법도는 성인의 僞(위, 인위)에서 나온것이요 사람의 성(정성)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성인이중인과 동일한것은 性이요 중인과 구별되는것은 僞(인위) 이다> 하였으니이것이

情惡心善說(정악심선설)이 된다.그러면 筍子는 반드시 情性에는 惡의 기원만이 있고 善이라곤 전혀 없다고

보았느냐 하면 역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볼수 있다.

< 禮는 人의 情을 養(기를 양) 하고 欲(바랄욕)을 養하는 것이다. 人은 나면서 욕망이 있어 구 하는 것인데 구함에

있어 한계가 없으면 다투고 혼란해진다. 그러므로 선왕이 예의를 마려ㄴ하여 한계를 지어 사람의 欲을 養하고 

사람의 구힘을 충족 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욕구와 대상되는 물질에조화를 준다.이곳이 禮가 생긴

까닭이다. 禮는 養하는 것인데 5 味(맛미)의 조리는 입을 養하고 아름다운 색채는 눈을 養하고 음악은 귀를 養한다.

物을 절도있게 하여 사람의 情性을 養한다. 사람이 利 만을 구하면 해가 생긴다. 그러므로 예의에 위주하면 情性이

모두 얻어지고 情性만을 위주하면 예의를 잃게되거니와 情性도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情性을 養하고 충족 시키는

것이 된다고 한다> 하였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情性도 惡만은 아니요 예의는 情性을 없애는것이 아니라 도리혀 

그것이 바로 情性을 養하게 된다는 것이다. 筍子는 또 이렇게도 말 한다. 

< 性은 소재요 僞(인위적인 예의) 는 문채(文采)의 조리(條理)다.性이 없다면 僞가 시행될 터전이 없고 僞가 없다면

性이 저절로 아름다워 질수가 없다 천지가 합한 뒤에 만물이 생하고 음양이 상접해여 변화가 일어나는것 처럼

性(情性)과 僞(예의) 가 합한 연후에야 천하가 다스려 진다 > 이것으로 보면 性을 惡으로만 본것도 아니다. 

筍子가 그의 性惡篇에서 말 했던 性惡은 情性을 그대로 순응만 하고 心 으로 사려하지 않으면 예의법도가

없어지게 되고 쟁탈과 음난이 일어 나고 만다는 것을 말 한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筍子가 孟子의 性善說을 반대한 것은 孟子가 性과 僞와의 구분을 모른다고 비난함과 동시에 性善說의 미숙은 

情性을 그대로 방임하여 예의에 힘쓰지 아니할 것이라고 보았떤 것이다.(중약)

 

끝으로 특히 첨가 할것은 性에대한  맹자와 순자 와의 견해이다.  心이 善 할수도 있고 惡할수도 있다는 것에 

양가가 모두 공통점을 갖이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 했던 것과 같지만  여기서는 맹자나 순자가 말한 心 의

최고최선의 경지에 관한 견해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아 결론적으로 말해 보려 한다.

 

맹자는,

<그의 心을 盡(다할 진) 하는 자는 그의 性을 알고 그의 性을 아는자는 天(하늘0을 안다.. 하엿으니 이것은 

心, 性, 天 이일치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되고 < 誠(정성 성)은 天의 道(길 도)요, 誠을 생각함은 人 의 道 다>

하였으니 誠을 생각할줄 아는 心 의 능력은 天에 통한다는 뜻이다. 心 과  性 을 구별하지 아니한 맹자는

 心 을 盡 하여 性을  知 하는 수양이 곧  天  과 일치하는 최고의 경지에 달할수 있다 는 것으로 최고선을 말하고

다.  

 

순자는,

性 과 心 을 구별하여 性惡의 반면에 있는 心 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는 것이다.

< 人이 어찌 道 ( 만물을 저울질 하는 것을 道라 했다)를 아는가. 心 으로 道를 알수 있다. 心 을 명령하기는

해도 명령을 받는데는 없어 자행(自行) 이요 자지(自止끝일 지)다. 心 은 虛(빌 허) 하고 靜(고요할 정) 하고 

純一 하다. 스러므로 道를 안다 > 하였다.

이것응 心 의  능력이 최고진리인 道 를 알고 거기에 합치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맹자나 순자나 모두 인간의 정신능력(맹자의 性이건, 순자의 心 이건) 이 최고최선이란 것을

인정하는 데는 차가 없다는 것이다. 

실천윤리로 사물을 접촉한다는 면에서는 인간성이 善이라 할수도 있고 惡이라 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인  영역으로 접근한다고 한다면 최선이며 최고라고 할수 있다는 그것이 맹자나 순자의 인간성에 관한 이론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될 거이다. 

이상 善에 관한 말을 들어 보았다. 잘황하게 말한 선에 관한 이론이 앞으로 이야기할 유식학에서의 선을 말 할때

도움이 되길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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