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자유계시판에서 이야기 하던 유식불교를 이곳 인문학의 초대 로 옮겨 왔읍니다. 이유로는, 아무래도 이 글이 이곳에

적당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항간에서 그냥하는 속담에 " 술은 잔에 차야 맛이고, 님은 품에 들어야 맛 " 이라는 말이 있읍니다.

그 무엇이든 완전할때 비로서 그 진가를 들어 낸다는 뜻 으로 쓰는 말일것입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내어야 한다는 뜻도

되는것으로 나는 받아 드립니다. 유식불교를 여러분에게 소개 한것이 벌써 오래되였는데, 읽는 이가 적어, 접으려 여러번

마음을 먹었었는데 아무리해도 뒷맛이 께름직 한것이 뒤보고 밑 안 닦은듯 하였읍니다. 이전에 올렸던 " 禪 이야기 " ,

" 茶 이야기 " 가 중도반단 되였던것이 여태 나를 괴롭혀 왔었는데 이번마저 중도반단 된다면 어덯게 될것인가 하던차, 

몇몇 후배들과의 모임에서 유식론의  끝이 어찌되는것인가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비록 한사람이라도 읽어 준다면 써야지

했고, 이번만은 끝장을 봐야지 하는 나의 Ego 에서 이 장으로 옮겨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사람의 마음 6위 51개 를 이야기 함으로서 " 자신을 알라  " 는 이야기로 끝을 내려고 했던 대로 몇날이 걸릴지 모르는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자세한 해설을 이곳저곳에서 끌어드려 " 엿가락 늘리듯 " 한 이야기를 가급적 핵심해설만 이야기 하면서 끝을 낼것 입니다.  

 

5 . 思 ( 사 ) , 마음의 지향성.

     偏行(편행) 의 마즈막이 "  思 " 이다. 思란 넓은의미로, 의지(意志) 라고 할수 있껬다. 

성유식론 에서는 , "人 心造作以性爲 善品於心役業爲 " 사람의 마음을 조작하는 성질을 그 근본으로 하며, 선한마음을 불러 이르키는 역활을 업(業)으로 한다는 뜻일 께다.

二卷抄 (이권초 에서는, " 心 을,  善으로도,  惡으로도, 無記로도, 조작하는 마음(心) 을 그 성질로 한다 로 쉽게 말하고 있다. 조작이라고 쓸때, 그 뜻은 지어서 만듬 Building, 일부러 무엇과 비슷하게 만듬 Fablication 이라고 지금은 말 하는데

유식불교에서는 인간의 의지라고 읽게 됩니다. 인간이 집을 만드는것과 같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의지를 말하게 되는것이다. " 觸 " " 作意 " " 受 " " 想 " 이라는 생각을 통과하면서  인식 이라는것이 완성된다면, 우리들은 그 대상에 대하여 어덯게 행동하여야 하는것일까 라는 의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와같이 마음속으로 완성된 인식이 기반이 되여, 이것으로, 이번에는 이것을 행동으로 나타내게 되는데 이 원동력이 되는 것이 이제 우리가 이야기 하려는 " 思 " 라는 것이다.

유식에서는 이 " 思 " 를 분석해서, (1) 審慮思(심려사) ,  (2) 決定思(결정사)  (3) 動發思(동발사 ) 의 3 가지로 나누게 되는데, (1) 심려사 라는것은, 주어진 대상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는것, (2) 결정사 는, 그 생각된 것을 확실히 굳히는것, (3) 동발사 라는것는, 굳혀진 생각을 행동으로 이행시키는것, 이렇게 하여 행동으로 옮겨질때, 이것을 "業" 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業(업) 이란 이경우를말하게 된다.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내 業의 집적의 결과, 즉 "業報(업보), 業過(업과)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뢰야식"을 말하면서 " 總報의 果體" 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위의 말한것과 같은 뜻이다. 과거의 " 과체"가 오늘의 나를 이끌어 가듯 , 오늘의 業이 내일의 나를 끓어 낸다는 등식이 성립 된 것이다.이런 의미로 볼떄, 내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것은, 과거 와 미래의 "業" 을 살고 있다는 것이 되는것이다. 이 "業"의 원동력이 "思" 가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 한다면 오늘 말하고자하는 "思"가 얼마나 무겁게 다루어 져야 한다는 것응 우리는 알아야 할것이다. 자, 이 "思"를 좀더 자세히  알기위해서는, "業" 이라는것에 관하여 조곰 더 알아야 할 것이다.

