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 ( 우리 어덯게 살아 갈 것인가 ? )

 

心所(마음) 의 category 첯번째는 遍行(편행) = 觸.作意.受.想. 思. 이것은 善惡이전의 마음의 작용이며 어떤 마음과도 같이 작용한다고

말 했다.두번째는 別境(별경)= 慾.勝解.念.定.慧. 이것 역시 기본적으로는 편행과 같이 善이전의 작용인데 편행과 다른점은 전부가

하나같이 작용하는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편행, 별경 참조). 즉 대상에 대하여 따로따로 선별하면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둘은 善이라는 명제를 꼬집어 이렇다 말하지 않고 개요적인 입장에서 말 했다고 할수 있겠다. 

 心所 六位중 세번째가 " 善 " . 여기서는 무엇이 선이며  유식이 바라보는 선이 무엇이며 무엇을 전제로한 선인가 ? 즉 선의인식이

관념적, 지적, 이론적 인식으로 충분 할까 아니면 이것을 초월한 종교적 인식이어야 하는가 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 제시 된다.

유식불교의 특징 이라면, 선악, 染靜(염정=물들은 마음 순수한 마음) 과 같은 가치관등이 배제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적나나한 자태을

확실히 인식 하는데서 출발한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 한다면  유식은 인간심리의 객관적인 분석이라든가, 법측의발견 따위 철학적인

이론을 말하지 않고 그 목적이라면 단순이 "우리는 어덯게 살아야 하는가 ?" 그런 의미에서"우리 어덯게살아가야 하는가 ?)"를 우리들의

마음의작용의 면으로부터  대답하려고 한다고 하는것인데 이것이 善의 心所라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선의심소를 갖인다고 하는 것은

불교에 (종교라고 하자) 접근하기위한 첫걸음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유식에서는 善의 心所를 11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1. 信(믿응 신), 2. 慚(부끄러워야할 참), 3. 愧(부끄러워할 괴) 4. 無貪(무탐 탐하는

마음이없는것)  5. 無瞋(성내지 않음), 6. 無癡(어리석지 않음), 7. 勤(부지란항 근), 8. 安(편안할 안), 9. 不放逸(불방일, 바른길을 떠나지

않음) 10, 行捨(행사, 버릴것을 버림) 11. 不害(불해, 해치지 않음) 의 11 가지인데 이중에서 安은 定(선정에 들어 마음이 고요해 졌을 때)

 에 서만 작용하는 마음이므로 우리가 禪(고요할 선) 으로부터 나오면 불교에서는 진정한 고요는 없다하여 평상시의 선의심소 작용

에서는 이를 제외하고 열가지의 마음만이 작용한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선방에서 선정에 들었다면 11가지 선의마음은 전부

작용하게 된다. 여기서 잠시 사전은 선이라는 곳에서 우리에게 선을 어덯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이숭녕편수 국어 대사전에 의하면 1. 착함, 훌륭함, 2. 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 영어 Goodness 다른 사서에는 서로 잘 지난다 등이

올려져 있다. 이것을 보면 도덕적영역, 인간상호 횡적관계,에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유식학에서는 善을 어덯게 정의하고 있는가 ?

 

成唯識論에서 우리는 두가지의 답을 들을수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四種善 (사종선) 이다.

사종선이란 1. 自性善(자성선) 2. 相應善(상응선) 3. 等起善(등기선) 4. 勝義善(승의선) 의 4 가지를 말한다(별경을 참조)

1. 自性善= 11가지의 선의심소 그 자체를 말 한다.

2. 相應善= 11가지 선의심소와 같이 작용하는 다른 심소 즉 편행, 별경을 말하는데, 예를든다면 "편행의 심소" 는 三性說과 통한다고

하는것이다. 선의심소가 작용할 때는 그것은 선한마음과 작용한다면 선이요, 악의마음과 작용하면 악이라는 것이다. 자성선이

약재라고 한다면 상응선은 약을 대렸을 때 생겨난 액체가 약 이라는 것이다.

