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위한 교양(문화)

2022.05.30 10:16

김일하 조회 수:12

4.死(사죽음)이라는 문자는 원래는 인간의 뼈(骨)를 의미하는 것이 었다.

 얼마 있다가, 나는 문예평론가 松村 岡 "死의 日本문학사, 新潮社" 와 접하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敎적, 시점(관점), 결국, Europe문화와 日本문화 양면으로 부터 죽음(死)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본 독특한(Unique) 唯一無二(유일무이)한 책이다. 예를들면, " 人麻呂(사람이름, 詩歌人)와 Olympia의 Image" 라는 Page에서, 또 '안톤 마루로우 의 소설 "아루덴부르크의 "호두나무"에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이런 말들이 있다. " 우리들이 태어난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고, 죽는다는것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것, 양친을 우리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라는 것도 우리가 선택 한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들은 그저, 우주가 하는대로 그저 그 사이에서 일종의,,,,,,,,꾸겨진 하나의 주름에 (틈바구니에서의)  한점선에 불과 하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라고 하는 쎄리프(배우가 연극중에서 하는 독백(혼자서 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것은 松村씨의 Original한 우주는 아니고, "마루로" 의 우주론을 인용 한 것일 것이다. 이것에는 岸根卓郞씨의 "우주의사(宇宙意思)" 와 연결되어 가는 無常思考(무상사고)가 있다. " 우주의 어떤 기운(氣運)이 작은 或星(혹성,지구) 위에 생명을 만들어 냈다. 거기서 만들어 진 인간은 , 일찍이던, 늦게던, 태어났으면 죽게 된다는 것이고, 지구 그 자체도 언젠가는 낱낱이 파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은 인간 뿐인데, 인간은 지적으로 발달되어 있어서 필연적으로 죽음에 조우(맞나다)" 할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부여 된 개념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고 하는 관념을 갖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일단 죽어버린 인간은, 어쨋던 자기와 남을 속일수도 없고, 자기를 더럽힐수도 없기 때문이다. 즉 生과 死가 깨끗이 씻겨 나가 無로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핑게(暇託)로 깨끗해 진다는 Image가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Renaissance(문예부흥운동14C~15C in Europe)論을 일방적으로 고찰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日本의 枾本人麻呂의 일을 말하고 있는데 "日本人은 죽음에 대하여 독특한 想念(생각)을 배양 해 왔다고 하면서, 그런 생각속에서 사후의 일을 파 헤쳐 보겠다고 생각 했다. 바꾸어 말 하면, 그것은 미물같이 작은 인간에게 거대한 숙제를 제공했던 커다란 질문에 대한 의미의 답을 요구 하는 것이 되겠다" 그러면서 "수많은 진혼가(鎭魂歌)를 人麻呂는 남겼다고 말 한다". 그러면서 또, 이러한 日本문학사에 나타나 있는 死의諦念(체념), 死의 의미 를 추구한 우수한 책이 었다. 하나 더 흥미로운 기술이 있었는데, 死라는 문자는 원래 인간의 뼈를 의미 한다는 것이다. 死라는 문자는 합성문자로서, 人命盡殘骨化義也(사람이 명이 끊기면 남는것은 뼈다구 뿐, 옮긴이)  라고 옥편에 정의 하고 있다. "죽는다" 라고 하는 말은, 고대인들에게서 일찍부터 사용 되어 왔다. 그러나, 死를 표현하는 일반적인 말로 "돌아가다'" 身罷(몸을파괘하다)" "검은 느낌이 든다" "갔다"등으로 표현 했다. 혼이 육체를 떠나 어디론가 갔다는 뜻이다. "죽다" 라는 말은, 한자에서 나온 "死"와는 다른계통의 말 이라고 折口信夫는 말한다. 사모한다는 말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 이 란다. "죽었다" 라고 하는 말은, Dead가 아니고 옛모습을 생각한다고 하는 것을 촉구 하고 있다는 것의 특별한 말이라고 하는 의미,,,,인것이다. 

1983년5월4일, 寺山修司가 사망 했다. 간호했던것은 나의 주치의 庭瀨康二였다. 씨는 그를 치료 하느라 고생 했는데, 寺山의 간경화도는 처음부터 죽음을 피할수 없는 지병이었던 관계로 어찌 할수 없었던 것이 었다. Dr. 庭瀨도 손쓸수 없는 그를 보며 슬퍼 했겠지만, 나도 고인을 그리워하며, 늘 같이 술을 마셨던  阿佐ke谷에 있는 술집에서 唐 十郞과 같이 아침이 되도록 술을 마시며 온밤을 꼬박 새웠다. 唐은 뜸금없이 "여기 이술집을 싹 때려 부셔 버릴까" 한다. 내가 "안되, 상점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하며 달래면서 둘이서 황당 해 하고 있었다. 寺山修司씨를 그리워 하며 "전원에서 죽었다, Haruki문고" 라는 시집(排句集)에서 좋와하는것 7개를 추려 보았다. 

