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말할 心所(마음) 別境(별경, 대상)은 遍行의 5 가지 마음 觸, 作意, 受, 想,思 에 이어  欲(욕), 勝解(승해),

念(념), 定(정),慧(혜) 의  5 가지 마음 이다. 이것을 " 유식 30 송 " 제 10 송, 2, 3, 4 句(구) 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次別境謂欲 勝解念定慧 所緣事不同 풀이 하면 편행 다음은  別境(별경) 이라고 말 하는데, 그것은 欲, 勝解, 念, 定,

라고 한다. 그것들의 대상( 境)은 서로 서로 대상에 따라서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 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俱舍論(구사론) 에서는 遍行, 別境 의 10 가지 心所(마음) 을 한데 묶어 大地法(대지법) 이라고 했었는데

유식학 의 발달로 인하여 (아뢰야식, 마나식 이라는 심층심리 의 도입) 이것 편행과 별경 을 둘로 분류 하였다.

즉 사람의 어느 마음이( 8 식 ) 어느때나 같이 작용 하는경우와 대상의 다름에 따라서 작용하든가, 안 하나는

것으로  나누어서 분류 하게 됬는데, 전자를 편행(이미 말 했다) , 후자를 별경이라고 하게되는데. 이것이 재편성된

유식불교론 이다. 이 別境인 欲, 勝解,念,定 은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의 6 식과  7 식인 末那識(마나식)

에 다같이 작동하지만, 8식인 阿賴耶識(아뢰야식) 에서는작동하질 않는다. 마나식이나 아뢰야식의 대두로 

心所의 이해도 더욱 자세해 짐은 물론 좀더 깊이가 있는 것으로 되였다. 

1. 所樂의 境, 欲 = 바라는것을 求(구할구)하는 境, 소망 하는 마음을 대상으로 해서 작동되는 마음을 欲(욕) 이라

   한다. 欲이라는 마음은 희망의 마음, 결국 희구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라고 하게 된다. 欲(욕) 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체로 " 나쁜 마음의 움직임 " 이라고 하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지게 되는데 예하면, 貪欲(탐욕), 欲望(욕망),

   欲情(욕정) 같은 좋지 않은 의미를 갖인 말들이다. 그런데 유식학에서 말 하고 있는 欲 은 상기한 나쁜 면으로

   작용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성유식론 " 에 " 善法欲(선법욕) "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도덕적인

   심성을 키운다든가, 불교를 수학함으로서 마음을 푸라스 방향으로 충분히 작용하게 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또 성유식론에서는, "勤依(근의, 부지런해 지는것) 를 그 業(업) 으로 한다" 로 써 있는데,

   여기서 槿 (근) 이란 정진을 의미하는 것임으로 , 선 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분류하면서 이것을 불도수행의

  방향으로 암암리에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이 欲이라는 마음은 善, 惡 어디든지 선별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즉 같은 대상에 대하여 善한쪽으로도, 惡한 쪽으로도 작동되기 때문이다.

2. 決定의 境, 勝解 = 주어진 대상에 대하여 움직이는 마음을 勝解(승해)라고 하는데, 아직 작동하지 않은 마음의

   대상에 대하여 그것을 확인하고, 단정해 버리는 마음의 작용을 말 하는데, 印持(인지, 도장찍어 확절하는 행위)

   라고도 하고, 不可引轉(불가인전, 도리킬수없는) 이라고도 한다. 우물쭈물 하지 않고 확실히 하는것이라는

   의미 를 강조 하는 말로 알면 되겠다. 이 마믐 역시 善, 惡 두 방향으로  작용된다. 성유식론 에서는 이 境(대상)

   을 猶豫(유예, 우물쭈물하며 미루며 결정하지 못하는것)하는것은 勝解(승해)가 아니라고 논하고 있다.

