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예술, 민속무용 그 1.

2023.04.23 10:25

김일하 조회 수:35

3. 민속무용(民俗舞踊).

민속무용의 내용과 성격븐석.이경화,

1). 서론,

  이경화는 그의 민속무용의 내용과 성격분석 서론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 인간의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부터 무용은 존재 하였다. 지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이 인간의 본능과 욕구에서 발생, 발전 해 온 것이지만, 특히 무용은 인간이 육체를 사용하고 있는 만큼 가장 직접적인 본능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인간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언어나 노래가 아니고 어머니의 태내에서 움직이는 (춤추는)것이 었다. 춤은 인간이 제일 먼저 하는 활동 이다. 원시시대의 인류는 희노애락을 직접적인 자기의 신체 운동으로 나타 냈고, 소박한 고대인은 수렵을 나가 수확물을 얻거나, 이웃 종족과의 투쟁에서 승리하였을때 그 기쁨을 표현하기 위하여 고묵을 모아 모닥불을 피우고 그 주위를 뛰어다녔다는 것은 널리 알려 진 사실이이지만 이러한 것은 무용의 기원은 되겠지만 무용이라 보기는 어렵다. 무용에 가까운 것이 시작 한것은 동물의 흉내나 자연 숭배 의식으로 사용한 것이 무용으로 가장 오래 된 것이라 생각 된다. 민속무용의 가장 오래 된 것으로 기록 된 것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제의식이라   하겠다. "그 때, 아론의 누이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들이 그 뛰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을 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들은 여호와를 찬송 하라,,,,(충애급기 15장 20절)" 라고 기록 되어 있다. 이것은 유목생활에서 신의 은혜를 감사하는 축하의 제전에서 기쁜마음을 춤이나 노래로 되어 표현 된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중략)

2). 민속무용의 정의.

   일반적으로 민속무용은 향토무용 또는 민속 춤(Folk Dance,집단무용)을 말 하며 그 민족의 독특한 춤을 말 한다.그러나 반드시 한민족이 그 단위라는 뜻이 아니라 한 지방이 단위가 되는 춤이라 하겠다. 이것은 민중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생활감정이며 작사자도 작곡자도 없이단지 민중에 의하여 자라 온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란 것이디. 그렇기 때문에 민속무용은 감상하는 춤이 아니고 스스로 추면서 즐기는 춤이라 하겠다. (중략)

3). 한국 민속무용의 내용.

   한국 무용의 종류는 종교무용, 궁중무용, 민속무용, 현대무용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궁중무용이 종교무용 또는 민속무용으로 변모 된 것도 있다.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고대에 있어서의 무용의 기원은 종교적인 것에서 이룩되었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민속무용도 원래는 종교적인 요소가 있었으나 현재는 별로 찾아 볼 수가 없고, 단지 춤의 원무(元舞)라는 데서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다.

우리 민속무용의 가장 주류를 이루는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농악을 들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농업 생산이 비롯된 때부터 간단하고 소박한 농악 놀이가 시작 되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중세 高麗에 이르면서 많은 발달을 보게 되어 차츰 정비되고 재미있는 놀이로서 정착 되었으리라 믿어 진다.(중약)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이 장구하고 보수적인 만큼 년중 이름있는 명절의 민속에 쫓아 나름대로의 즐거운 놀이가 따랐을 것이고 여기에 아름다운 무용이 돗 보였을 것이다. 정월 상원(上元)에 행 해 지는 영남지역의 지신(地神)밟기와 경기일원의 답교(踏橋)놀이 등이 주로 전 하였고, 5월 단오절을 기해서 각지방의 토속신을 제사하는 곳이 많았다. 특히 강원도 강능의 대관성도신(大冠聖道神)은 이미 高麗초 부터 전승되어 오는 유서깊은 제사로 유명하다. 한편 충청도의 은산별신(銀山別神)제도 百濟 장군 복신을 제신으로 하여 천여년을 내려오는 것이 라면 高麗시대에도 자못 성대히 거행 되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음력 추석 한가위는 거국적인 명절로서 여러가지 행사가 곳에 따라 난만 했다. 전라도 지방 부녀자들에 의한 특유한 놀이인 "강강수월래"는 추석달 밤에 펼쳐지는 정결하고 아름다운 민족 전래의 무용이다. 가배절의 유래와 더불어 구슬프고 구성진 회소곡(會蘇曲)의 가무가 高麗시대 이후로 계속 이어 왔을 것으로 믿으나 남아있는 기록이 없으므로 확증하기가 어렵다. 高麗시대에 기원 한 것으로 비교적 정확한 것으로 "놋다리놀이" 가 있다. 또한 안동지방에서 행하는 남자들만의 씩씩하고 용감한 "차전놀이, 즉 동체싸움도 高麗시대 부터 전해 오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민속놀이의 하나 이다. 高麗 태조의 고사와 얽혀있는 차전놀이는 이름 그대로 동서로 펴을 나누어 수천명이 대진하는 용감무쌍한 싸움으로 싸움에 들어가기 까지의 도입부와 승부가 결한 뒤의 기쁨과 실의에 고착된 상반의 국면이 음악과 무용으로 잘 형상화 된 민족놀이 이다.