*새 불단을 사러 가는데 흐르는 세월 따라 행방불명된 울림(소리소문소식) 

*암울 해 하는 우리에게 집안일 걱정 말라고 술잔 채워주는 안주접시속 망령

*죽은 아들 묻으려고 땅 사러가는 이에게는 아이가

*만육기에서 조각조각부서지는 꽃Canna 물방울 우리들생일 (만육기(挽肉器),고기가는기구)

*우리집 미다지문에 죽은 겨울나비 꽂아 놓고 습자가계 문패로 할까나(습자가계(拾子家系) 호적지고가는자)

*하얀 벌꽃가지마다 피어난 어머니 한숨 우리합장(合掌) 암울 피어난다

*죽은날 보다  앞에 올 기나긴 슬픔 머물줄 모르는 시계

찡하게 마음을 적셔 온다. (시를 번역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이 아닌 나로서는 말이다. 그것도, 풍속 ,언어, 습관을 모르는 외국인 에게는 더욱 그렇다. 원문의 뜻이 제대로 전할  될 리가 없다. 양해를 빈다. 역자)

1987년8월5일에 澁澤龍彦씨가 사망 했다. 내가 29세때, 씨와 같이 Bagdad, Theheran,

Cairo를 취재 하면서 한달동안 같이 지났던 일이 있었다. 나는 학생시절, 씨가 번역했던 책, 마르키 더 자도 의 "악덕의영광" 과 신성수태(神性受胎)같은 책을 열씸히 읽었었다. 그뒤, "악몽의 우주사" 에서도 충격을 받았는데, 박학다재한 그는 마치 나의 형님과 같은 분이 었다. 그와의 취재여행중 있었던 Episode는 무궁무진 한데, 그 중 Bagdad 에서 있었던 일, France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 하면서 "나는 France 말 한마디로 못 하니까" 라고 말하며, 대신 나에게 말 하라고 할때, 나는 어리둥절 했다. 씨는 호리호리하고 멋찌게 쭉 뻗어 있어서, 척보면 성별불상으로 보인다. Iran의 사막, 이스하환데 의 정원에서

Coffee를 마시고 있을 때, 그가 Madam 이라고 불리워 졌을 때 였다, 그는 목쉰 소리로 나에게 " 어이~ 자네,  나 남자라고 말 해" 하며 나를 부추겼기에, "澁澤씨, 나는, France말을 못 하는데 스스로 말 하시면 어덯습니까" 하고 반문 한적이 있었다. "네가 말 해: 하며 물개 짖는 소리로 또 말 했다" 뭐, 말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남자라는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이스하환테 의 골동품 가게에서 샀던 두개 은팔찌 한개가 씨집에 놓여 있었다. 그가 사망 했을 때, 나는, "唐草物語,河出문고"속에 있는 "火山(화산)과 같이 죽고 싶다" 라는 작품을 읽었다. 뿌리니우스 라고 불리우는 온천을 좋와하는  Roma사람  할아버지가 주인공 이다. "온욕실의 욕조에서 여유있게 손발을 쭉 펴고서 뿌리니우스는 이렇게 중얼 거렸다" 55번째의 내 생일이 내일인데, 웨이와우스 산이 떄를 마추어 대폭팔을 시작 하리라고는, 무엇이라고 말 할수없는 不思議와 딱 맞아 떨어지는 말 인가" 흡사, 내 생애의 돌고도는 인생을 막아 버리려고 하는 신의 의지가 거기에 작용하고 있다고 만,

색각 할수 있겠다" 결국 뿌리니우스는 죽게 되는데, 씨에의하면, 뿌리니우스의 죽음에 대하여는, 고래, 많은 학자들이, 가설을 내 세우고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타당하다고

인정 되는 것은, 다음의 두가지 라고 한다. 그 하나는 유황증기로 인한 질식사, 다른 하나는, 뇌졸증중 발작에 의한 죽음이란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비만체질이 었기 때문에, 날때부터 기관이 좁게 되어 있어서, 여허번 숨이 끊어지는듯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시체는 다음날, 8월26일, 아침에 발견 되었는데, 뿌리우스 아들의 보고에 의하면, "어디에도 손상은 없었고 외관은 죽은자라기 보다는 잠자고 있는사람과 같았다고"말했다. 나는 이때쯤에서 부터 온천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日本에는 약 3,000개의 온천이 있는데, 그중 2,000개 정도의 온천에 갔던것 같다. 각지의 온천을 마구잡이로 갔던 것인데, 나도 언젠가는 뿌리니우스와 같이 입욕중 화산의 폭팔로 증기로 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걱이 들었다. "화산에서 죽는다" 라는 책을 읽으며, 澁澤龍彦씨를 생각 했다.