3. 曾受의 境, 念 = 念(생각할 념)의 마음, 과거에 경헌한 것을 확실히기억하녀 잊어버리지 않는 마음, 明記不忘

   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 한다. 이것 역시 善, 惡 두방향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執念(집념), 怨念(원념) 같은 마음은

   나쁜 마음,  念佛(염불), 念願(염원)등은 착한 마음이 되는것이다. 여기서 잠간 염불에 대하여 알아보자.

   어떤종교에서도 마찬가지 이겠으나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기도 ,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염불은 대동소이

   하다고 하겠다. 여기서는 불교에서 말 하는 염불의 정의를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염불이란, 불타를 생각하며 

   그의 행적을 따르려고 애쓰는것을 염불이라 하게 되는데, 말로서 " 나무아미타불" 을 부르느것을 말 한다.

   그런데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수없이 외운다 하드라도, 그것이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면 진정한 염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불타를 마음에서 부터 잊어 버리지 않으려는 염원에서 에서 부터 시작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염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너희는 기도 할때, 중언부언 하지 말라 한것은 나를 생각하며

   나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이다라는 의미일 것이다."念과 더불어'  明記不忘에 깊이를

   더 하면서 " 힘을 쏟아 부으며 " 의식을 집중한다는것은 어느정도 定(정헐정)의 성질이 더하여 졌을 것이라고

   생각 되는것은 아닐까. 선한 "念" 을 갖인다는것은 우리들을 향상 진보시키는데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된다. 일 한가지만 생각해 보아도 그것을 명기불망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새로운 Idea 가 떠 오르지

   않겠는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일에도 타개책이 떠 오를찌도 모른다. 매사에 명기불망 하는 것이 없다면 

   어떤것도 획득할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선에의 추구,학문의 추구, 불교공부에 있어서도 마찬 가지 일것이다.

4. 所觀의 境 , 定 = 所觀의 境 이라는 말은 관찰의 대상 을 말 한다. 관찰의 대상을 마음을 집중시켜 깊게,주시하며

    관찰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定은  " 定專注不散心所" 라고 말 한다 . 이것 역시 善으로도

    惡으로도 다같이 작동하게 된다. 定 에는 "生得定(생득정)' 과  "修得定(수득정)" 이 있는데, '生得定"은 나면서

   부터 갖이고 있게 되는 정신의 집중력 을 말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別境에서 말하는 " 定 " 이다. 이에 반하여

   "修得定"은 수행에 의해 얻어지는 " 定 " 인데, 우리가 " 마나식 " 을 말하면서  대면 했던 "無想정(무상정)" 과

   "無盡定(무진정)" 을 말 하는데 이것들은 心所(마음) 에는 들지 않는다.우리가 " 정 "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부질좌" 하고 앉는 상상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찌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말하고 있는 "定' 이란 專注不散이라고

   하는 마음의 작용임으로 이것은 그냥 심소(마음)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5. 所觀의 境 (定) 을  향 한 慧(혜) 의 마음 을 말 한다. 대상을 골라가며 판단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말 하는데

    簡擇 (간택)하는 성질을 갖이며 斷疑(단의, 의심을 끊어 버리는것) 를 그 業(업, 영업 업)으로 한다 라는 의미.

    대상은 定과 같은 " 소관의 경 " 이다. 물론 이것 역시 선, 악 어느쪽에도 작용한다. "斷疑' 라는 말은 번뇌임으로 

   역시 불도를 기준한 마음의 분류로 보는것이 타당 하겠다. "마나식"을 말 하면서 마나식과 같이 작동하는 마음

   18 개 를 이야기 했는데, 그 중에 " 慧의 心所 " 가 있었다.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것을 구별해 가는 우리들의  

   모양을 보면서, 유식학의 이간에대한 깊은 관찰에 감탄 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 慧 " 라는 마음 이었다.

이상 말 한것이 別境의 개요인데, 이 別境의 5 心所는 아무리 보아도, 불교수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끓어 드리려고 하는 경향이 농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하튼 매사 나쁜 마음 쪽으로 치우치기 보다는

좋은 마음 쪽으로  마음을 작동시켜 가는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인인(隣人), 사회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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