"業" 에는 (1) 身業(신업), (2) 語業(어업), (3) 意業(의업)의 3 으로 분류하게 되는데,단어만으로도 짐작이 가드시,

신업이란, 몸으로 이르키는  행동, 즉 죽인다, 흠친다, 등의 악업, 남을 도운다, 봉사활동을 한다, 라는 선업, 이런것들이

다 "신업" 인데, 일상, 우리들의 행동,행위 등을 망나하게 되는데, 이 "신업" 의경우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것을 방지 하게 되는 것이지만, 불교에서는 나머지 "어업""의업" 을 이야기 하게 됨으로 이것이 문제로 되는 것이다. "신업" 의 경우, 흠친다, 죽인다라고 할떄, 이것은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 어업 " 의 경우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해서는 안될 말을 마구 한다든가, 큰소리로 자기 주장을 하며 그 주장을 합리화 하기위하여 거짓마저 이야기 하게된다든가, 마음에도 없늠 말을 한다든가, 나쁘게 사람들을 헐뜯는다든가 등등의  행위가 신체로 하는 행위보다 쉽게 여기며 거침없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것들의 전부가 "어업"으로서 내일의 자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 사랑스러운 말 한마디가 천량 빚을 갚는다 " 愛語回天力" 이란 말이 있드시, 절대적인 "선업"도 있다. 뜻 없이한 한마디의 말이 불교에서는 "신업"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 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에 더 해서 "의업" 까지 보태게 된다는 것은 더 할나위 없는 근심이다. 마음속으로만 생각 한것, 그것이 "意業"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죽이고 싶다, 라는 篤언(독언), 잡언 따위를 비록 말로는 뱉어내지 않았다 하드라도 그 생각 자체로도 "의업" 이 된다는것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것이 우리의 "業" 이 된다는 것은 "아뢰야식, 심층심리" 에 이런것 전부가  薰習(훈습) 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훈습된 아뢰야식 즉 심층심리가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摩何止觀 에 惡을 고치는 방법을 이렇게 말 하고있다. " 一分思生一分師生" 우리들이 악 과 싸워 이를 퇴치 하게 되는것은,

하나는 바른 선생을 맞나 바른 가르침을 을 제시 받는 일이고, 두번째는, 자기가 가지고있는 思의 힘이다.  이 思의 힘이

결여되여 있을때는 아무리 좋은 선생, 좋은 친구로 부터 배운다해도 惡의 퇴치는 불가능하게 된다. 아뢰야식의 훈습으로

인하여 내가 이헣게 된다 라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 일까.

이제 여태 말 해온  "遍行(편행)"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3 가지 것을 파악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행이라고 하는것은 , 1. 觸, 2 作意, 3 受, 4 想, 5 思 의 5 개의 마음(心所) 인데, 이것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한번 전체적으로 자세히 부감해 보려고 한다.

제 1 은, 觸(촉), 作意(작의) 의 단계인데, 이것은 외계와 접촉 하므로 생긴 마음의 단계인데, 인식의 제일 처음 단계이다.

여기서 부터 인식이 시작되는데  觸이 먼저냐  作意가 먼저냐고 하는 관계는 미묘하여 어렵다고 촉,작의를 말할때 했다.

제 2 는, 촉, 작의 에 대한 "受(수)", "想(상)"인데, 마음속으로 부터 적극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단계를 말 한다.

