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뭍혀졌던 무교화(巫敎畵).

   수년전, 중국 잔사(長沙)에서 발굴된 마왕퇴묘(馬王堆墓)에서 순황금옷으로 둘러싼 남녀 한쌍의 시체와 더불어 많은 그림들이 나왔다. 그중에는 벽화는 물론, 관을 장식한 그림들도 괄목할 만 한 것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끓었던 것은 한장의 백화(帛畵) 였다. 영문 T 자 모양으로 생긴 비단에다 그린 그림으로 거기에는 해와달, 까마귀, 뱀과 같은 금수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한마디로 이런것들은 신화적인 세계를 나타낸 그림으로 이미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고 그리스 등의 고고학적인 유물속에서 그와 유사한 그림들을 본 바 있다. 승 일연(僧 一然)의 용법을 빌린다면 그것은 기이(記異)에 속하는 것으로서 분명히 유교나 불교의 냄새가 나지 않는 이른바 무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교적인 그림이라는 증거는 그 마왕퇴묘보다 훨씬 이전에 발굴된 은허지(殷墟地)의 갑골문에서 나타난 바  있다. 이를테면그 갑골문에는 무당이 왕정을 위하여 점복(占卜)을 한 복문(卜文)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피라밑 벽화에는 무당의 모습이 직접 나타나기도 한다. 그럼으로 우리가 일단 추정할 수 있는 점은 고분속에서 발견되는 그림들은 일단 무교화로 단정해도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고고학분야에서 발굴된 무덤의 벽화들은 물론, 그무덤의 주인상(主人像)을 그린 인물화들도 일단은 무교화 범주 속에 넣어야 한다. 이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적인 대상의 무덤이 단순히 시체를 묻어 둔 무덤이 아니라는 것을 발혀야 할 것이다. 이점에대한 기술은 이 글의 성격에서 벗어남으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우리들은 피라밑이나 인도의 상치탑, 혹은 키타콤, 마왕퇴묘가 모두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분명히 종교적인 숭배물이 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그곳은 무교시대의 성당과 같은 곳이다. 실제로 아끼바 씨 등이 1930년대에 조사했던 산신당이나 탑들 속에는 무덤이나 돌무덤 같으 것들이 실재 히였다. 따라서 그속에 남겨진 유물들이나 그림들은 일단은 무교적인 숭배물로 간주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게 볼때, 결국 지금까지의 무덤의 주인상으로 알려진 인물화들도 마땅히 재인식 되어야 할 것이다. 이집트나 로마 문명시대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미이라화들 중에는 왕의 것으로 신분이 확정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대체로 정체 불명 이다. 뿐만아니라 개중에는 부인상도 있고, 앳된 소년, 소녀상도 있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의 신분은 무엇일까, 물론 귀족, 왕족이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결론으로 만족치 못할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지적될 수 있겟다. 우선 수많은 왕들과 왕족, 귀족들을 제쳐놓고 왜, 그들만이 그런 모습으로 무덤속에 갇혀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만이 특별히 부유했다는증거도 없고, 또한 사치스러웠다는 증거도 없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미이라화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물론 이러한 물음은 잘못된 것이다. 외냐하면, 이미 앞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고분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무교시대의 신당이나 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이라화는 곧 종교적인 숭배화가 된다. 말하자면 미이라 초상화는 결국 무교싣대의 신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정은 미이라화에 나타나는 ㅇㄴ물들이 한결같이 표현주의 회화 양식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들어 난다. 외냐하면 특별히 눈을 ㄱ강조하거나 혹은 코나 입을 강조하기 위해서 강한 색채를 사용한다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대상을 과장 외곡시키는 방법은 고대 이집트의 수메르 벽화나 그 밖의 신화나 전설화에서 볼 수 있드시 그것은 곧 신상(神像)표현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더중요한 증거물들은 인물을 장식하기 위해서 쓰여진 각종 오나멘트 이다. 식물, 조류, 동물의 각종 이메지를 따온 여러가지 문양가지가지의 문양이나 도상이 동원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종교적인 예술의욕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러나 그 인물을 직접적으로 수식하고 있는 수엽관(樹葉冠)이나 귀걸이, 목걸이, 특수한 의상 더욱이 손에들고 있는 앙크(ankh)나 술잔 등은 그것이 신상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수렵관은 고대 중요한 신으로 나타나는 수신(樹神), 즉 목신의 상징인 것이다. 이법에 따르면 목신은 동방신, 이른바 샤먼신이 된다. 우리나라의 대종교단(大棕敎團)에서 보존되고 있는 단군 화상은 상의를 수엽으로 덮고 있는 모습이다. 동방신이라는 표지인 것이다. 삼국지, 후한서, 수서 등의 중국 사서에 보이는 동이족에 관한 기록에는 동이족들이 금관, 귀걸이, 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즐겨 사용하며, 그것을 지니고서 춤을 춘다고 쓰여 있다. 그것이 무당이 굿 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속단 하기에 어렵지 않다. 물론 앙크는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 "우"인데 이집트 말로 "생명"즉 "살린다"는 뜻을 갖이고 있다. 그런데 이 앙크는 십자가 위에 손잡이같은 고리가 달린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결국 샤만왕의 심볼이 된다. 