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예술 (高麗)

2022.11.16 12:42

김일하 조회 수:7

3. 高麗시대,

  高麗시대는 먼저 불교적인 세시행사의 첫째로 팔관회(八關會)가 있다. 팔관회는 전사령(戰死靈)을 위안하기 위해서 新羅의 진흥왕대(眞興王代) 부터 비롯되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高麗의 팔관회는 전통적인 高句麗의동맹(東盟)을 계승, 발전시킨것으로 11월에 개성(開城)에서, 10월에는 서경(西京)에서 만 지내던 국가적인 대제전이 었다.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불교색체가 주된것은 아니었다. "송사(宋史)" 에 "나라동쪽에 굴이 있어 수신(隨神)이라 일컬었는데, 늘 10월 보름을 맞아 제사하니 이것을 팔관회라 한다. 의례가 성대하고 왕과비빈들이 등루하여 크게 풍악과 연음(宴飮)을 베푼다" 는 기록이 보인다. 이때 왕은 군신, 지방관, 외국사신들의 축하를 받고 가무백희가 전개 되었다. 팔관회는 시대에 따르는 변화가 있었으나 高麗 500년동안 국가최고의식이었고, 몽고(蒙古)의 침입으로 인한 강화도천도(江華島遷都) 때도 지속 되었다. 결국 그것은 한국적전통적 의식으로서는 최고의 발전형이 었으니, 朝鮮시대에 들어서자 배불정책에 따라페지되고 말았다. 이 팔관회와 같이 高麗시대에 더욱 성행 했던 세시풍속에 연등회(燃燈會)가 있었다. 高麗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속에 "내가 지극히 원하는 바는 연등과 팔관에 있다"고 하고 그 성격을 기록한 바 있다. 2대 도읍에서만 행사하던 팔관회와는 달리 연등회는 불교행사로서 시골까지 전국적으로 거행 되었다. 연등회는 新羅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추측 된다. 高麗시대에 와서는 국가의 중요 행사가 되었다.그것은 봄철에 등불을 밝히고, 다과를 베풀고 음악과 춤으로 국민들이 함께 즐기며, 부처님을 즐겁게 하고 국가와 왕실의태평을 비는 행사 였다. 2월에 하던것을 毅宗(의종)때는 2월이 전임금 仁宗의 기일이라고 해서 정월대보름에 옮겨서 하였고, 그뒤로도 행사는 달의 변화가 있었다. 成宗때에는 유학자(儒學者)들의 반대로 일시중단 된 일도 있었으나 憲宗(헌종) 1년 윤2월에 다시 행 하였다. 공민왕 때도 2월에 몇차례 한 기록이 보인다. 공민왕 13년 4월, 나라풍속이 4월8일 석가탄신일에 연등을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뒤 朝鮮시대에 와서도 연등은 팔관회와는 달리 오늘날 까지 4월8일에 계속  되어 오고 있으며, 朝鮮후기에도 성황을 이루었음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또, 다음의 백중(百中)과 우란분회(盂蘭盆회)가 같이 7월15일로 예로부터전승되어 온다. 이날은 中國의 도교(道敎,또는仙敎)식으로는 中元(중원)이기도 하다. 中國의 "邢楚歲時記(형초세시기), 17세기"에도 중원에서는 승려, 도사, 속인들이 모두 분(盆)을 만들어 모든 절에 바친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7월15일이 주목된 것은 전기한 대로 신라 儒理王代(유리왕대)의 伽排(가배,한가위)의 길쌈내기 시작날인 7월 가망부터 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불교이전이었고, 우란분회 이전이다. 또 우란분회는 우란분회 대로 이미 석가모니가 그것을 7월15일에 하겠다고 불교경전에는 기록 되어 있다. 우란분회가 7월15일로 되어 있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中國, 日本등에도 공통되어 있는 불교적세시풍속이다. 이상을 종합해서 우란분회, 백중날, 중원들은 각기 기원은 다르고 날짜는 같은 명절이라 하겠다.백중날은 역시 망월(望月)명절로서 달(月)을 표준으로 하는 한국의 명절체계에서는 중요한 날이 아닐 수 없다. 이때는 김매기까지 다 끝이 나고 추수만 남기고서 한숨 돌리며 호미씻이도 하는 때 이다. 남한에서는 최근까지도 단오보다 훨씬 큰 명절이어서, 이날이 고래의 우리명절이 었을 가는성은 매우 크고 여기에 불교의 우란분회가 후세에 와서 뒤섞였을 것이 충분히 짐작된다. 高麗시대에는, 이날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서 조상의 영전에 바치고 아귀(餓鬼)에게도 베풀고 조상의 명복을 빌며, 그 받는 고통을 구제 한다고 했다. 그 연원은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어머니가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있을 때 중들을 달래서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게하고 어머니르 구원한 일에서 비롯 된 것이라 한다. 불교적으로 조상의 넋을 공양한다는 성격이 특히 강한 명절의 행사인 셈이고, 그러한 성격은 후세에도 없어지지는 않았다. 가령, 朝鮮후기의 "동국세시기"에 이날을 망혼일(亡魂日)이라 부르며 여염집 사람들이 이날밤 제물을 차리고 죽은 아버이의 혼을 부른다고 했다. 한편, 高麗시대에는 불교시대였지만 유교적인 세시풍속의 형성도 없지 않앗다.그 첫째로, 우선 석존을 들 수 있다. 석존은 중국고대이래의 제의가 漢代이후, 공자(孔子)를 제사하는 의식이 된 것이고, 한국에도 유교전래이후 이 제사가 있었다."高麗史"는 국초부터 문선왕묘(文宣王廟)를 국자감(國子監)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뒤 석존의 기록들이 보인다. 석존은 지금도 춘추 2회로 2월과8월의 첫정일(上丁日) 에 거행 한다. 서울의 성균관의 석존(釋尊)은 지금까지 많이 알려 져 있고 지방향교듣에서도 거행 한다. 이것은 향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에게 춘추로 연2회 孔子를 비롯한 선현들의 덕을 이어 받게 하려는 정신적인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년중행사이기도 했다. 시기와 횟수에서는 오늘날의 대학의 봄,가을 축제와 상통하는 바도 많으나, 본질적으로 그 성격에는 시대차가 현격한 것이라 하겠다. 또 다른 유교적인 풍속으로는 우선 朱子學(주자학)의 도입과 조상숭배의 시작을 들 수 있다. 이것은 高麗말 유교의 흥성에 따라서 정몽주(鄭夢周)의 건의에 의하여, 대부이상은 3대, 6품이상은 2대, 7품이하 서민은 1대부모만을 제사지내고, 각기 가묘를 건립하고 종손이 제사 지내도록 하는 국령을 내리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오로지 불교와 무속(巫俗)으로 조상숭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이상 3대도 朝鮮시대에 와서 까지도 실행이 어려웠던 기록이 적지 안않고, 많은 논쟁과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오늘날 명절의 다례(茶禮), 10월의 묘제(墓祭), 또 각가정의 기제(忌祭)까지가  다 가정나름의 세시풍속이 되어 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세시풍속이 민속에서, 정신적으로도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한데, 그 시작이 이때 이루어 졌다는 것만 해도 우리민속에서 대단히 비중이 큰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유교적인 세시풍속은 高麗시대에 일반화 된것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종류들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 한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도 입춘일(立春日) 대궐안에 써 붙인 춘첩지(春帖子)의 시가 5,6편이 보이고 있다. 또, "동국이상국집"에는 9월9일 중양등고(重陽登高)의 시도 보인다. 이 행사들이 꼭 유교적이라 할 수 있는것 들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러나 매우 문학적이고 선비다운 행사들이 어서 유교적인 것으로 같이 묶어 볼수 있다. 세시풍속인 놀이로서 많이 눈에 띄는것은 석전(石戰), 그네, 격구등이 있는데, 이들이 모두 高麗시대에는 5월 단오에 흥성한 느낌이 많다. 먼저 石戰은 위에서 三國시대 高句麗의경우를 보았거니와 高麗의 석전은 시기도 분위기도 이제는 아주 달라졌다. 우선, 계절이 5월이 되고, 또 예컨데 禹王 6년 5월조와 같이 "나라 풍속이 단오에 무뢰의 무리들이 군집해서 돌 싸움을 한다"고 하였다.

