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 작 〈청루소일(靑樓消日)〉. 간송미술관 소장.
수촌(水村) 임방(任埅·1640~1724)이 편찬한 야담집 《천예록(天倪錄)》에는 이렇게 갑갑한 인간이 다 있을까 싶은 작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원제는 〈심진사행괴사화(沈進士行怪辭花)〉로, 풀자면 ‘심 진사가 하는 짓이 괴팍스러워 여자[花]를 거부하다’ 정도가 된다.
  
야담집 《천예록(天倪錄)》을 펴낸 수촌(水村) 임방(任埅).
  서울 사는 심 진사가 호남 지방에 내려갔다가 하룻밤 유숙할 일이 생겼다. 어디가 좋을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한 집을 가리키며 그 집이 ‘호남 제일의 부잣집’이라고 말해줬다. 그 집에 갈까 하는데 어찌 알았는지 그 집에서 하인을 보내 “우리 집에 오셔서 머물다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라며 청했다. 어떻든 잘 곳이 필요했던 그는 하인을 따라 그 집으로 갔다.
  
  집은 으리으리하고 어마어마했다. 마당에 조경으로 심어놓은 나무와 돌들도 범상치 않았고 집안 곳곳에 붙여놓은 그림과 글씨도 휘황찬란했다. 자잘한 것까지 세심하게 꾸며놓은 화려함과 기기묘묘함이 꼭 신선세계 같았다.
  
  늙은 주인이 몸소 그가 있는 방에 들어와 인사를 했다. 주안상을 차려놓고 대접하는데 아리따운 여종들이 음식을 하나씩 일일이 날라 와 수발들고 앞에선 악기를 연주하며 춤까지 추는데 황홀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술이 얼큰해지자 주인이 긴히 부탁드릴 것이 있다며 말했다.
  
  “내게 절박한 사정이 있어 당신에게 부탁할 것이 있소이다. 그렇다고 그대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니, 들어주겠소?” 친분도 없는 자신에게 이토록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하던 심 진사는 “무슨 일인지 모르나 제힘이 미치는 한 최선을 다해 받들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내 집안이 보다시피 이렇게 넉넉하나 복이 없어 처첩들이 모두 자식을 낳지 못했다오. 그러다가 늦게 얻은 천첩(賤妾)에게서 비로소 딸 하나를 얻었소. 그 애가 이제 열여섯이 되었다오.”
  
  
  세상의 원칙과 딸을 향한 애틋함
  
《춘향전》에 등장하는 춘향은 하룻밤을 요구하는 이몽룡에게 ‘불망기(不忘記)’를 써달라고 떼를 쓴다. 하층 여성들은 그래도 그거라도 받아두지 않으면 그야말로 기약이 없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는 거였다.
  자식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예뻐 보이는 법이다. 젊을 때 낳은 자식도 그런데 하물며 늙어서 늦둥이를 두었고 전혀 없을 줄 알았던 첫 자식이니 얼마나 애지중지할지 안 봐도 뻔했다. 게다가 이 집은 호남 제일의 부잣집이었으니 그 딸을 금이야 옥이야 키웠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미가 서울의 어느 집 종이라오.” 보통 처(妻)는 정식 혼례 절차를 거쳐 얻었고 한 명만 두었다. 당연히 양반은 양반 여자를 처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첩(妾)은 절차 없이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에 따라 첩으로 삼으면 그만이었다.
  
  힘이 있는 양반이 평민, 천민의 여자들을 우기다시피 뺏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여성을 사랑해서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기도 하지만 본가에 근엄한 부모님이 살아계시든지 호랑이 같은 처가 있으면 첫날밤이 그냥 마지막 밤이 되는 거였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하룻밤을 요구하는 이몽룡에게 ‘불망기(不忘記)’를 써달라고 떼를 쓴 것을 두고 춘향이를 요망하다고 하면 춘향이 입장에선 너무 억울한 것이다. 그깟 ‘잊지 않겠다는 약속 문서’ 나부랭이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지만 하층 여성들은 그래도 그거라도 받아두지 않으면 그야말로 기약이 없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는 거였다.
  
