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6 06:31
2. 各各(각각)의 境(경)에 대하여, 別境 (第14송, 2,3, 4, 句)
次別境謂欲(차별경위욕) 다음(次)은 別境中의 욕심(欲求)이다.
勝解念定慧(승해념정혜) 勝解 와 念 과 定 그리고 慧 등 이다.
所緣事不同(소연사부동) 所緣의 事(사실)은 不同 이다.
요약하면 다음은 別境인데, 거기에는 欲 과 勝解 와 念 과 定 과 慧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대상은 제각기 따로따로 이다.
別境이라고하는것은, 서로 다른 각각의 境에 대하여 작용(働)한다고 하는 의미 이다.
(1) 欲境. 다른 말로 "所樂의境) = 소원하며 바라는 境에 대하여 작용(働)하는것이 "欲의 心所 이다. "欲"이란, "희망의 心所", 즉 희구한다는 "마음"의 작용 이다. "欲"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대개의 경우, 나쁜 "마음"의 작동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그러나 "欲"이라는 말에는 惡이라는 것의 작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成唯識論]에는 "善法欲(선법욕)"이라는 말 이 있는데 수도수학상(修道修學上)에서 plus 면에서 작용하게 되는 면의 경우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欲"이 탐욕(貪欲)이 될 대는 좋지 않은 현상 이다 그러나 "欲"은 善惡 어느 쪽에서도 작용(働)하기 때문에, 원하는것을 희구하면 된다. 이러한 "마음"의 작동자체는 善惡 어느쪽도 아니기 때문 이다. 그런데 [成唯識論]은 "勤(부지런할근)이 依로 되는것이 그 業用 이다" 라고 말 하고 있다. "勤"이란 말은 정진(精進)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에, 善惡 어느쪽도 아니라고 분류하면서, 그럼에도 그것을 佛敎修行 쪽으로 몰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말하고 있는것 같이 보여진다.
(2)는, 勝解, "결정의 境" 에 대하여 動(움직이는)하는 "마음"의 작용(働)을 말 한다. 그것을 勝解(최고의 진실, 원의(原意)는 최고의 의의(義意)라는 意, 第一義 라고도 한다, 동의어로 는 "眞如(진여)" "실상(實相)"같은것이 있다, 演讀者註) 라고 한다. 즉 작동하지 않는 境에 대한, 그것을 확인하며 단정하는 작용(働). "印持(인지)"라고도 하고 "不可引轉(불가인전)"이 있기 때문인데, 우왕좌왕하지 않는다고하는 뜻이기도 하다. 이 역시 善惡양편으로 작용(働)한다. 그러나 [成唯識論]은, 境에 대하여 유료(猶了)하는것은 "勝解"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猶了"란 뒹에서 배울 근본번뇌의 하나인 "疑"의 성질이라는 것인데,거기서 추리 할 떄, 확실히 번뇌에 등 돌리는 佛學道의 방향을 향한다는 입장에서, "勝解"로 포착 된다고 해도 되겠다.
(3) 念은, "曾受의 境"으로 향하게 되는 "念(생각할 념)"의 心所 이다. 스스로 경험한것을 확실히 기억하며 이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念"이란 明記不忘(명기불망)의 작용(働)을 말 한다. 이것 역시 당연, 善惡어디에도 작용(働)한다. 집념,원념 같은것은 惡의 "念". 念佛 念願 같은것은 善한 "念"이 되겠다.
(4) 定은, "所觀(소관)의 境"을 향하게 되는 "定"의 心所 이다. "所觀의 境"이란 관찰의 대상을 말 하는데, 관찰의 대불상에 대하여 "마음"을 집중하며 깊이 주의하는 "마음"의 작용(働) 이다. "定"이란, 專注不散(전주불산)의 心所를 말 한다. 이것 역시 善事에 대해서도 惡事에 대해서도 정신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善惡 두방향으로 작용(働)은 하는데, [論]에서는 "智에 依"라고 하고 있는것으로 보아 생각한 데로 佛道의 방향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되겠다. "定"은 生得定 과 修得定으로 나누게 되는데, "生得定"이란, 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정신적 집중력을 말 하고, 확실히 別境의 "定"이다. 그것에 반하여 "修得定" 이란, 수행에 의하여 얻어진 "定"으로서, 앞에서말 했던 無想定, 滅盡定같은 것으로서, 이것은 心所로는 포함되지 않게 되기 때문에, 五位百法의 분류에서 "不相應行"속에 포함 시키게 되어었던 것이다. "五行百法"이란, 心王, 心所, 色, 不相應行, 無爲의 분류를 말 하고, "不相應行"이란, 非心非色의 法을 말 한다. "定"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즉시로 結跏趺座(결가부좌)를 연상하게 되는데, 원래는 專注不散이라고 하는 "마음"의 작용(働)을 말 한다. 心所의 하나이기 때문에 신체의 행위는 이니고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5). 慧는, "所緣의 境"을 향하고 있는 "慧"으 心所 이다. 대상을 간택(簡擇)하며 나누어 판단하는 작용(働)이다. "간택(선별)을 性으로 하는 "斷疑(단의)"를 業으로 한다. 대상은 "定" 과 같은 "所觀의 境"이다. 물론 이것도 善惡 두 방향으로 작용(働)하지만, "斷疑"의 疑는 ㅂ번뇌이기 때문에, 당연히 佛道가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末那識"에서 보았던것과 같이 공동으로 작동하는 心所가 18이 있엇는데, 그 중 "慧"라고 하는 心所가 있었다. 자기를 중심으ㅡ로 해서 제사를 구별하면서 가는 모양이 포착되어 있었는데, 인간관찰의 예리함에 감탄했었다. 그것이 이 心所 이다.
境의 다름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欲 = 所樂의 境
勝解 = 결정의 境
念 = 曾受의 境
定 = 所觀의 境
慧 = 所觀의 境
[頌] 4句의 "所緣事不同"이 의미하는 부분 이다.이ㅣ상이 別境의 心所의 개요인데, 이 5개의 心所는 "遍行"의 心所와 같이, 어떠한 "마음"과도 어제던지 같이 작용한다는것은 아니다. 어떤때는 欲만이, 어떤떄는 勝解만이작용 한다. 또 2개가 같이, 5개 모두 작용 할 때도 있다. 그런데 [俱舍論]에서는 이 "別境"의 5는 "遍行"의 5와 같은 분류항목에 포함시켜, 두편을 합하여 "十地法(십지법)"이라고 하고 있다. 그것들을 어떤때에도 작용(働)하는것과, 대상의 다름에 의하여 작동하던가 작동하지 않는것과를 분류하면서 전자를 "遍行" 후자를 "別境"이라고 한 것이 唯識의 재편성 이다. 이것은 나의(저자) 감응이긴 하지만, "別境의 5 心所"는, 다만 대경이 다르다는것 만이 아니라, 佛道修行의 방향을 확실히 나타내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방향을 향해 강력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작용(働)하려고하는 성질이 포착되어 있는것 같이 생각 된다는 것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5 | 10 |
»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6 | 11 |
10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7 | 16 |
9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8 | 15 |
8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9 | 18 |
7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10 | 15 |
6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13 | 22 |
5 | "유식 30송" 현장감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14 | 24 |
4 | '유식 30송"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16 | 17 |
3 | "유식 30송"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20 | 16 |
2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29 | 8 |
1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30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