이점은 다른 기회에 상술하기로 하겠지만 여기에서 분명하게 해 둘 것은 이 앙크가 곧 검파(劍把)임과 동시에 산신도와 같은것에서 보이는 도장(道杖), 석장(錫杖)과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술잔의 의미는 더욱 우리들의 이러한 주장을 뒷바침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술잔은 신화에 등장하는 생명수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고사기(古事紀) 신대상(神代上)에 등장하는 신모(神母)의 술잔이 바로 그것이다. 혹은 그리스의 주피터 신화에 나온는 황금의 술잔도 그런 것의 하나 이다. 아뭏튼 그 술잔을 만든 사람은 곧 최고의 신이 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보자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고구려 시대의 고분 벽화를 주목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들은 미이라화와 같은 유형의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안악 고분에서 나온 주인상은 순전히 초상 양식의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볼때 무교시대의 신상화라는 것은 충분 이해 가능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인물들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는 미이라화의 종교적인 오나멘트에서 본것과 같은 해, 달, 구름 조류, 식물 등의 신성 도상으로 장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물이 앉아 있는 장소가소형 당집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 당집은 가마와 같은 형태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삼국유사의 기이편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금합자(金合子)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 금합자를 타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물론 장차 왕이 될 신성한 사람으로 되어 있다. 이를테면, 탈해, 수로, 고주몽, 해모수 등, 그들은 모두가 금합자나 금궤에 실려 천계로 부터 지상으로 강신한 인물들 이다.  따라서 이 때의 금합자, 즉 가마는  곧 신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점은 불각(佛閣)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 정체가 잘 들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더 안악 고분에서 우리가 주의하여 보아야 할 점은 이른바 공양도라고 부르는 그림 장면이다. 일반적으로 이 장면은 주인에게 베푸는 공양의 모습이라고 풀이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석 이다. 왜냐하면 귀인의 식사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장면이며, 또한 보양의 장면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인물의 모습이 당당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하나의 그릇은 생명수로 상징되는 황금의 잔 이다. 그 황금의 잔을 받는 사람은 곧 무교 시대의 최고의 신인 것이다. 삼국유사 기이편 충족사조(忠族師條)는 비록 그것이 다기(茶器)로 나타나 있지만 대왕(神)이 충족의 잔을 받아 그 솜씨를 감정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의 다(茶)가 생명수로 여겨진다는 것은 식물 연금술의 원리로서 충분히 입증 된다. 아무튼 이 공양도는 통과읠례를 치르는 장면이라고 해야 옳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결국 이들 고분 벽화는 무교시대으 무신도라고 해야 옳은 것이다 .그것은 무교시대가 어디까지나 밀교적인, 이른바 닫혀진 종교 양식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더욱 불교와 같이 상(像)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현신(現神) 즉 신인동형적(神人同型的)인 신앙을 갖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닫려진 종교 양식이 어디까지나 은패적인 것이라면 불교와 유교와 같이 열려진 종교 양식에 있어서는 노출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샤마니즘 시대의 신당이나 탑들이 분묘 형식을 취한 데 비해 불교는 노출된 건축 양식을 갖이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말하자면 불교는 보다 더 대중적인 어쩌면 개발적인 양식을 의도적으로 택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무신화(巫神畵)즉 미이라 초상 이라는 것은 결국 지극히 제한된, 어쩌면 선택된 사람에 의해 숭배되는 그림이며, 반대로 불당에 모셔진 불화는 자유스러운 조건속에서 숭배되는 그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와같은 사정은 자연히 그림의 특수한 사정속에서 보아야 하는 그림이며 다른 한쪽은 보다 더 밝고 개방된 상황속에서 보여지게 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무교화가 양식적으로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대신에, 불교화가 장식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들이 지금 접할 수 있는 무속화는 대체로  장식적인 영향을 받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불교화 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산신도나 그 밖의 무신도들은 불사(佛寺)에 모셔져 있다. 이를테면 불교적인 신속(神屬)의 일소신(一小神)으로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런 사정 때문에 무가는 일반적으로 불가를 대가(大家)라 일컷코, 자기들을 소가(小家)라고 일컷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무속화란 결국 소가로 전락된 한개의 소신(小神)의 그림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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