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우리는 모두 일종의 동물원이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 불리는 미생물 군집을 모든 인간은 몸에 지니고 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세균이지만 다른 미생물도 있다. 진균(예를 들면 효모), 고세균이 그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바이러스 집단도 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파트너도 미생물이다. 우리와 함께 평생을 살고, 함께 여행하고, 마지막으로 죽을 때 그들은 우리를 분해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렇다면 이런 정의도 가능할 법하다. 우리는 하나의 '미생물'이다. 

에드 용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 블로거이자 저널리스트다. 생물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 등을 넘나들며 과학의 최전선을 소개하는 블로거로, 영국 과학저술가협회 '올해의 저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빌 브라이슨이 엄지를 세우며 추천한 이 책은 '미생물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에드 용에 따르면 파트너인 미생물이 없는 인류는 액자 없는 그림, 크림 없는 케이크다. 

먼저 45억년인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한다고 가정해보자. 3월 무렵, 최초의 생명체로 등장한다. 이후 10월까지 지구를 이끌어온 게 미생물이다.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산소화된 대기를 만들어 인류를 비롯한 생물들이 살 수 있도록 한 것도 미생물이다. 

가장 깊은 해구에도, 암석층에도, 펄펄 끓는 온천에도, 남극의 얼음에도 살 수 있는 미생물은 천문학적인 숫자로 존재한다.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별의 개수보다 한 인간의 소화관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개체 수가 더 많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가진 세포는 약 30조개, 미생물의 수는 약 39조마리다. 크기는 얼마나 작은지 옷핀 끝에서 100만마리의 세균이 군무를 출 수도 있다. 

미생물 연구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 렌즈 기술자 레이우엔훅이 최초로 270배율의 현미경을 만들어 연못 물 한 방울 속에서 극미생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미생물에 얽힌 과학의 발전은 가속도가 붙었다. 

그간 미생물이 받아온 오해부터 풀어보자. 변기 시트에 세균이 우글거린다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대부분 미생물은 병원균이 아니며 사람을 병들게 하지 않는다. 세균 가운데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종은 100개 미만이다. 위장에 서식하는 수천 종은 대부분 무해하며 심지어 생명을 지켜주는 일을 한다. 

미생물의 능력이 극도로 발휘되는 곳은 바로 면역계다. 올리버 색스가 말했듯이 코끼리가 됐든 원생동물이 됐든 생물이 생존하고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일정한 내부 환경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긴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항상성 유지에는 미생물이 필수 불가결하다. 미생물은 소화관 내벽과 피부 복구를 돕고, 손상된 세포가 새 세포로 대체되도록 해준다. 면역계의 복잡성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무엇보다도 미숙하고 취약하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동물의 자체적인 유전체는 성숙한 면역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미생물이 면역계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미생물은 모든 면역세포의 생성에 영향을 미치며, 면역세포를 만들고 저장하는 장기의 발달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게다가 비만, 염증성 장 질환, 우울증, 자폐증과 같은 병에도 미생물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오늘의 과학자들이 밝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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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매경DB]
미생물이라는 렌즈를 통해 동물계를 들여다보면 익숙한 일들이 경이로운 모습으로 비치기 시작한다. 어미 미어캣이 새끼에게 젖을 먹일 때 미생물도 젖의 당분 소화를 돕는 미생물을 함께 건네준다. 하이에나가 항문 양쪽에 있는 취선을 풀잎에 비빌 때 냄새에 포함된 미생물은 다른 하이에나에게 전달되는 자서전의 역할을 한다. 하와이산 짧은꼬리오징어에게는 발광기관이 있다. 그 속에는 비브리오 피셰리라는 발광세균이 가득한데, 그들은 아래를 향해 빛을 발사한다. 빛이 매우 약해서 밝은 빛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바닷속에서는 빛의 세기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과 맞먹는다. 이 빛이 오징어의 실루엣을 지워버려 바닷속에서 오징어는 포식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생물이 될 수 있다. 

볼바키아라는 세균이 있다. 1980년대에 발견된 숙주의 성생활을 교란하는 요상한 세균이다. 생물학자들이 발견한 무성생식을 하는 벌의 무리는 암컷들이 자기복제를 통해서만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생식은 볼바키아의 농간에 의한 것이었다. 항생제로 벌에게서 볼바키아를 제거하자 갑자기 수컷이 재등장해 양성생식이 재개됐다. 학자들은 쥐며느리, 남방오색나비 등에게서도 이 세균을 발견했다. 볼바키아의 입장에서 숙주의 암컷은 '미래를 보장하는 티켓'인 반면 수컷은 '진화의 막다른 골목'에 불과했다. 볼바키아는 수컷을 죽이거나, 수컷을 암컷으로 만들거나, 암컷에게 무성생식을 시키는데, 무려 지구상에 살아 있는 780만종의 동물 중 대다수인 절지동물의 40%가 볼바키아에 감염돼 있다. 가히 육지에서 가장 성공한 세균인 셈이다. 게다가 특정한 벌이나 빈대는 볼바키아가 없으면 번식할 수 없다. 심지어 볼바키아의 호르몬은 사과나무 잎 속에 사는 점박이천막잎나방의 유충이 잎이 시들어 죽는 것을 막는 데도 기여한다. 영웅도 악당도 아닌 두 얼굴이 바로 볼바키아의 정체다. 

황폐화된 산호의 무덤부터, 심해의 열수 분출공, 동물원의 분뇨 처리장까지 누비며 미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생생한 사례와 문학적 수사는 이 책이 과학책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책을 읽고 나면 인간의 삶에서 고립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교훈을 얻는다. 미생물들은 개인들 사이, 인체와 환경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하며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고, 나아가 세상과도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제각기 하나의 군단이다. '나'라는 개념을 버리고, 늘 '우리'라는 개념을 생각하라."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지만, 우리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공생자'들과 한 팀이라니. 든든해지지 않는가.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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