高句麗때의 국왕임석하의 종교성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禹王은 특히 石戰을 좋와 해서 구경다닌 기록이 여러차례 나온다. 그네는 "동국이상국집"에도 "나라풍속에 단오에는 반드시 이 놀이를 한다"고 하였다. 그네는 상하층으 사람들이 모두 뛰었겠지만, 기록에 나오는 상층계급의 그네는 호화롭고 현란한 것이 었다. 예컨데 경기체가(景氣體歌)에 나오는 그네도 그렇다. 또 단오에는 격구를 하였다는 기록도 자주 보인다. 그래서 5월의 단오가 본래 신록이 부활하는 활기 찬 젊은이의 명절로 세게의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高麗의 단오는 석전, 씨름, 그네, 격구등 오늘날에 비해 상무적이고 씩씩한 기풍의 큰 명절이 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 삼국시대 이래로 전승되어 왔던 세시풍속들 만을 나열 해 보면 , 먼저 立春의 春帖子에 이어 正月, 二月의 燃燈, 春秋의 石戰 그리고 端午의 그네, 씨름, 石戰, 擊球등이 있었다. 여름철의 百中, 가을의 重九 그리고 十月의 八關會등이 있다. 이상은 중요한 것들이고 , 이밖에도 그 수효는 아주 많다.

참고, "高麗史" 한국사,대한민국문교부 국사편찬위원회 권 5,6,7,8 탐구당, 1983"

        "한국민족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주근 개정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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