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예술; 한국음악 1.

2023.01.31 13:49

김일하 조회 수:3

한국국악, 그 1 ; 

한명희씨의  전통음악의 특성과 한국인의 영혼이라는글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음악. 

근래에 접어들면서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관심은 괄목 할 만큼 향승 되었다. 그만큼 자아의식 내지는 민족주체의식이 고조 되었다 하겠다. 조용히 상승 그래프를 그려 가고 있는 국학(國學)의 붐을 타고 우리 국악에 대한 일반의 태도도 현저하게 달라졌다. 우선 호부(好否)를 차치하고 라도 국악이 어떤것인가를 알아 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엿 보이고 있으며, 내 것을 모르고도 당연지사 처럼 여겼던 과거의 허물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자성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역시 전통의 피는 외래의 향수보다 진함을 자각한 셈이다. 그런데 이 국악이라는 이끼 푸른 이 전통의 선조는 모처럼 회개하고 돌아 온 젊은 후손들에게 시종 침묵으로 일관하기가 일수이다. 자상한 속삭임이 없고 누구나를 포용하는 아량이 없다. 아니, 그들 사이에는 이미 공통의 언어가 상실된지 오래 인지도 모른다. 여하간 국악을 찾는 많은 후손들은 엄연한 문화의 선조인 전통음악으로 부터 이렇다 할 의미 계시를 얻지 못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박물관에 진열된 국보급의 명품앞에서 별다른 감흥 없이 돌아서는 초심자의 경우와 다름 없는 현상이다 국악과 정상적인 교감에 실패하는 주된 원인은 무엇보다 지금까지 몸에 익혀온 서양음악적인 지평에서 국악을 바라보려 하는데서 오는것이라 하겠다. 서로 다른 토양속에 자라온 예술을 어느 한쪽의 척도만으로 재려고 할때 거기엔 반드시 크나큰 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국악의 본질은 한국의 문화적 전통에서 찾아야 하고 서양음악의 본질은 서구의 문화 풍토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자라온 우리음악을 서양음악에 준측해서 악식이 어덯고 화음이 어덯고 음진행이 어덯고 하는 식으로 대비 평가 한다면 오히려 국악의 실체는 숨어 버리고 만다. 그러면 이제 국악과 한발 가까와 질수 있으며 어렴풋이 나마 국악의 진수를 포착할수있는 길이란 자명해 지는 것이다. 국악을 있는 그대로 놓고 우리식으로 바라보고 그 고유의 특성을 찾아 보는 길이라 하겠다. 씨의 논문속에서 말하고 있는 무지카 문다나로서의 아악 이라든다, 싱싱한 다이나믹이 펼치는 정관의 세계, 흥과 신명의 오지 민속악 등은 차차 내용이 진행됨에 따라 논의 될 것인데 , 우선 하여야 하는 것이 국악의 역사를 알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 하여 긍지를 느끼는 것이 먼저 해야할 일이라 생각 한다.

1. 한국음악.(편집, 우리 모두의 백과 사전, 위키 백과에서) 

  한국음악사에서 한국음악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음악의 유래를 따져서, 향악(鄕樂), 당악(唐樂), 아악(雅樂)으로 나누기도 하고, 목적에 따라서 제례악(齊禮樂) 년례악(年例樂) 민간음악 으로 나누기도 하고, 연주형태에 따라 기악, 성악으로 나누고, 악기편성법에 따라  합악(合樂), 삼현육각(三鉉六角), 세악(歲樂), 병주(倂奏)같은 말도 쓰인다. 또 서양음악의 분류법에 따라 관현악곡, 중주곡,독주곡, 합창곡, 독창곡 으로 나눌수도 있고, 종교음악, 세속음악으로 나눌수도 있다.

1). 역사적 분류법,

  (한국음악의) 역사적 분류법은 악곡의 유래와 형식에 의한 구분법이다. 이 구분법상에서 국악은 크게 아악, 당악, 향악 으로 나눈다.

(1). 아악(雅樂); (아악본문 참조)

    中國 宋(송)나라에서 유래한 정악(正樂)으로 구체적으로는 高麗 예종(睿宗)11년(1116)에 수입된 "대성아악(大晟雅樂)"을 가르킨다. 高麗 중기까지만 해도 널리 쓰였으나, 후기에 쇠퇴 하였다. 朝鮮시대에는 세종(世宗)때에 박연이 중심되어 아악을 정리 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아악곡은 "문묘제례악(文廟齊禮樂)하나 뿐이다.

(2). 당악(唐樂,당악 문서참조).

   中國 唐나라에서 전래한 음악과 더부러 中國 宋나라의 사악(辭樂)을 총칭 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에 보이며,"高麗史,樂誌(악지)"에 40여종의 으악이 소개되어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唐樂은 "보허가"와 "낙양춘(洛陽春)" 두곡 뿐이다. 唐樂은 대체로 黃= C 의 음계를 따른다.

