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台灣(대만)의 경우;

   1) 台灣조사보고'

    대만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1993년 말까지는, 대북시(台北市)부녀구원사회복지사업기금회에 피해를 신고한 여성 또는 가족(본인의사망 또는 실종되어 있어서 가족이신청한 경우를 포함) 들을 방문해서 얻은 방문조사결과로는, 위안부였을 가능성이 있는자는 총 56명이 었는데, 그중 45명이 확실 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볼때, 이 조사는 신뢰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확실히 인정된 경우 임에도, 승선했던 배에 TV가 있었다고 증언한자가 있었다든가, 하는 개개의 사례에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로,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들로 부터의 청문이(hearing) 어려움을 격고 있다. 이하, 이와같은 제약이 있다는것을 전제로, 이 보고서를 보아 가려고 한다. 징집시기로 보면, 48명 위안부중 42년, 43년사이에 징집되었던 자가 28명으로서 Asia태평양전쟁개시시기에 가장 많았다. (1938년~41년사이 10명, 44~45년이 6명, 미상 4명). 년령별로 보면, 16~20세가 24명, 21~25세가 17명, 그이상이 6명 이 엇다. 대만의 경우에도 미성년자가 많았었다. 징집된 장소로 보면, 台北州에서 22명으로 약 반을 차지했고, 중국대륙에서 징집되었던 3명 과 조선에서 징집되었던 1명(朝鮮人)을 제한 나머지 44명의 징집자들의 내용을 보면, 사기, 22명으로 대다수를 차지 했는데, 그 대부분은 "군이관계" 하는 식당, 술집에서 요리등을 나르는 여급, 잡역부 같은 일을 한다고 했고, 기껏해야 술을 따르는 일정도라고 했지 몸을 파는 매춘은 아니라고 주선인으로 부터 듣고 지원 했다고 했다. 간호하는 사람이 된다든가, 세탁노동자, 취사등의 일을 한다고 하여 응모 했다는자도 있었다. 그 다음으로 많았던 것이, 강제적징집 사례로서 10명이 었다. 또 다른 5명은 직장에서 제비뽑기로 뽑혀왔다고 했고, 3명은 간호부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끌려 갔는데, 그녀를 주선햇던 주선인은 그녀의 숙부였다든가, 양부였다든가, 병원의 간호부장 이 주선인이 었다고 했다. 이와는 다른 경우로, 간호부였다가 도중에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던 경우도 2명이나 있었다. 위안부가 된다는것을 알고 응모한자는 단 3명이 었다. 팔려간사례로는, 주선인의(부로카) 사기로 1명, 불명인자가 6명이다. 44명의 위안부중 9명이 100원~500원의 전차금을 받았다고 했다. (조선에서 1930년대 쌀 한가마 값이 14원이었다. 역자 주) 이것을 인신매매라고 할때, 10명이 되는 것이다. 이중 3명은 현짇착후 이 사실을 알고 거부 했으나 전차금을 갚을 길이 없어서 포기 했다고 했다. 이들중 계약자는 4명으로, 계약기간은, 1년, 1년반, 1년8개월 이었다. 이들중 1년8개월의 여성은 계약완료후 대만에서 교대자가 왔기 때문에 귀국햇는데, 나머지 3명은, 계약이 끝났음에도 귀국할수 없었다고 했다. 이상 말한 사례중에서, 간호부로 일하다가 속임수에 빠져 응모했던 여성은, 일본, 동경(Tokyo) 에 와서 다음과 같이 증언 했다( "세계에 묻는다 일본전후처리"제1권) ㄱ녀는, 공학교(公學校)(일본 소학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무교육은 아님)를 졸업하고 대만병원에서 간호부로 4년간 근무 했는데, 

43년, 일본인이남방에서 일할 간호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듣고, 대만에서 일을 해도 장래성이 별로 없어서 응모했다고 햇다. 10명이상의 여성들과 같이 티모르 섬(島)에 갔는데, 그곳 위안소로 보내졌고, 장교로부터 강간을 당했다고 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7새, 대만에서도 미성년자(대만에서는 당시 21세미만은 미성년자)들의 징집이 반수에 달했다는 것은, 중대사가 아닐수 없다. (朝鮮의경우와 너무도 흡사 하다) 대만의경우, 전차금(선금)을 받았다고 하는자가 9명이 있었다는 것은 특징적이었다고 하겠는데, 그중 3명은, 위안부가 된다는것을 알고 있으면서 응모 했다고 했었는데, 한명은 빚을 갚기 위해서 였고, 다른한명은 혼수준비로, 다른나머지한명은 분별없이 그냥 돈을 갖고 싶어서 라고 했다. 44명의 위안부들은, 중국 해남도(海南島) 11명, Holland령 동인도 10명, 필리핀 8명, 버마 (현미얀마) 6명, 중국광동성 5명, 싱가폴 4명, 포르트칼령 티모르 2명, 일본 오끼나와 1명 순으로 보내졌다. (이동되었을 경우 중복되어 계산 되었다는 것을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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