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읽는법;

2018.07.20 12:07

김일하 조회 수:2365

唐詩가 인용된 동양화 松下問童子畵  말고  또 다른  유명한 그림이 있느데 , 이름하여 " 山中答俗人圖산중답속인도 " 와  "廬山望瀑布圖여산망폭포도" 가 있는데 둘다 李白의 詩 " 山中問答 " 과 " 望廬山瀑布 " 라는 詩에  연유한 山水畵이다.

 

1) 山中答俗人圖,


山中問答,   李白.

問余何事捷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窅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어째서 푸른 산에 사느냐 고  내가 물었더니 , 다만 웃음으로 대답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

복숭아 꽃 흘러흘러 아득히 가는곳, 거기 사람이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는지,,,,,,,,, .

계곡 사이로 구비구비 흐르는 물결 따라 아득하게 떠내려가는 복사꽃잎, 桃花流水, 深山의 경치가 저절로  우리의 상상을 자극한다. 화가가 아니드라도 한폭의 그림,  그리고 싶어진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수 있을까?  나는 이 詩人이 생각하고 있는 禪的思惟,  " 別有天地 非人間" 에 초점을 마추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桃花流水窅然去"  라는 전제조건을 제쳐 놓고 서이긴 히지만,,,,, . 인간이 본래 갖이고 태여난 本心 (無心,自他不二의 마음갖임),  分別을  몰랐던 그때,  그런  세상은  어디 없을  것일까  하는  Utopia적 세상을  바라는 간절함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잠간  分別 에 대하여 禪이 어덯게 말하고 있는가를 짚고 넘어가 보자. " 分別智 "란 禪에서 말하는 지혜중하나,  "根本無分別智 "를 알고 나서 얻은 지혜라고 하면 된다. 이 詩에서 詩人은 根本無分別智를 " 桃花流水窅然去"  라는  詩句로서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날때부터 갖이고 태여난 無爲心, 청정한 마음 ) 根本無分別智 라는것은 究極의 眞如(眞理)를 말하며 "一味(自他不二)" 즉 平等의眞如를 無分別的으로보는 智慧를 이르는 것인데 그러한 근본적인 지혜를 얻게되면 (인간 본래의面目) 그것으로부터 다시 나타나는 현상적인 "차별의세계" 를 分別을 갖이고 바라보는 지혜를 말하며 이를  불교용어로 " 後得智 " (岩波 佛敎사전 제 2판 참고)라고 한다. 眞如를 알기 이전의 分別智와는 달리 이 "後得智 "는 이미 이전의 그속에서부터 오염된 것이 제거된 청정해진 것으로부터 세상을 관찰하게 되기 때문에 한층 상세한 " 世間淸淨分別智 " 라고 불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智를 갖이면 구체적으로 세상을 구제 할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런智가 일상인 세상이 " 別有天地非人間" 이라하며 부르짖고 있는 심정은  아닌지,,,,,,  산 골짜기 사이로 물이 흐르고 꽃잎이 흘러가는 산수화를 보면 아 ! 桃花流水!  李白의 詩 " 山中問答 " 을 연상하면 되겠다.

陶淵明의 桃花源記https://youtu.be/iEJ-0SxADI8?list=PLwKlunU_5faKUYcLAbU_NNN8lJwsQXyd9 도원향을 검색해 보십시요,


2)  盧山望瀑圖;

이 그림 역시 李白의 詩  " 望廬山瀑布 " 이라는 詩에서 연유 한다. 떨어져 내리는 웅장한 폭포를 놀란 감동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그린 산수화.

望廬山瀑布,   李白.

日照香廬生紫煙

遙看瀑布掛長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誰把天神掛半空

上疑銀漢下疑虹

謫旋於此吟場句

萬丈光焰較就雄

李白( 謫仙, 李白의호)이 노산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며 지은 詩,

향로봉에 햇살이비치면 무지개가 생기는데, 멀리서 바라보니 긴강이 하늘에 걸린것  같구나.

수직으로 날아떨어지는 폭포는 삼천척을 흐르는듯, 이야 말로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듯. 누가 하늘의 띄를 반공에 걸었던가, 위는 은하수인듯 아래는 무지게 로구나.  李白 여기서 장시를 읖조린다면 만장의 광염, 누가나은지, 겨루어보자구. 하는 내용이다. 李白이 아니면 쓸수 없었다고 하는 명시중 명시다. 廬山은 중국 江西성九江현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경치가 다양하고 좋와서 여산진면목이라고 한다. 특히 폭포경치가 빼어나다. 여러분 그림이 떠 오릅니까 ? 세상에는 폭포를 주제로한 그림, 사진들이 많다. 이런그림 사진을 보면서 이백의 시 廬算望瀑을 원어로 읊어 보면 어덯겠습니까?