  이 호남 으뜸 부자 노인도 서울에 갔다가 어느 집 여종과 하룻밤을 보냈던 것이다. 서울 그 집에서 부자 노인을 대우하느라 수청을 들라며 여종을 들여보냈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렇게 서울 선비 집 여종을 첩으로 삼게 되었다. 노인은 몰염치하게 하룻밤을 마지막 밤으로 만드는 파렴치한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데리고 오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딸까지 낳았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천금을 들여 그 모녀를 속량(贖良)코자 했으나, 그 서울 선비가 집요하게 허락하지 않는구려. 이제 듣자니 그 선비가 내 딸을 제 몸종으로 삼으려고 심부름꾼을 이리로 보냈다니 그 심부름꾼이 곧 도착할 거외다. 내가 몹시 분하고 원통하나 거절하려 해도 방법이 없고 대꾸할 말도 없다오.”
  
  언뜻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조선시대 신분제도인 종모법(從母法)을 알면 이 노인의 답답함과 원통함을 짐작할 수 있다. ‘종모법’은 말 그대로, 자식의 신분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게 하는 법이다.
  
  양반 여성이 낳은 자식은 양반이 되나 종이 낳은 자식은 어머니를 따라 종인 거였다. 이는 매우 불합리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첩을 두는 제도로 인해 양반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게다가 여종을 둔 주인 양반의 재산권이 침해된다. 즉 여종의 자식이 종이 아니라 양반이 되면 주인의 재산이 사라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종이 낳은 자식은 그 여종의 주인 소유의 종이 되었다. 비록 여종이 속량되어 평민이 되었다 해도 속량이 되기 전에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은 여전히 그 전 주인의 소유가 되었다. 종들은 가축이나 다름없는 거였다.
  
  천첩을 둔 양반은 그 첩을 속량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고 속량 이전에 낳은 자식에 대해서도 따로 속량을 위해 재물을 써야 했다. 억울해 보이지만 원주인의 재산을 인정하고 양반 중심의 계급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지금 호남 으뜸 부자 노인이 직면한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첩인 여종의 주인인 서울 선비가 속량을 거부하고 또 그 여종의 딸인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의 속량도 거부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이는 사회 시스템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자 노인이 현재는 그 귀한 딸을 제집에 두고 곱게 기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칙상 그럴 수 없다. 노인에겐 딸이지만, 서울 선비에겐 자신의 물건인 노비이니 말이다. 그러니 서울 선비 아래서 종노릇을 하고 있어야 한다. 딸이 이곳 노인 집에서 지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려면, 그렇게 하기 위해 노인이 엄청나게 많은 재물과 선물을 때마다 보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남의 물건’을 가져다가 ‘사용’하는 사용료를 비싼 값에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노인 입장에선 ‘임차’해 올 것이 아니라 아예 사버리면 될 테지만 서울 선비는 이 알짜 아이템을 도무지 팔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이젠 그녀가 열여섯이 됐다고 하니 ‘임대계약’을 물리고 돌려보내란다. 제 몸종, 즉 수청들 여종으로 삼겠다는 거다. 노인의 가슴에서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원칙을 가장한 반대를 위한 반대
  
  결국 노인이 수단을 냈다. 심 진사를 멀리서 보고 그의 집으로 불러들여 지극정성으로 대접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이제 당신을 보니 서울 사는 양반이고, 또 젊은 나이인데 재주도 있어 보이오. 그러니 우리 딸이 당신을 섬길 수 있게 해주시오. 그러면 내 죽어도 한이 없겠소.”
  
  ‘당신을 섬기게 해주시오’란 말은 처를 삼으란 말이 아니라 그냥 첩으로 삼으란 말이었다. 이는 신분상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제안이었고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정황을 살펴보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처럼 횡재한 기분이 들 상황이었다.
  
  그런데 심 진사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제가 공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딱한 처지입니다. 또 제게도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첩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이 들었다면 실로 얻기 힘든 좋은 기회이나 저는 평생 동안 첩을 두지 않기로 했기에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조금 엇나가는 소리지만 세파를 지내온 주인 노인은 충분히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뜻을 알 것 같소이다. 아마도 내가 못생긴 딸을 가지고 억지로 당신에게 떠맡긴다고 생각하는구려.” 그러더니 하인을 시켜 딸을 불러냈다. 잠시 후 기이한 향내와 함께 수종 드는 어린 종이 앞서고 그다음에 노인의 딸이 들어섰다. 옷맵시가 깔끔하고 세련된 것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얼굴과 빼어난 자질이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이야기에서만 듣던 천하의 미녀들도 그녀보다는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어떠십니까? 제 딸이 비록 천하기는 해도 그리 못나지는 않았습니다. 허락해 주실는지요?”
  