"受"는 苦(고),樂(락), 憂(우), 喜(희)같은 감정적 감각적 투영이고, "想"은, 그 영상을 묶어서 개념화 한다는 지적인 투영이다.

제 3 은, 제 1, 2 단계에서 완성된 인식대상에 대하여 의지결정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단계를 말 하는데, 생각한다, 결단한다, 등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능동적 움직임을 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전체를 바라 보면서 알수 있는것은, 우리들의 인식이 결코 거울마냥 일방적으로 수동적이 라는 것이 아니라는것, 마음속에서 적극적인 작업의 결과 로 인하여 인식이 성립 된다는것을 알수가 있다. 특히 "작의"  "상" "사" 등은 능동성이 강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인데, 영상을 꾸미고, 이것을 개념화 한다, 이것을 행동을 일으킨다 등 5 항목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속으로부터 적극적인 움직임이 강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말씀드린, "만법불이식" "만법유식" "유식소현" 이라는 말을 할때, 우리들이 인식시, 주관성이 얼마나 강하게

나타나는가를 이야기 했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편행" 의 전체상 속에서도 그 단면을 발견하게 되는것이다.

어떤 " 마음 " 의 움직임에도, 그 밑바닥에는 "편행"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어떠한 "마음"에도 감각적, 감정적,

지적(知的)같은 주관성이 섞여있게 되는 불가피성이 있게 되는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이유 로 인하여 유식설 에서는

인간 인식의 오염성에 대한 깊고 깊은  성찰을 요구 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편행" 의 다섯가지의 마음도 우리는 구체적인 심리작용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 하게 되는 것이지만, 이 "편행" 의 5 가지 심소는 전체가 하나로서 5 가지의 성격이 묶여저서 (따로따로 인식하는것이 아니라) 작용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기에 한가지 추가해 말한다면, 이 5편행 속에는 확실히 감정적인 일면이라고 하는 "受"와 지적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상", 의지 의욕 이라고 하는 "思" 가 포함되여 있다는것을 지적 할수 있게 되는데, 이 말은 우리들의 인식이 知情意 가 혼돈된 위에서 일체가 되여 작동하여 전개되고 있다는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으로서 우리들이 인식한다고 하는 행위에는 , 이 지정의적(知情意的)인 부분을 빼놓고 이야기 한다는것이 얼마나 무리인가를 말하게 되는것이다. "편행" 이란 여태 이야기 한것과 같이 대상에 접촉해서, 대상을 받아드리고, 대상을 구별하여 만들고, 대상을 움직여가는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이야기 할때, 우리들의 業으로 훈습된 "아뢰야식"은 혼자서는 작동되지 않는 심층심리 임으로, 어떤 대상에 의하여 그것을 "受" 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영상을 꾸며서,  그것을 개념화하고, 그것을 작동시켜 간다는것을 의미 하게 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 한다면, 우리들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대상을 만들고, 그 대상을 작동시켜 가면서 살고 있다고 말 할수 있는 것이다. "아뢰야식" 이 5 편행과 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들의 깊은곳에 숨어있는 심층심리인 "아뢰야식" 이 살아 움직이 겠다고하는 생명력의 연소가 인간생존의 진실이 아닐까 하는 것을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들은 자신이 이미 훈습된 아뢰야식을 바탕으로 해서,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 대상를 선별하고 그것을 조작하여 그 조작된 대상을 작동시키면서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知情意가 휘연 일체가 가 되여 작동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유식설에서는 "편행" 을 이야기 하면서 이것을 이야기 하러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여기서 잠간 " 아뢰야식 " 을 복습해 보자, 아뢰야식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 有根身=신체, 種子= 쌓인 경험, 器界= 환경 이었다. 결국 우리들은 과거의 "業" 의 집적에 의해 무의식 으로, 자신의 신체,과거의 경험, 자신을 감싸고 있는 환경계를 대상적으로 접촉하면서, 그것을 격렬하게 작동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된다. 이것이 "제 8 아뢰야식" 이 "편행"에 적극적으로  작동하고 있게 된다는 중요한 면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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