4). 대표적인 민속무용.

  (1). 농악,  농악은 농촌의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농민들의 무악(舞樂)으로서 전국 어느지방이에서나 찾아 볼 수 있으며(지금은 어느곳이나 있지 않지만) 또한 농미들 외에 무당, 사당, 광대, 걸립 등이 치고 다니기도 하였다. 농악은 三韓시대의 원시적 신앙심(농사와 관계 깊은 신에게의 제사)으로 부터 유래 되었다고 보는 이가 많다. 그러나 농악은 대개 농사에 따르는 수고를 덜고 일의 능률을 올리고 기운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수 있다. 농악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셋으로 묶어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풍농과 안택(安宅) 기원설: 농사 파종과 추수감사를 신에게 축복하는 굿과 또는 안택을 기원 한다는 뜻에서 농사 전체에 쓰여 지는 신의 발동을 진압하는 지신밟기, 매귀굿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농악의 기원에 관한 문헌이라 할 수 있는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馬韓에서는 5월 파종 할 때와 시월 농사를 끝마칠 때에는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떼를 지어 춤과 노래로서 밤낮없이 놀았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때 농악은 三韓시대에서 그 유형을 찾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농악놀이를 '매고" 라고하여 "매" 란 뜻은 떼를 짖는다는 어원에서 나온 것이라 보고 "고" 는 북을 말 한다. 이 말의 뜻은 두드린다는 뜻으로 보고 있기도 하나 실은 매귀를 '매고" 라 전한 것이다. 따라서 남부지방에서는 농악을 "매고" 또는 "매귀" 라고 이르며, 이는 귀신을 묻음으로서 집안이 편안하게 된다는 벽사축신의 사상에 연유 한 것이다. 

둘째는, 군악설: 이 설은 전시하에 반농 반군 제도를 실시하여 농민을 농군으로 훈련 양성하여 비상시에 대처하고저 하는 제도 였다. 따라서 농악의 대형은 전시용 수륙전 팔진법을 음악의 무도로서 지휘 훈련케 한 것이 군악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농악의 의상인 신립의 명칭도 전시에 쓰는 모자를 말 하며 징, 북 등의 악기도 군대에서 많이 쓰였던 악기 이다. 또한 영기를 앞에 세워 위세를 떨치던 장수가 징을 울리면 상쇠는 총 지휘에 나서게 된다. 또한 능숙한 상쇠의 쇠가락으로 부쇠의 기술 능력을 시련하고, 다음은 장고, 북, 소고대 등을 차례로 사열 한 후 변화많은 팔진법의 대형으로 임전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농악은 농병 훈련의 한 방편이었으며 농민을 농군이라 칭 하는 것도 이에 유래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는, 불교 관계설: 高麗때 불교가 정성하여 짐에 따라서 사찰을 건립 또는 증축 하거나, 혹은 사찰을 마련 하기 위하여 이른바 정재 모금의 방법으로 하주승이 다른승 십여인이 일단이 되어 머리에 봉두화를 단 꼬깔을 쓰고 대금, 소금, 바라, 피리 등의 악기를 사용하며 민가를 순방하며 건립 했다. 민가에서도 공익사업으로 즉 농사를 짖거나, 다라를 놓거나 고치거나 상여를 만들기 위한 비용을 동네 각집을 다니면서 풍장을 치던 관습이 오늘날의 농악으로 발전 하였다는 것이다. 농악에 있어서 특징이라 할만한 것은 농촌에서 마을 사람들의 신앙놀이 작업, 그밖의 모든 공동 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며 깃발을 그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동작이 힘차고 선이 큰 것이라 하겠다. 