5. 사람이 죽은뒤, 7일 안에 비가 오지 않으면 그 죽은자는 성불(成佛)할수 없다.

  1987년 8월 18일, 나에게 충격적인 죽음이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深澤七郞 선생께서 琦玉의 Loveme 농장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보내주신 분은 水城 顯씨 였다. 씨는 문예지 SeuBaRu 의 元편집장이 었는데, 그뒤, 石和옹 이는 필명으로 소설 "野分(야분)酒店" (泉鏡花문학수상작품)을 쓴 사람 이다. 씨는 深澤선생 Loveme농장에서, 甲州 Wine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던 괴물같은 사람이 었는데, 그후에 인후암으로 사망 했다. 나는 만년의 深澤씨와는 소원 해 져서, 파문의 신세가 되어 있었다. 외, 살아계실 떄, 한번이라도 엊지로라도 맞나 뵙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있고 하여, 그의 관한 소설 "桃仙人(도선인)ZuKuMa 문고" 을 썻었다. 사거보도를 듣고, 나는, 즉시"OyaKada(두목님)" 라고 불렀던 선생의 유택으로 정신 없이 달려 갔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오는 밤, 불단앞 이불위에 "OyaKada"의 사해(死骸)가 뉘어져 있었다. 몇년전, 深澤씨와 나는, "Oyakada"의 장례식 예행연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방에 "Oyakada"는 지금 누어 있다. 가슴위에는 魔(마귀)를 쫓는 식칼이 놓여 있었다. 深澤씨를 사모하고 있는 요리인, YaKi군의 말에 의하면, 그날, 아침식사가 다 되었기 때문에, Sunroom 의자에 앉아 있는 深澤선생님 ! 식사 히셔야지요 하고 불렀다. 대답이 없어서 가 보았더니,  주무시듯 이미 숨을 거둔 뒤 였다 했다. "OyaKada" 옆에서 Yaki 군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얼굴에 덮은 하얀 수건을 제쳤다. OyaKada는 입을 반쯤 열고서,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 말하려 하는 듯, 그런상태로 돌아갔다는 표정 이 었다. 비는, 한층 심하게 오고 있다. 빗방울이 창문에 민광(閔光)이되어 부딧쳐 왔다. 深澤씨가 생전에 늘 하던 말이 생각 났다. 사람이 죽고 나서 7일안에 비가 오지 않으면 그사람은 성불 하지 못 한다. 나의 OyaKada는 사망 당일에 비가 내렸다. Yaki 군은, "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면서 산 사람 입니다" 라고 나에게 말 했다. 이러는동안, 조原勝之子와 Kuma 쨩이 도착하여, 香線에 불을 부쳣다. 나는 OyaKada가 돌아 가신 Sunroom에가서 천정에 열려 있던 녹색의 포도를 따서 씹었다. 단단한 것이 시디신 맛이 었다. 머리 맡에는 "Yakuza의 춤" 때에 사용 했던 당사자무란병풍(唐獅子牧丹屛風)이 꺼꾸로놓여 있었다. "Yakuza 춤"이라고 하는 것은, 深澤씨가, 谷崎潤一郞賞을 그 자신이 안무했던 것인데, 나와 赤瀨, 原平씨 들이 수상식에서 추었던 춤을 말 한다. Kuma 쨩이 深澤씨의 유체 앞에서 Trumpet을 불었다. Yaki 군,Kuma(熊)쨩, 水城씨 와 나 넷이서 첯밤을 새면서 지났다. 해가림을 한 Plastic 처마에 불어 닥치는 비는 점점 강해 진다. 때떄로 빵빵하는 소리를 낸다. 나는 OyaKada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지나간 날들이 나의 기억속에 환등기의 영상이 되어 나의 머리를 꽉채워 왔다. 21년전, 처음 이곳에  왔던 날에도, 마구 퍼붓는 비가 내렸었다. TV방송국 여기자가 와서, 통야의 모습을 촹영하면 어덯겠느냐고 하는 물음에, 친척중 한 사람이 거절 하고 있었다. 水城 石和옹 씨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水城씨는 深澤씨가 마즈막까지 연을 끊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 었다. 나는 그와 말없이 술을 계속 마시고 있었다. 편집자시절인 1966년, 나는 처음으로 Oyakada 와 대면 했다. 내가 1942년 생이니까, 24살 때에 맞나러 갔던 것이 된다. 