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9 10:48
(2). "慚(부꾸러워 할 참)" 과 (3) "愧(부꾸러워할 괴)"
善의 心所의 (2) 와 (3)은 "慚" 과 "愧"인데, 두개가 다 부꾸러워 하는 "마음" 이다. 慚과 愧에 대하여 [論]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慚 = 自 와 法의 힘(力) 의하여 賢善(현선)을 崇重(숭중)하며, 惡行을 止息(지식) 한다.
愧 = 世間의 힘(力)에 따라 暴惡(폭악)을 輕拒(경거)하고 惡行을 止息 한다.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면 알게 되는것같이 慚은 내면적이며 자율적이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법에 비추어 보아, 자기의 불완전에 부꾸러움을 느낀다. 이에 비하여 愧는 타인의 눈과 세상의 수군거림(噂)에 신경을 쓰면서 惡行을 하지 않겠다는 타율적인 부꾸러움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면적인 慚도 타율적인 愧도 다같이 자기 미숙에의 성찰로 부터 생겨나는 心所임으로, 종교적인 悔過(해과) 등이 이 心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4). "無貪(무탐)". 流轉(유전)의 인생에의 執着(집착)없는 "마음" 을 말 한다. [論]은 "有와 有具(유구) 같은것에 著(나타날저)함이 없는 것을 가지고 性으로 하고, 貪著(탄저)없는것을 가지고 業으로 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자기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것에 執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 "無瞋(무진 부릅뜰진, )". "苦와 苦具 같은것에 의하여, 恚(성낼 에)를 내는것을 性으로 하고, 瞋恚(진에, 성을 내며 남을 원망하는)에 대치하면서 善行 하는것을 業으로 한다." 瞋이란 자기마음에 들지 않는것 즉 苦와 그것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苦具)것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분노 를 말 한다. "無瞋"이라는 말은 당연 그것이 없다는 것. 그것이 없다라고 하는것은 다소 비약하는것 같지만, 이것은 자기보다 남을 내 세운다고하는 것을 의미 한다. 남을 내 세우는것을 정말로 會得하게 되었을 떄, 그에게 "無瞋"은 구비되어 있다고 보게 된다.
(6)."無癡(무치)". "諸諸(모든것의)의 理 와 事 같은것에서 明解(명해)하는것을 性으로 하고, 愚癡(우치)와 대치(對治)하여 善行하는것을 業으로 한다." 라고 되어 있다. 道理(도리)와 그것에 일관하는 事實(사실)에 있어서 그것을 틀림없이 확실히 이해한다고 하는 것이 無癡 이다. 佛敎의 軸(축)이 되는것은, 존재와 인식의 구조, 즉 자기의 정체를 見究(견구)하며 납득하고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無癡"는 佛敎의 근본에 관계하는 중요한 心所가 되겠다. 佛敎에서는 "無貪" "無瞋" "無癡"를 三善根이라고 부른다.
(7). "勤(부지런할근)". 精進이다. [論]에서는 "善惡品을 修하고 斷하게 되는 事中(일중)에서 勇淂(용득)하는것을 性으로 하고, 懈怠(계을을 해, 태)에 대치하여 善을 만족시키는 것을 業으로 한다," 라고 기술 하고 있다. 惡을 끊고 善을 수행하는 사실속에서 勝進堅宇(승진견우)하는것을 "勤"이라고 한다. 勇이라고 하는것은 精進(정진)을 나타내느고 "淂"니라는것은 精純(정순)을 나타내는것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善한 행위를 적극적으로빠짐없이 순수하게 실행한다고 하는 것인데, [論]의 문장을 보면서, 저자는 자칫하면 보아넘기기 쉬운 善의 행위의 결연한 강력사(强力事)의 일면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善한 행위"라고 하는 표현에는, 무언가 모르게 easy 하고, 온화함과 청순함과 같은 유순함을 감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절의 배후에는 "惡을 단절한다" 라고 하는 강력하고 엄숙한 표현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을 잊어서느 않된다는 것이다. "善한 행위"의 배후에는 惡을 허용 할 수 없다는 결연한 배제의식의 강력한 일면이 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 돈다고 생각 한다. "善"이란 결코 위약한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8). "安(안)". 安은 輕安(경안0의 약자. 문자 그대로, 가볍고 편안한 경지를 말 한다. [論]은, "身心을 調輰(조, 수례양,수례를 조종) 하는 "마음"이라고 하고 잇는것과 같이, 身心이 태평하고 평안한 상태를 말 한다. 다른 10의 心所는, 전부 같은 모양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 輕安의 心所만은, 禪定체험 時에만 작용(働)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11개으 心所가 다 같이 일체가 되어 작동하게 되는 것은 禪定中 때만이라는 것이 된다. 이것은 모든 佛道修行中의 專注修行의 상태를 말 하는 것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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