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형제들은 친척집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책상 앞에 앉는 것보다 할머니 농사일을 돕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못 뗐고 신문 배달을 했다.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할머니마저 돌아가셔 작은아버지에게 맡겨졌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어 실업고를 거쳐 전문대에 진학했다. 2001년 병역특례 업체에서 3년간 일하며 모은 종잣돈 4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해서 다 날렸다. 갈 곳이 없었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다가 그해 가을 모텔 청소 일을 시작했다. 모텔에서 4년 동안 일했다. 

연매출 1000억원대의 국내 1위 숙박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야놀자'를 일군 이수진 대표(40) 얘기다. 

"숙박업에 있다 보니 남들 쉴 때도 일해야 했습니다. 갈 곳도 없어 그런지 명절 때마다 울적하더라고요. 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2004년 모텔, 펜션 등 숙박업 종사자를 위한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심심풀이로 만든 숙박업 종사자를 위한 인터넷 카페가 그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당시 숙박업체 이용자를 위한 카페 중 3위 정도 하던 곳이 있었는데, 여기 운영자가 저한테 카페를 사라고 제안하더군요. 2005년 여름 이 카페를 인수했죠. 인터넷 카페 회원인 각 모텔 업체들에 모텔을 소개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을 만들어주고 대중에게는 숙박업체 정보를 제공해줬습니다." 

야놀자는 사무실을 마련할 돈이 없어서 아는 사람 아파트 한구석에서 2005년 조촐하게 출발했다. 지금은 직원만 400여 명에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1000억원을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SBI인베스트먼트 등 쟁쟁한 투자자들에게 받은 투자 규모만 1110억원에 이른다. 야놀자는 창업 초기 '야놀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숙박시설 예약 서비스만 제공했지만, 지금은 야놀자, 야놀자F&G(프랜차이즈 사업), 야놀자트래블, 야놀자디자인랩(MRO사업), 야놀자비즈(교육사업), 호텔나우(당일 호텔 예약 서비스) 등 총 6개 법인을 갖고 있다. 이 대표가 숙박시설 예약 서비스만으로는 기업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일찌감치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수익모델을 다변화한 결과다. 

"2011년 세운 '야놀자F&G'는 숙박업체 프랜차이즈 사업을 맡고 있어요. 야놀자F&G는 고급 비즈니스호텔 '에이치 에비뉴', 연인이나 출장자를 위한 프리미엄 모텔인 중소형 숙박 브랜드 '호텔 야자', 가격이 저렴한 실속형 '호텔 얌' 등 3개 브랜드를 갖고 있어요. 이 브랜드들을 통해 개발된 매장은 직영·가맹점을 포함해 127곳에 달합니다." 

야놀자는 중국 등 해외 고객 유치에도 적극 나선 상태다. 중국인에게 한국의 우수한 숙소를 알리기 위해 2016년 야놀자의 중국어 버전 모바일·웹사이트 '야왈바'도 선보였다. 야왈바에는 4만여 개에 달하는 야놀자의 숙박 데이터베이스 중 중국인이 선호하는 모텔, 호텔,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업체 3000여 개에 관한 정보가 등록돼 있다. 중국 최대 모바일 결제서비스 '알리페이'와 중국 1위 카드사 '유니온페이'로 결제가 가능해 중국인에게 인기가 좋다. 

이 대표는 부동산개발업자는 아니지만 숙박업체에 오랜 기간 종사한 데다 숙박업체를 직접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지난해 예스24와 함께 부산 수영구에 중고서점, 카페, 전시공간 등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 'F1963'도 개발했다. 

'흙수저'로 태어나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야놀자'를 강소기업으로 키워내는 동안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지금이 가장 어렵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기업을 경영하는 순간순간이 늘 어렵습니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경험하고 배우면서 앞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지금 야놀자는 데스밸리(창업 3~7년 차가 겪는 고비)에 놓여 있어요. 이 구간을 넘어서야 확 치고 올라갑니다. 야놀자 창업 초기 경쟁자는 바로 모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었어요. 모텔에 대한 사람들 인식만 바뀌면 중소형 숙박업계에서 승자가 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숙박업체가 아니라 정보기술(IT) 회사들이 경쟁자가 됐어요. 야놀자가 인공지능(AI) 등에 기반한 IT 회사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야놀자는 AI 기술을 활용해 숙소 정보를 고객 맞춤형으로 제공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야놀자 직영점에는 사람의 움직임, 온도 등을 파악하는 여러 센서를 부착해 투숙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조치가 취할 수 있도록 IT와 결합한 객실도 있다. 

"5년 후에는 '중소형 숙박산업은 야놀자가 바꿔놨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할 겁니다. 직원들 사기 진작 등을 위해 3~4년 안에 야놀자를 상장하고 2022년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죠." 

[신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