(ㄱ). 농악의 가락: 농악은 악적인 면과 무적인 면, 두요소가 혼합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락도 삼채굿풍류가락과 같은 것은 음악 명칭의 가락이 되며, 등맞추기굿, 오방신굿 과 같은것은 동작상의 명칭이 된다. 농악에 쓰이는 가락의 특징은 고정적이면서도 때로는 선후를 달리하고 즉흥적인 가락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가락은 자진몰이, 중중몰이, 휘몰이 등 거이 4박장단으로 되어 있으며 쇠가락의 기본은 오채질굿, 외마치굿, 좌질굿, 풍류굿, 오방진굿으로 되어 있으며 잦은몰이 장단을 공박(空拍)과 원박(原拍0과 점박(点拍)의 짜임새에 따라 10여종의 가락으로 변박 시킬 수 있다.

(ㄴ). 농악의 치배(置配,또는 배치) 편성: 농악의 치배편성은 용담기, 영기, 농기, 나팔, 새       납(꽹가리), 징, 장고, 법고(소고), 와 연희대 인, 대포수, 장부, 농구중, 조리중, 무동,         양반, 광대 등으로 되어 있다. 

(ㄷ). 농악의 구성내용: 농악의 진행 순서를(용적'踊跡'을)분석 해 보면 다음과 같은 형태       로  타 난다.( 농악 진행의 순서 별 감상법)

a. 장진 굿----휘몰이장단에 맞추어 일렬로 배열 된다.

b. 방울장 굿--- 외마치 장단을 치며 쇠를 선두로 소라형으로 말아 들어 간다.

c. 되풀이진 굿--- 두마치 가락을 치며 소라형으로 풀려 나온다.

d. 을가진 굿--- 두마치 장단을 치며 Z자 형으로 행렬 한다.

e. 문잡는 굿---빠른 풍류굿 가락을 치며 쇠는 치배들을 일렬로 세운다. 다시 쇠가 선도     하여 두사람의 영기 주변을 돌아 치배들을 두열로 세운다.

f. 삼진삼퇴--- 잦은몰이 장단을 치며 2열의 치배들을 삼진삼퇴 하고 상외는 중앙을

  보행하며 특기를 보인다.

g. 옆품살이--- 두 사람의 치배들이 등을 대고 앉아서서로 반대방향을 보는 동작을 반복.

h. 앉은진풀이--- 치배들은 앉은 채두사람의 영기를 돌아 다시 2열로 된다.

i. 성문을 여는 굿--- 된 삼채 자진몰이를 치며 상쇠는 치배들을 한사람 한사람 씩 영기    를 한바퀴 돌아 1열로 달고 나온다.

j. 낸드림질 굿---외마치 행진가락이나 빠른 풍류굿 가락으로 치배들을 시계침 방향으로 

  행무 시킨다.

k. 좌질 굿--- 오채질굿 가락으로 시계침 돌아가는 방향으로 행무 한다.

l. 느린삼채굿--- 된삼채를 풍류굿 가락을 치며 시게침 방향으로 행무 한다.

m. 된삼채굿--- 된삼채를 치며 시계침돌아가는 방향으로 행무 한다.

n. 을자진--- 중중몰이를 치며 상좌가 원주위에서 Z자 형의 행진을 한다.

o. 오방진---휘몰이 가락을 치면서 다섯개의 원을 만들어 소라형 나선으로 행열 한다.

p. 쌍방울진--- 잦은몰이를 치며 소라형의 원을 두개 만든다.

q. 닫어치기--- 상쇠는 한명씩 닫아가면서 회전하며 원을 만든다.