(3). 향악(鄕樂), (향악문서 참조)

   아악과 당악을 제외한 한국의 재래음악과 서역(西域)에서 전래된 음악을 총칭 한다. (판소리, 민요, 잡가 등은 제외) 향악은 대체로 黃=Eb의 음계를 따른다.

2). 현대적 분류법.(편집)

   지금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분류법으로는 "정악(正樂)" 과 "민속악"으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1). 正樂,

   정악은 궁중음악과 민간 상류층에서 연주되는 모든 음악을 가르킨다.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의식음악(齊禮樂)으로 분류되는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 "궁중의 연례악" , 민간상류층에서 향유하던 "풍류음악'으로 분류 할수 있다.

(2) 민속음악, 

   민속음악은 정악에 대칭되는 말로서, 민요와 판소리, 잡가, 산조, 시나위를 포함 한다. 크게는 불교의 종교음악인 "범패" 도 포함 된다.

3). 발전 및 계승, (편집)

(1). 상고(上古)시대,

  上古시대 국악에 관한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 동예의 무천 등과 같은 절제(節祭) 같은 제천행사(祭天行事)에 관련된 中國역사서에 기록된 것으로 추리 하는데, 밤새 술마시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이 三國誌(삼국지) 眷 三十, 魏書(위서) 三十, 鳥丸鮮卑東夷傳((조환선비동이전)등에 따르면, 夫餘;以殷正月(十二月) 祭天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 迎鼓 라 했고, 高句麗;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十月國中大會 迎隨神還于國東 上祭之置木隨于神坐 했다고 하면서, 東沃沮; 有似高句麗 라 했고. 비婁; 其人形夫餘似 言語不與夫餘高句麗同 이로 한다. 濊; 常用十月節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又祭虎以爲神 한다고 했다. 韓; 馬韓 辰韓 弁韓 常以五月下種 乞祭鬼神群聚 歌舞飮酒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踏地 低昻手足相應 節奏似有鐸舞 十月農功華 亦復如之信鬼神 國邑各立一人 主祭天神名之天君 又諸國各有別邑 名之爲蘇塗立大木 縣鈴鼓事鬼神 한다고 했다. (설명은 피 했다. 전징 등에서 여러번 설명한 것이어서 양해 바란다)

(2) 三韓의 음악,

  한국음악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中國 陳壽(진수, 233~297)이 찬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으로, 이에 따르면 馬韓에서는 5월과 10월에 귀신에게 제를 올리며 군중들이 밤낮없이 술을 마시며 춤을 추었다고 했다. 이 3세기의 馬韓의 굿 음악은 오늘날의 별신굿이나, 도당굿에서 굿패들이 꽹가리와 북을 치면서 춤추는 요란한 음악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3세기 馬韓, 弁韓의 강렬하고 투박했던 음악은 아마도 저 新羅의 유적에서 발굴 되는 흑색의 소박한 토기에 비할수 있겠다.  

(3). 弁, 辰의 악기 鼓(북고),

   中國 삼국지 동이전에 의하면 弁 辰이 중국의 축(筑,악기이름축)과 형상이 비슷한 현악기가 있었다. 가야국(伽倻國) 가실왕(嘉實王)이 가얏고 를 만들고 왕산악(王山岳)이 거문고를 만들기 전인 이 최고의 이 악기를 "鼓(북고)"라고 불리는 가얏고의 전신인 것이며  이미 6세기에 가얏고(가야금)가 가야국에서 새로 생긴 뒤에 자취를 감추고 만것 같다.  俗歌舞飮酒喜 瑟有其形筑似之彈 亦音曲有 라고 힌 것이 그것이다. 

(4). 황해도 안악(安岳) 古墳(고분) 벽화에 나타난 음악.

   영화(永和)13년(357)이라고 하는 연대가 표시하는 안악고분 제3분의 벽화는 여러가지 中國 고대악을 보여 준다. 전실의 한 벽에는 입고(立鼓)와 蕭(소)를 연주하는 두사람과 노래하는 한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漢 (한)나라의 殿庭(전정)의 鼓吹(고취)를 그린것이라고 생각 한다. 회랑(廻廊)의 벽에는 대행렬도가 있는데, 후부에 기마악대(네사람으로 되어 있다) 일렬횡대로 鼓 蕭 茄(또는 小角(소각)) 요고를 연주하고 있는데, 이 기마대의 음악은 漢代의 단, 소 ,요고, 가 를 그린것 같다. 후실의 벽에는 세시람의 악사가 앉아서 각각 거문고 또는 箏(쟁), 阮咸(완함), 長笛(장적)으로 춤 반주를 하는 모양이 그러져 있는데, 이 그림은 후전(後殿)의 曲宴(곡연)을 그렸던것 같다. 이 4세기의 고분벽화에 그려져 잇는 立鼓, 蕭, 茄, 요고 등의 漢代악기는 한강유역에서 발굴 된 醮斗(초두)와 함께 漢문화의 특색을 보여주고, 弁韓, 辰韓의 樂과는 전연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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