  “제가 천하의 일색이 있단 말은 들었지만 보기는 처음입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이 헛말이 아니란 걸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날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제 맘은 첩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노인은 잠시 갑갑해 했다.
  
  “그럼, 지금 댁의 부인과 금실이 좋은데 갑작스레 첩이 생겨 질투와 갈등으로 집안이 시끄러워질까 염려되셔서 그런 겁니까?”
  
  “아닙니다. 저희 집사람은 인물도 잘나지 못했고 성품도 순박해서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가난한데 첩을 들이면 집안 살림에 무리가 될까 그러시는 겁니까?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집과 노비는 물론 사소한 옷가지며 음식까지 전부 다 필요한 물건은 다 갖춰드리겠습니다. 하루에 백금이 든다 한들 모두 다 제가 대겠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재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아는 터였다. 노인은 또 말했다. “혹시 서울 댁에 두기 불편해서 그러시는 거라면 오늘 밤 첩으로 삼으신 후 지금 여기에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남쪽으로 오실 때마다 맘껏 들르셔서 편하게 지내시다 가시면 됩니다. 서울 본가로 데려가셔도 되고 여기 두셔도 되고 그도 아니면 원하시는 곳 아무 데나 데려다 놓으셔도 됩니다.”
  
  정말 이런 좋은 일이 없다. 무한대의 돈에 절세미녀에 원하는 대로 원하는 곳에서 맘껏 진탕 놀아도 된다니 이보다 더 바라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심 진사는 요지부동이었다.
  
  “하나하나 좋은 말씀이나 제 뜻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애써 여러 가지를 말씀해 주시나 저는 청을 받들 수 없습니다.” 노인이 사정했다.
  
  “내게 혈육이라고는 이 아이뿐입니다. 장차 모든 가업을 이 아이에게 물려줄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자식이 이 아이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첩으로 얻으시면 그 재산이 모두 다 당신의 것이 됩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겠소.”
  
  “공의 말씀이 듣는 사람에게 군침이 돌게 하는군요. 하지만 저는 따를 수 없습니다. 그게 저도 한스럽습니다.” 완전 벽창호였다. 노인은 난감하고 답답했다. 미모도 안 되고 재물도 안 되고 부인과 만나지 못하게 떼어놓는다는 것도 안 되니 인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하나만 들어주시오. 그냥 오늘 하룻밤만 딸이 당신을 모실 수 있게 해주시오. 그래서 심 아무개의 첩으로만 불리게 해주시면 됩니다. 이후 당신이 다시는 돌아보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겠소. 그렇게 평생 홀로 사는 것이 이 아이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요.”
  
  최후의 선택으로 그냥 허울뿐인 ‘첩’이라는 명함만 하나 파달란 소리였다. 사랑하는 딸이 평생 외롭게 남자도 모르고 수절하고 살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며 간곡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심 진사는 거절했다.
  
  “아니 사람이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데 당신은 객지에서 이런 미인을 만났고 여러 가지를 말씀드렸는데도 끝내 뿌리치니 천하에 답답한 사람이구려. 당신이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어찌 이것이 인정(人情)이라 할 수 있겠소.”
  
  “맞습니다. 인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청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마음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학문에 뜻이 있어 도리를 지키느라 여색을 가까이 안 하는 것이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삶의 주관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게 무슨 의미요?”
  
  “딱히 특별한 주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똥고집
  
조선시대 노비들의 농사와 타작 모습을 묘사한 〈경직도(耕織圖)〉. 작자 미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화가 여기에 이르자 주인 노인이 발끈 성을 냈다. 건장한 종들을 불러서는 끌어내라 호통을 쳤다. 종들이 들어와 심 진사의 상투를 잡아끌어 밖으로 내쳤다.
  
  “내가 저놈을 사람으로 생각해서 얘기를 해봤는데, 이제 보니 짐승만도 못한 놈이구나. 아하, 통탄할 일이다.”
  
  그러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저놈은 인간도 아니다. 저 짐승만도 못한 놈은 재워주지 마라.”
  
  심 진사는 밥을 먹다 쫓겨나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재워주려 하지 않았다.
  
