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위한 교앙(문화)

2022.03.31 11:52

김일하 조회 수:8

3, 織田作之助에게서 가추어 지지 않았던 것은, 삶을 되는대로 살았다 는것.

어차피 죽는다고 한다면, 멋지게 살다가(大往生) 영광스럽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입원중에 읽었던 책으로, 佐川 章의 "大往生事典'작가들의 죽은 날과 사생관" 講談社 + Alpa 文庫"당시의 "문학 忌歲記"(창림사) 였다, 이책에는, 明治, 大正, 昭和에 살았던 문학가들의 죽엄과그 주변에 Spot를 주어, "주검의Catalog" 로서, 0월 X일에, 누가, 무슨 원인으로 사망 했는가, 그리고, 그가 남긴 일들은 무엇인가,,,,,, 라는 "忌열거" 한 책이다. 講談社판 "대왕생사전" 에는, 1월2일, 檀 一雄과 野間 廣, 22일, 安部公房, 31일 石川達三. 여름, 7월6일, 森 謠子, 10일, 井伏尊二, 24일, 芥川龍之助, 26일, 吉行淳之助. 이들 문인들의 사인을 살펴보면, 1위 암, 이하, 결핵, 자살, 페렴(炎), 뇌출혈,,,,,의 순이 엇다. 토혈이라고 하는 것은 Best 5에도 들지 않는 것이라서, 어쩐지 창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살이 3위라고 하는 것은 어쨋던 문인 다웠다. 특별한 멏사림의 예를 올려 본다면, 첫째로, 明治 문단에 영웅, 신문기자 齊藤綠雨,    "僕本月本日日出度死去致候間此段廣告仕侯也綠雨齊藤賢" 이라는 자신의 사망광고를 신문에 냈다.1959년 2천수백만엔의 은행예금을 남겨 놓고, 市川의 자택에서 절명 해 있던, 永井荷風. NHK Radio 녹음중에 " 나의 행복은,,,,," , 말 하면서 숨이 끊어졌던, 佐藤春夫, 또,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 가고 있을 때, 악마의 그림자가 저기 있다" 라, 중얼거리며 겁에 질려 있던 시인 萩原朔大郞. 는 옆에 있던 딸 文子 에게 " 자~ 이제 나는 죽는다" 라고 말 하면서 각오를 촉구한 幸田露伴. 여러사람들의 대왕생(大往生)이 적혀 있다. 나는 1월15일 생으로서, 1월 10줄에 죽은 사람은 누굴까 하며 Page를 넘겨 보았더니,  1947년(昭화22)1월10일, 織田作之助로 되어 있다. 이는, 내가 아주 좋와하는 작가였다. 페결핵으로 각혈하며 사망 했다. 대표작으로, "夫婦善哉". 太宰 治, 坂口安吾, 檀 一雄 같이 전후야수파 였던 사람으로 織田作之助는 大坂에 살고 있었던 관계로 東京에 있던 다른 3사람들과는 상당기간 떨어 져 있었다. 번잡한 Osaka에서 고독한 방황의 나날을 보내면서 죽어 갔던 것 이다. 그는, 패전후, 日本의 황야를 질풍 같이 살다 간 야수파 라고 하는 류파의 작가 였다. 각혈지혈제와  히로뽕을 상용 하면서, 33세라는 젊은 나이로 타계 해다. 사인은 페렴아 되어 있지자살에 가까운 생애 였다. 만년의 그는 원고료의 대부분을 히로뽕 주사약에 사용 했다고 ,내연의처 昭子는 말 하고 있다. 그가, 히로뽕에 빠져 있지 않았더라면 "昭和의西鶴" 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인데, 아니, 西鶴이상으로 인간의 본성을 폭력적으로 묘사한 야수파 소설을 만드러 냈을 찌도 모른다. 그의 장점은, Osaka의 난잡하고 사람이 들끓어 분비는 냄새를 맡으면서, 위험한 여자들에 다가가고 다가오며 하면서, 달콤한 맛에 빠져 지났던 것에 있었다. 그가 썼던 농축된 "소설의 맛빼기"를,  뛰어난 표적이 되었던 당시의 太宰마저 갖이고 있지 모했던 것을,  織田는 갖이고 있었다 고 했다. 그의 결정적인 결함은, 인생을 경박하게 살아 간데 있었다. 그토록 숨 가쁘게 살지 말고, 적당히 여유를 갖인 처세술이, 본래의 Osaka Style인 것인데 말 이다. 

 

4.자신은 자신의 죽음을경험할수 없다,

  입원후, 5일쯤되었을 떄, Dr, 庭瀨가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한 말이 생각 나서, 고기구이집에서 구이를 주문 하여 먹었더니, 약간 원기가 도는것 같아서, 퇴원하고 싶어 졌다. 바같출입이 될만하게 됬을 때는, 혈변도 멎었다. 변속에 피가 섞여 있으면 변은 흙색을 띄운다. 나온 변을 보고 , 흙색이 없어 졌다면, 일단 몸속의 출혈은 멈추었다는 증거다 .

(역자중약), 이러면서 읽었던 책이 Edward S. shuneiderman 著, 白井幸子, 木間 修 譯 "죽음으로 갈떄, 그리고 남는 사람들, 誠信書房"이 었다. Edward S. Shuneiderman은

Harvard대학 객원교수이며, 미국자살학회회장 이기도 하고, 창립자 이다. 이학회는, 자살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학회라고 씨는 말 한다. "죽음에 임했을 떄, 거기서 남겨지는 것은"이라는 이 책 5장에 "자신의 주검과 다른사람의 주검" 이라는 곳에서, "죽을 떄는 이중의 성질이 있다.이것이 주검이라는 것을 가장 뚜렸하게 하는 특질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주검을 경험 하면서 감개하고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죽음은 경험 할수 없다". 그렇다. 인간은 자기자신의 죽음은 경험 할수 없다. 나는 이것을 긍정 할수 밖에 없는 것이,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 토혈한채로 죽었더라면, 이렇게 있으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 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죽었을 찌도 모른다" "죽었으면 어덯게 됬을 것인가" 또는, 이런데서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될수 있기 때문 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죽음을 스스로 묻고, 맺게 하는 시간을 갖이게 되는 것이다. 죽는다고 하는 것은, 뇌가 죽었다는 것인데, 의식과 육체가 동시에 죽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경험 할수 없다. 육친의 죽음, 친구의 죽음, 타인의 죽음을 경험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죽음은 경험할수 없게 되는 것은 지극당연 한 것이라는 것에 마음이 다았다는 것이 된다. 동시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에서도 자신은 경험 할수 없다 "태어나는 것도 죽음도 같은 것으로서, 그누구도 " 나는 지금 낳아 지고 있다" 든가 "나는 지금 방금 낳아 졌다"라고 말 할 가능성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약) 태어 난다고 하는 것과 죽는다고 하는 두가지 사실은,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살아 있는 것에 속 한다는 의심할수 없는 행위로서 일어나는 일 이라고는 말 할수 없는 것이, 당사자 이외의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 이다. 이것에 관하여 철학자인 부릿지드. 겐슈타인의 " 죽음은 삶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직전에 삶을 끝내는 것이기 때문에, 라고 하는 멋진 표현을 했다" 사람은, 삶에 둘어 갈 때와 나갈 때, 의식이 없다는 것을 생각 한다면,""생의 의식"이라고 하는 것도, 있는가 없는가 (애매모호)하게 됨으로 신용 할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세상은 물방울과 같은 꿈이라고 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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