당시 나는 입사 새내기 였었다. 深澤七郞씨는 42세, "樽山節考(ballard of Narayama) 로 Debu 했던 때, 그로부터 4년뒤, "風流夢談(풍류몽담)을 출판 했다. 이 소설이 원인이 되여, 중앙공론사 사장 鳩中鵬二씨의 자택가정부가 살해 되었던 사건은, 당시, 커다란 News로 되었다. 사건후, 深澤씨는 몸을 잠적, 여행길에 오른다. 내가 처음 그와 대면 했던 것은 그가 방랑생활에서 돌아와, Loveme 농장에 거처를 정 했을 때였다. 深澤씨는, 그가 알고 있던 사람들을 고참순서로 "인연을 끊어 버리는" 사람이 었다. 내차례가 되면서 나도 인연이 끊겼다. 나는 OyaKada의 "樽山節考"를 다시 한번 읽었다.(단편소설인데 읽을 만한 명작이다. 나는 영화, 연극도 보았다. 역자주) 深澤씨는 1914년(大正3)생으로, 1987년(昭和62), 琦玉에서 사거, 향년 73세. 소년시절부터 기타연주에 열중 했으며,  그 실력은 그가 日劇연주홀에서 연주 할 정도 였다. "樽山節考" 는, 日劇 Hall의 樂실에서 썻다는 소문 이다. 주변에 여자무용수들이 가득히 있는, 상황에서 죽으러 가는 어머니의 일을 썻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이제까지 30번을 더 읽었기 때문에, 불경 외듯 암기할수 있는 단편소설 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樽山節考Ballard of Narayama"라고 하는 노래도 있다. 그것은 "樽山祭(준산제)" "잔치가 세번 오면요 씨밤으로부터 꽃이 피고요"로 시작 하는 노래다. 이노래는 深澤씨 스스로가 작곡한 노래로서, 그는 이곡을 극에서 자기의 三味線으로 직접 연주 해 주었다. 심장병을 갖이고 있으면서, 숨을 몰아쉬며 "여름은 싫습니다요" 하며 노래 합니다. "여름은 정말 싫어요, 길은 질적거리고요, 지네하며 배암이 득실 거리니까요" 벤 베게 벤,,,,,,그러면서 노래가 점점 심한 외설(와이세쯔, 추잡음탕한, 또는 그런 행동의 가사) 같은 노래가 됩니다. "와이세쯔"라는 말을 돌아가며 군데군데 넣어 부르면서, 즉흥적으로 노래 해 나간다(연극에서 마을 주민들이 축제 때 부르며 빙빙 돌며 춤을 춘다, 역자가 보았던 연극에서). 소설에서는 "Orin" 이라고 하는 할머니가 대단한 건강체 임에도, 입 하나를 덜으려고 스스로 죽으려고 "樽山 Narayama" 에 가려고 한다. 결국, 자식이 어머니를 樽山에 버리고 온다는 내용이다.(일본식고려장역자주) 대단히 슬픈 이야기 다. 일반적으로는, " 70이넘는 다면 늦지는 않지요, 한사람이 없어지면 배가 되지요"라고 할 정도로 먹을 것이 증가 한다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하면서도, 스스로 죽어야만 하는 관습에 억매어 죽어야 하는 무서움, 이 공포심이란, 이 노랍고 놀라운 이야기라고 평가 되고 있지만, 잘 읽어 보면, 이것만큼, 절절하고 동정심으로 가득 찬 갸륵한 이야기도 없다. 이것은 음악과 같은 소설이다. 소설속에 "白萩樣"이라는 언어가 나오는데 백(하얀)萩(사철쑥)樣(사마라는 말은 높임말)이란 것은, 쌀님을 의미 한다고 했다. 이런 말도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내가 지어낸 말이지 했다.이작품은 자기 엄마의 일을 쓴 것이라 했다. 深澤씨는, 실제로, 오른쪽 눈이 실명상태 였다.어스름한 어둠속에서 왼쪽 한눈만 갖이고 이소설을 썻던 것이다. 그의 숙모는 "樽山節考는 대단한 먹보가 쓴 소설이야" 라고 말 해 주었다."먹거리 장면을 쓸대, 자네는 정말 쏨씨가 뛰어나지" 하며 "Orin"으로 묘사 된 그의 어머니도 그렇다고 말 했던 모양이다. 한쪽눈이 실명임에도, 그는 죽음에 임박한 어머니를 업고 뜰에 핀꽃을 보이며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소설속에서도 Orin의 아들이 어며님을 업고 꽃구경 시켜드리는 장면이 있다) 이러한 것을 생각 할 때, 적극적으로 죽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주인공 Orin 할머니의 이야기는 무서운 소설이 아니라 정말 친절하고 다정한 소설이다. 근본적으로도 대단히 정감 있는 소설 이다. 때문에, 나는 이 樽山節考(나라야먀의 노래)를 지금도 읽고 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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