李白;

이백 (701-762)쟈는 太白, 淸雲居士라 號 하였다.출생지는 미상, 幼少期에 蜀州 의 錦州에서 지내다가 25-26세에 蜀을 떠나 湖北을 중심으로 각지를 歷遊 하였다. 42세에 長安에 나와 玄宗을 섬겨 翰林供奉을 지냄. 安綠山의 亂 때에는 永隣王의 수군에 참가 하엿다가 반란군으로 몰려 투옥 유배 蜀으로 가던중 사면되여 양자강 중류에 있는 秋浦로 돌아와 생활 하다가 史思明 의 大燕帝國 토벌군이 파견 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61세의 나이로 雄心勃勃  동정군에 참가하려고 가는 도중 병에 걸려 병사. 上元二年(761)의 일 입니다. 漢魏六朝 이래의 고전시의 세계를 집대성하여 杜甫와 함께 중국 최대의 시인이 되였다. 李太白전집 36권이 있다.

李白이 長江의 주변을 방랑하며 廣陵에서 맞난 魏萬과 같이 南京(金陵)을 보고, 거기서 宣城을 돌아보고 秋浦에서 해를 보내고 있을 때가 洛陽에서 추방 된지 10년 째 였다. 이때에 그 유명한 秋包歌 十七首를 지었는데 그 중 唐詩選에 수록된것이 유명한 第十五首 秋浦歌이다.


秋浦歌, 李白.

白髮三千丈 내 흰 머리카락 은 三千丈

愁綠箇此長 시름에 쌓여 이렇게 길어 졋네.

不知明鏡裏 거울에 비치는 이 서리같은 흰터럭은

何處秋霜得 대체 어디서 얻은 것 일까.  

https://youtu.be/9YdvCko3RLs


이詩는 너무 과장된 Sample로서 알려져 있지만 李白이 아니고는 누구도 형용할수없는 詩話엿습니다. 그가 長安으로 부터 추방된지 십년이 지났을 때 였습니다. 長安으로 귀참하라는 허락이 없는 한 長安으로는 돌아갈수 없는 것이다.秋浦 언덕에서 秋浦江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면서 언젠가 부터 하얀 실오라기처럼 변해 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옛날의 長安을 그리워 하는데 그 長安은 상상해 볼수도 없는 앞날의 일. 그의 나이 벌써 오십이 되여 있었다.거울속에 비쳐진 백발에 愕然 , 秋에霜이 내린거와 같이 보였을 것이다. 愁(근심수)라는 말에 미쳤을 때, 그 愁 속에는 長安을 떠 올리게 하는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 長安을  눈 아래 펼쳐진 희고긴 秋浦江 연선에 연결되여 있었을 것이다. 호방하기로 잘 알려진 李白의 상상력이 어찌 되었든 " 白髮三千丈 " 이라는 형용사를 불러 이르켰던 것은 아니었을까. 秋浦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뇌리에 심일년전의 일이 문득 떠 올랐다.  天寶 三栽(744)牧丹의 花盛祭 때 일이다. 李白은 늘 그랬드시 취해 있었다.거기에 玄宗의 召命使가 왔던것이다. 때때로 이런 일은 있었는데, 李白의 召命이란 물론 玄宗 앞에서 詩를 짖는 일이다. 직명은 翰林供奉 , 황제의 부름을 받으면 즉시 참내 하여야 한다. 翰林供奉은 시대에 따라서 翰林學士, 어떤 때는 한림대소 라고 불려졌는데, 다른 학사들은 門下省 혹은 中書省에 속해 있었지만 이 한림공봉 이라는 학사는 무소속, 그렇기 때문에 "백관지"에 직명이 없었고, 학사라는 말과 같이 조칙이나 시문을 작성하는 일 정도 였다. 그러기 때문에 출근도 자유였던것 같다. 특재가 있는 자에게 봉록을 주며 필요할때 그 재능을 이용하기 위해 설치된 특수한 Post였던 것이다.玄宗은 多藝才人 인데 그중에서도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禁圓梨園이라는 곳에 가무학교를 설립하고 연극인재들을 양성 했는데 花, 女, 音樂, 舞 전부가 훌륭 했는데 다만 歌詞가 부족 했다 거기서 玄宗은 李白을 불러 오게 되는 것이다. 杜甫의 " 飮中八仙歌" 속에 李白에 관하여 이렇게 읊고 있다.

