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7 11:20
3. 善한 "마음", 제11송.
善謂信慚愧(선위신참괴) 善이라고 하는갓은 일러(謂) 信(믿음)과 慚(부꾸러움)과 愧 (부꾸러울) 와
無貪等三根(무탐등삼근) 無貪(무탐) 등의(等) 세근원(三根) 이다.
勤安不放逸(근안불방일) 勤 (부지런함)과 安(평안함)과 不放逸(불방심) 과
行捨及不害(행사급불해) 行捨와 또 不害 들이다.
善이란, 信 과 慚 과 愧 와 無貪, 無瞋(무진), 無癡(무치) 와 勤과 安, 不放逸, 行捨및 不害 같은것들 이다.
善하게 되는 "마음"의 心所를 말 한다. 전부 11개 이다. 그 11개의 心所는 禪定에 들었을 떄에는 전부를 구비하게 된다. 禪定에 들지 않아을 때는 "安"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安"을 제외한 10개의 心所로 되게 된다. 먼저 "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成唯識論]은, 두가지 답을 주고 있는데 이것을 알아 보자.
첫째는, "卷第四"의 "四種善(4종선) 이다. 이 4종善이란 (1)自性善(자성선) (2)相應善(상응선) (3)等起善(등기선) (4)勝義善(승의선) 이다.
(1). 自性善 이란, 11개의 善의 心所 전부, 그 자체 이다.
(2). 相應善 이란, 11개의 善의 心所와 더불어 작용(働)하는 또 다른 心所를 말 한다. 예를들면 "遍行"의 心所는 三性에 통한다고 하는 것과같이, 善의 心所와작용(働) 할 때에는 비록 善일찌라도 惡의 心所와 같이 작용(働) 할 때는 惡이라는 것이다. 즉 自性善은 약(藥) 자체 인데, 相應善은 藥을 다린 물이 藥水(약수)가 되는것과같이 통채로 藥이 된다고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3). 等起善 이란, 自性善 과 相應善에 의하여 引起(인기)되어진 善을 말 한다. 無表色(무표색, 善, 惡 행위의 여력(餘力)이 잠재되어 있는 경우) 와 不相應行(불상응행, 사물에도 마음에도 없을 경우) 과 善의 種子를 말 한다.
(4). 勝義善 이란, 無爲法(무위법)을 말 한다. 不生不滅의 영원한 진리 그 자체를 말 한다. 좀 더 자세히 말 한다면, 6 無爲( 虛空(허공), 擇滅(택멸), 非擇滅, 不動, 想受滅(상수멸), 眞如(진여) 中에서, 虛空, 非擇滅 이외의 法을 말 한다(深浦正文"유식학연구"하권). 결론적으로, 앞의 3개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것이고, 4번째의 勝義善은 진리 그 자체를 나타낸 것이다. 생각 해 볼 때, 이것은 "善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질문에대한, 제설(諸說)을 소개하면서 강론을 전개하는것이 아니라, 단적으로 善하게 되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어 그것에 답하고잇는 것이라고 하면 되겠다. "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는, 십중팔구 인류와 같이 태고로 부터의 물어 왔던 문제였고, 아마도 금후 와 영원히 계속 추구계속되는 과제 일 것이다. 거기에 대하여 여기서 말 하려고하는 이분류는 善하게 되는 "마음"을 분석하여 정리하여, "善이란 이 11개의 心所를 구비하여 가지는 것이다" 라고 답 하고 있다. 이론과 의론이 아니고, 구체적인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것으로서 "이것이야 말로 善 이다" 라며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 하고 있다. 이러쿵저러쿵 의론하는것이 아니고, 교설의 우열과 심천이 검토되는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실천덕목으로서 나타내고 있다고 해도 되겠다. 善惡의 문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는 되겟지만, 상대적인 차원에서의 탐색을 정면으로 만나게 된다는 어려움도 있는데, 이 "勝義善"은 그것을 초월한다. 시간과 지역과 인간의 사고, 희망같은것을 초월한 절대적 善 을 의미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마음"의 구극적인 상태는 安住(안주) 가 되겠는데 그것이 "'無爲法"이라는 것이다. 제멋대로의 思量(사량)은 용서가 안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 '無爲法"이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無常, 無我 의 緣起(연기)의 이치에 구체화되는 진리 이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몇번이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대목 이다. 외냐하면 無常, 無我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모순된 표현인것 같지만, 無常, 無我는 有爲法의 법칙인데, 어찌하여 無爲法과 같이 되는것인가라는 것인데, 그것은 법칙이라고하는 면에서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有爲法 과 無爲法은 非一非異의 관계에 있다 라는 말은 이를두고 하는 말 이다.
두째는, "善"의 정의는, "能히(잘) 此世他世를 順益(순익)하게 하는가 하는것 때문에(故) 善을 행(行) 한다" 라는 것이다. "善"은 今生(금생)만의 문제가 아니고 내세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존재를 현세에 한 한다고 보고 있지 않고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은 고작해야 100 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인생을 대체적으로 이정도의 범위로 무의식리에 한정하고, 그것이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 하고 있게 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그것을 뛰어넘어 더 멀리 있다. 무수한 조상들이 쌓아 올린것들을 계승한 곳에 나의 인생이 있고, 그 중에 한 점보다 작은 나의 인생이 발판이 되어 자손에게, 그리고 미래에 연속 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 전체가 나의 인생 이라는 것이다. 이 "善"의 정의는 그러한 깊은 통찰의 선상에서 深眼(심안)을 가지고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5 | 10 |
11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6 | 11 |
»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7 | 16 |
9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8 | 15 |
8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09 | 18 |
7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10 | 15 |
6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13 | 22 |
5 | "유식 30송" 현장감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14 | 24 |
4 | '유식 30송"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16 | 17 |
3 | "유식 30송"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20 | 16 |
2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29 | 8 |
1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5.04.30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