s. 미지기 굿--- 덩더쿵을 치며 두 줄로 서 있는 치배들이 전진후퇴의 행무를 한다.

t. 영산드래기--- 이것은 상쇠와 부쇠가 원심으로 들어가며 쇠가각소리를 주고 받는

  개인  무 이다.

u. 개인놀이--- 상쇠, 부쇠, 삼쇠 순으로 상모놀이를 하고 다음에는 수장고, 부장고, 상장고의 순으로 구정소리, 호드락가락, 덩더쿵의 굿거리로 특기를 자랑 한다. 소고놀이는 윷놀이와 사사, 일사, 연풍대,두루거리, 자반디기, 나비상 등의 소고놀이를 한다. 끝으로 연희대 와 무동들이 나와춤을 춘다. 이때의 무동춤은 지방에 따라 2인, 3인, 4인들이 춤을 추어 장관을 이룬다.

v. 호호굿--- 치배들이 원을 좌우로 행진 하다든가 원심으로 들어갔다가 물러서고 옆걸    음을 좌우로 한다.

w. 좌우각진--- 상쇠는 치배를 데리고 태극형으로 행무 한다. 처음에는 잦은몰이로 난가     나 뒤에는 휘몰이를 치며 옆 걸음 치며 원무 한다.

라). 소고(법고)놀이의 기교. 짐단무용으로서 격식을 갖춘 무용은 소고(법고)놀이 라 할 수 잇는데 소고놀이의 동작을 분류 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자반뒤지---소고잡이가 거반 누어서 회정한는 동작으로 연풍대에 맞추어 춤 춘다.

b. 나비상--- 소고잽이가 뛰어 떨어지며 나비모얀으로 춤을 추는 형식 이다.

c. 사모잽이---소고 사면을 돌려 치는 놀이. 

d. 홀님당산굿--- 소고를 한번 아니면 두번정도 치는 약식 놀이 이다.

e. 역진당산굿---소고가 앞장서서 역진하는 굿.

f. 두루거리--- 자반뒤지와 같이 들어 거ㅏ는 동작.

g. 윗놀이---소고나 상쇠들이 연행하는 상모놀음으로 부포를 좌우로 4번 돌리는 방법과     좌로 두번 우로 두번 돌리는 법 등이 있다.

h. 소고놀이의 발짖---한장단에 한발 걷기, 한장단에 한발 뚜기, 한장단에 두발 겹으로 걷기, 한장단에 두발 겹으로 뛰기, 두장단에 한발뛰기, 두장단에 앉았다가 이ㅣㄹ어서기, 네장단에 한발 올리고 뛰면서 회전하기, 두장단에 한발 앞무릅을 굽혀 앞으로 내고 앉았다가 일ㅇ서기, 발을 굴려 올리고 소고를 대기, 발을 굴려 올리고 소고를 발 밑으로 가져가 치기등이 대표적 이다. 

(2).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전원이 원으로 모여 손을 잡고 선도자가 훔를 정하여 선도자의 선창으로 전원이 강강술래를 부르며 나선 하는 (돌아가는) 답무 이다. 강강술래의 답가는 대다수가 연가로 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느린 진양조로 시작 되나 점점 빠르게 되어, 중몰이, 중중몰이, 잦은몰이로 넘어 가고 분위기는 고조 된다.이렇게 하여 춤 추다가 피로하면 쉬었다가 다시 한다. 구성형식의 특성은  선도자가 대원을 이끍 원의 중심부로 향해서 점점 원을 좁혀 나선함으로 우ㅏㄴ은 대형은 2중, 3중, 4중, 또는 5중의 원을 만들기도 한다. 선도자가 원심으로 들어가면 방향을 바꾸어 원의 바같을 보고, 원으로 들어 간다. 선도자는 때로는 원주상의 어느부분을 향해 대원을 이끌고 팔 사이를 꿰어 다시 나와서 원주상으로 다시 진입 한다. 이렇게 되면 차단 된 부분이 자연적으로 꼬이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강강술래의 기본적 진행 방법이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기와 밟기 놀이로 들어 가는 수가 있다. 손 잡는 방법에는 손잡고 진행 방향을 향했을 때는 각자의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뻗고 손가락을 휘어 위를 보게 하고 얀손은 손바닥을 밑으로 하여 앞사람의 뒷손에 밀착 시켜 잡는다.또 하나의 방법은 앞서 말 한 방ㅂㅂ과 대동소이 하나 손가락을 밀착 시켜 잡는 것이 아니고 악수하는 것 처럼 쥐어 잡는다. 기본동작으로는 팔을 위에서 밑으로 힘차게 내려 뻗는 방법과 어깨춤을 추는 경우가 있으며 대형이 원심으로 들어 갈 때는 팔을 위로 올리게 뙨다. 기와 밟기놀이를 시행하는경우에는 두사람이 양손을 위로 올려 문을 만들고 다른 대원들은 선도자를 따라 그 문을 꿰어 나가는 것이다.