  주위가 어둡고 큰 비까지 내렸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해서 엉망이 되었다. 그 마을을 한참 떠나 새벽녘이 되어서야 무너져 내린 움막을 하나 찾아 비를 피했다. 이 이야기가 서울에 퍼지자 사람들이 모두 다 비웃었다. “사람이 아니라 괴상한 물건이니까 온 세상이 받아주질 않지.” 그는 결국 시골로 도망쳐 다시는 나오질 못했다.
  
  주인 노인의 요구는 과도했을까? 그건 아니다. 당대 윤리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원칙을 깨뜨리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그런 수단을 강구한 거였다. 노인이 딸이 죽었다고 거짓말로 서울 선비의 심부름꾼을 대한다면 그건 옳지 않은 행위이다. 재력이 풍부한 노인에겐 건장한 하인들과 동료들이 많을 테니 반 강제로 협박조로 서울 선비를 압박할 수도 있었다. 물론 큰돈을 던져주면서 말이다.
  
  그런 많은 방법이 있지만 그건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심 진사에게 부탁한 것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도 심 진사는 노인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했다. 무슨 소신이나 원칙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멍청한 얼간이처럼 한다는 소리가 “하지만 청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마음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며 갸우뚱하든지 “딱히 특별한 주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우겨대며 똥고집을 부렸을 뿐이다.
  
  그럼 노인이 그냥 서울 주인인 선비의 몸종이 되게 하는 것은 어땠을까? 모르는 사람의 첩으로 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그렇게 첩이 되게 하는 거나 서울 선비의 몸종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는 아닐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르다.
  
  심 진사의 첩이 돼도 그녀의 신분은 바뀌지 않는다. 첩은 드물긴 하지만 양반 여자가 첩이 되는 것과 평민 첩, 기생 첩, 여종 첩 등 그 구성이 다양하다. 즉 첩들끼리도 그녀의 신분에 따라 서열이 세워졌다. 그러니 심 진사의 첩이 되거나 서울 선비의 몸종으로 결국 수청을 들어 서울 선비의 첩이 되나 신분상으론 같다. 원주인인 선비가 신분에서 풀어주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남의 하소연을 듣지 않는 앵무새
  
  하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다르다. 신분사회에서도 역시 인간이 먹고 입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재물의 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권력인 것이 아니다. 심 진사의 첩이 되면 아버지 노인의 도움으로 어깨 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서울 선비의 몸종으로 끌려가면 이리저리 치이며 수청 들다가 주인 선비가 아무에게나 훌쩍 팔아버려도 꼼짝 못하는 거였다. 단물 다 뽑아낸 늙은 창녀를 귀찮다고 헐값에 팔아버리는 것과 똑같은 신세가 된다.
  
  결국 노인의 앞엔 딸이 떵떵거리며 살게 되는 삶과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어느 곳에 팔려가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 삶,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만약 노인이 재력이 없고 힘이 없다면 그냥 “어쩔 수 없는 팔자다”고 탄식하겠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는데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한이 될 것이다. 그래서 노인이 심 진사에게 그토록 매달린 거였다. 나중엔 “그냥 한번 자고 가서 다시는 돌아보지 않아서 외롭게 수절해도 어쩔 수 없는 팔자다”고까지 하며 말이다.
  
  그런데도 이 벽창호는 막무가내였다. 무슨 엄청난 소신이나 이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똥고집’이었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그걸 뭔가 대단한 거라고 착각한다는 것에 있다. 그 점을 서술자는 이야기 서두에 다음과 같이 꼭 집어서 말하고 있다.
  
  서울에 심 진사라는 자가 살았는데 성품과 행실이 괴팍했고 스스로는 고결하다고 뻐겼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을 잘 몰랐다. 노인은 “내가 저놈을 사람으로 생각해서 얘기를 해봤는데 이제 보니 짐승만도 못한 놈이구나”고 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상한 물건이니까 세상에서 받아주지 않는 거지”라고 비웃었다.
  
  그냥 심 진사의 행동을 보면 그도 할 말은 있다. 여자와 동침을 하지 않겠다는 고결함, 공연한 횡재에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천하의 갑갑한 고집불통 벽창호다. 왜냐하면 이 작자는 남의 하소연을 듣지도 않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오직 제 이야기만, 제 원칙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문제인지 정작 본인만 모른다. 자신이 편벽되게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자신만 모른다. 밥 먹다 말고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쫓겨난 심 진사의 말을 만들어서 들어보자. 공연히 억울하다는 듯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거다. “아니 왜 다들 난리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난 원칙을 지켰다고!”⊙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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