3. 等起善= 등기선이란 자성선 과 상응선에 의하여나온것이라 보는데 無表色(무표색, 선악의 행위를 할수있는 힘을 잠재하고 있음)

과 不相應行(불상응행, 물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것) 을 말 하는데 善의 種子(종자) 라고 하는 것이다.

4. 勝解善= 승해선은 無爲法(무위법) 불생불멸의 영원한 진리 그 자체라고 말 하는 眞如(진여,이말은 우리라면 누구나 다 아는말)

무위법이란 원시불교에서는 11 가지, 대승으로 오면서 6 가지로 줄었고 여기서 설명하는것을 성략하겠지만 그저 진여라고 알면된다.

1. 2. 3. 의 마음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냈다고 보게 되지만 # 4 의 승의선 은 진리(무위법)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여기서는 어떤 설도 의론을 전개하는것이 아이라 단순히 "선이라는 마음" 의 상태를 말하고 이것을 선이란무엇 에 대한

구체적인 답으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최후의 # 4의 승의선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 주목하여야 할것은 선의정의 란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다르다고 보기 때문에 이것을 상대적인 차원에서 탐새케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 勝義善" 이란 이것을 초월 한다. 시간, 지역, 따라서 거기로부터 오는 인간의사고 희망같은것을 초월한 절대 선 이라고 하게 된다.

이렇게 말할때, 분명한것은 선한 마음이 지적, 관념적, 이론적 인식의 선을 이런것들을 초월 할수 있는 신앙 이라는 무조건적인 믿임인

종교적인식의 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이런 종교적 인식의 최종적인 도달점으로가는 길을  無爲法이라 불교는 말한다.

조곰도 빈틈이 있는 思量(제 7식 이기심)을 용서치않는 그런것이 무위법이 된다.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불교는 초월적실재를 부정

한다는것을, 따라서 무위법은 초월적인 실체는 아니다. 無常무상), 無我(무아)의 연기의 이치에 따라 구체화된 진리이외는 아니라는것.

(이것을 잘 설명한김충진 동문의 (제행무상, 제법무아 글 참조하시라)

무상무아 는 진리, 진리란 이 외에는 없다. 역설적을 말할때, 무상,무아 란  유의법측이지만 법칙이라하는 것으로만 말 한다면 진리리고

하게된다. 진리라고 하는것은 ㅜㄹ교에서는  무위법이다. 무위법을 진리라고 하는 점에서 본다면 무상,무아은 유의법이 된다.

그래서 無爲法과 有爲法과는 非一非異의 관계가 되게 된다.(비일비이가 댓글에서 굉장한 선풍을 이르킨것이 생각나서 말해 보았다)

승의선은 무위법을 말하는 것 이라는것만 기억하자.

 

두번쨰의 善의 정의는 무엇인가 ?  能此世他世順益故善 이라고 論에서 적고 있읍니다.

善이란 금생뿐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오지안은 내세(未來世) 까지에 영향을 준다 라는 답이다.이렇게 말 한다면 인간존재를 현세에만

국한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하는것은  고작 8, 90 에 불과하다. 이것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생의 전부라고 치부하게되는데 정말 그것이 전부 일까 ?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이것을 훨씬 넘에서 존재한다. 이것을 어덯게

설명할것인가 ? 에 대한 답이다. 우리의 역사는 무수한 조상들이 쌓아올린 업적을 계승한 역사이다. 따라서 오늘의 나의 인생은

이 중에 하나의 작은점, 이런 작은점인 나의 인생이 하나의 족적으로 남아, 아들에, 손자에, 그리고 그 미래로 연속되는것은 아닐까 ?

이 전체가 인생이다. 이러한 심원한 정의가 유식학에서 말하는 승의선이 되고 불교가 종교성을 나타내는 일면이 아닐까 ?

다음글 에는서는 11 가지의 선의 심소를 딸따로 설명하면서 선한 심소로 깊이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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