(3). 기와밟기 놀이 와 놋다리 놀이.

   기와 밟기 놀이의 특징은, 전원이 일열로 앉아서 앞사람의 허리를 감아 쥔 채 업드려 있고 뒤에 있는 사람은 노래에맞추어 앉아 있는 사람의 등을 양손으로 딛으면서 발을 벌려 토끼처럼 꿰어 앞으로 나가 두사람이 양손을 벌려 문을 만들고 서 있는 곳을 꿰어 앞으로 나가 제자리에 업드려 앉는다. 늦다리 놀이는 기와밟기 놀이와 대동소이 하나 다른 점은 두사람의 부축을 받고 업드린 사람들의 등을 밟고 앞으로 전진하는 점이 다르다. 놋다리놀이는 널리 행해 졋던 놀이 지만 지금은 안동지방에 남아 있는 놀이로 알려 져 있다.

(4) 달맞이 놀이 (迎月).

   달맞이 놀이의 특징은, 정월 보름날 횟불을 들고 산에 올라 가 달맞이 하고 기원하는 놀이로서 지방에 따ㅏ라서는 추석날에도 이러한 놀이를 한다. 남자들이 농악을 하면서 길놀이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여자들이 몇사람씩 조를 만들어 손잡고 마을의 골목을 돌아 다니며 춤을 추기도 한다.

(5). 쾨지나칭칭.

   쾌지나칭칭은 많은 수의 남녀들이 모여 일열 원을 지어 서서, 영남 특유의 억양이 섞인 "쾌지니칭칭 나네"를 제창하면서 이 리듬에 맞게 회무 한다.남녀가 무리지어 4 4조의 가사를 한 사람이 즉흥적으로 앞 소리를 부르면 뒷소리를 군중들이 받아 쾌지나칭칭을 합창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줄을 지어 감아 들었다가 풀어지고 풀렸다가 다시 감아지고 증흥적으로 진도 치고 포위도 하고 개선문도 열어지며 춤 추어 진다. 줄이 흩어 져 난무도 하고 자진몰이로 빨라지며 동작은 영남사람 성격 그대로 나타 내어 와글와글 손뼉치며 어깨동무 등 원의 무용으로 변 한다.

(6). 남무(男舞), 화전무(火田舞) 또는 화전무(花煎舞).

   성경린씨는 남무의 논술에서 " 춤 이름은 남무 이지만 실상은 남녀가 하는 한국의 고유한 사교무용(조선총독부'조선의 향토오락' 1941) 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남무의 유래에 관하여 전병호씨는 옛날에 화전민들이 행한 남녀 사교의 의식(청년식) 무용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보며 이러한 춤은 사교적 영향을 받아 소멸되어 의식적 격식을 상실 한 채 오늘에 와서는 기방 세계에서 만 연기 되어 있으며 화전(花煎)놀이 에서는 홀로 추거나 두사람이 짝지어 추는 즉흥무로 잔존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춤은 성애의 춤이므로 동작도 어깨춤과 엉덩이 춤이 많으며, 남녀가 마주보며 전진(공격) 후퇴(도피)한다 든가, 남녀가 등을 대고 회전 한다 든가, 남자(여자)여자(남자)의 주변을 돈다 든가. 또는 손을 잡고 추게 되며 팔의 동작은 평사위, 감은사위, 놀림사위, 풀림사위 등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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