李白一斗詩歌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來船上

自稱臣是酒中仙

이런 그는 牧丹花盛祭에 불려갔을때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玄宗의 실권자 환관 고力士에게 脫靴(탈화)를 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추방되였던 것은 아닐까 ? 또 李白은 楊貴妃가 노래한 구절에 (泳句) 자신을 趙飛燕에 比 한젹이 있었는데 그것을 빘댄 말을 한적이 있었다. 조비연은 한황실의 황후, 역사상 중국의 오대미인.왕소군, 조비연, 서시, 초선, 양귀비.

이 秋浦歌는 시인의 감성으로서 시대의 앞을 읽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盛唐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하는 感知執迲이 시인의 가슴에 밀려와 " 白髮三千丈 " 이라는 詩로 그런 心象風景의 배경을 만들었던것은 아닐까 ?  생각도 된다. 安綠山의亂, 玄宗의망명, 楊貴妃의죽엄, 등長安에서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을 때, 李白은 무었을 하고 있었을까 ? 高力士에게 모욕을 주었던 대가로 長安의 조정으로부터 추방, 江南長江유역을 漂泊하던 백발三千丈의 秋浦에서 永王의叛,  근황군의 거점이었던 當塗에 돌아 왔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南京을 거쳐 廬山에 들어 왔는데 그때 지었던 시가 유명한 " 望 廬山瀑布 " 인데 李白이 아니면 쓸수 없었다는 이詩는  이때 씨여진 것이 다. 李白에게 永王 東巡歌 라 제한 詩 數首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다음과 같은 시 이다.

永王東巡歌, 李白.

永王正月 東師出

天子遙分龍虎旗

樓船一擧風波靜

江漢翻 雁鶩池爲(雁기러기안鶩따오기목)

이詩로 인해 永王長江水軍은 역적이 되고  마는데 (자초지종이 구구한 가운데) 이리하여

李白에게도 역적죄를 물어 투옥 된다. 이백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문인들의 조명운동 덕에 그는 死一等減이 되여 西南 夜郞에 유배되는데 조명운동의 한사람인 安綠山亂 의 대 유공자인 郭子儀도 포함되여 있었다. 乾元二年(759)三月 은사령이 내려 夜郞에서 白帝城으로 가게 되는데(白帝성은 삼국시대 蜀의 劉備가 죽었던 곳이다)이제 자유인이된 李白은 장강하류를 향하여 출발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그가 그의 試材를 펼칠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唐詩選에 수록된 또 하나의 유명한 그의 시 " 朝發白帝城 "이 바로 그것이다. 이 七言絶句는 李白의 당시의 분발심이 잘 표현된 것으로 알려진 시이다.


早發白帝城,李白.

朝白帝辭彩雲間  아침햇살이 구름사이로 빛날때 백제성을 떠나

千里江陵 一日還 천리길 강능을 하루길에 닿았다.

兩岸猿聲啼不住  강언덕에서 우는 원숭이 소리가 자꾸자꾸 뒤로만 날아가는데(5년여전 내가 長江을 거스러 올라 三峽을 지날 때, 원숭이 들의 울음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

舟己過萬  나의 가벼운 배는 어느듯 천만겹 산들을 지나 왔다.

 https://youtu.be/xTX0Wmse5Us


史思明의 大燕帝國討伐軍에 참가하러 가던 도중 그의 나이 육십일세로 도중병사 했다. 沒日은 上元二年 十一月.  다음해, 玄宗, 肅宗(永王의형)張皇后, 고力士도 歿 했다.

李白이 죽었다는 것은 盛唐의 詩 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盛唐의 詩 의 배경이 되였던 시대도 지나가 버렸고 남은 것은 상처받은 산하 뿐이었던 것이다. (陳舜臣, 중국역사 제4권,講談社文庫 ,꽃피는 장안 속에서 발췌전재)

*이글을 쓰면서 上海, 太湖 ,南京, 廬山, 眞德鎭, 江陵, 秋浦 등을 둘러 長江三峽을 거슬러 올라 白帝城에 이르는 긴 여행을  혼자 조용히 唐詩選을  벗 삼아 원숭이들의 울움소리를 뒤로 뒤로 하며 여행했던 떼가 그리워 진다. Viking River Boat  안내양들과 같이  읊던  唐詩의 낭낭한 목소리가  아직도 나의 귀에 메아리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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