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읽는법;

2018.08.18 13:05

김일하 조회 수:451

八逸圖(팔일도);

逸을 한자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편안할 일, 달아날 일, 달릴 일 하며 설명 하는데 달아날 , 또는 달릴 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 뛰어나다, 빼어나다 라고도  할수 있겠다.그러니까  팔일도라고  하는 그림은 여덜가지 빼어난 일들을 골라서 그린 그림이 되겠다.  그렇게 볼때, 세상에 빼여난 일이 꼭 여덜가지만 있다라는 말은 아닐것 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겄인데,  외 ?  그 앞에 8자를 부쳤을까 ? 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 8 이라는 숫자는 구미에서 말하는 7 이 완전 숫자인것 처럼 중국에서의  8 은 그들 나름대로 의 완전숫자라고 생각 했다고 보면 되겠다.  사실  여덟가지의 빼여난 일이라는 그림을  보게 되면 알게 되는 것이지만 사실상 그  내용면에서 볼 때는 一逸圖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 되느것이, 거기서 말하고자 하는 교훈이  단 하나 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례차례 로  이그림들을 보아 가노라면 이해가 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잠간 접어두고  우선 그림 들를 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자. 우선 중국사람들이 본 八逸 이란 것을 꼽아 본다면  潁川洗耳, 湘江垂釣, 商山圍碁, 江東掛帆, 富春山水圖, 栗里奇松, 臨海指鴻, 霜橋騎驢,  혹자는 廬山瀑布를 포함 하기도한다 등등이다.


1.  潁川洗耳(영천세이);

潁陽에 있는  潁川이라는 江 상류에서  許由가  귀를 씻고 있었는데  때마침 蘇夫가 소에 물을 먹이려 왔다가  許由의 귀 씻는 이유를 듣고  蘇夫는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수 없다 하며  소를  끌고  그곳 보다 더  위로  올라 가서 소에게 물을 마시게 했다는  고사에 연유 하여 그린 그림이  潁川洗耳圖  이다.   莊子 逍遙編 제 7에 실려 있는 許由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자.

옛날에 聖人 堯 는 許由에게 천하를 양보 하려 했다. "日月이 밝게 비치는데 불구하고 횃불을 계속 피우는 것은 더 밝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해도 결국 헛된 노력이라 하겠습니다. 적당히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논밭에 물을 게속 준다는 것은 논밭을 축여 주려는 뜻이 있다 해도 또한 도로(徒勞)에 끝일 것입니다. 당신이 천자가 되신다면 천하는 잘 다스려 질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스스로  돌아 보아 겸언적은  바가 있습니다.부디 천하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자 許由가 대답 했다.  

"당신이 천하를 다스린 결과 지금 천하는 태평을 유지 하고 있습니다.그런대도 내가  당신을 대신하여 천자가 된다면 나는 천자라는 이름을 얻고자 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그러나 그 이른이란 것이 무엇 입니까 ?  이름이란 실체 자신이 아니라 기껏 실체에 붙어 다니는 부수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부수물을 위해 천자가 되여야 하는 것 입니까 ? 볍새가 기껏 깊은 숲속을 찾아가서 보금자리를 친다 해도 실제로 사용 하는 것은  한 나무가지에지나지 않으며 두더쥐가 황하 물을 들여 마신다 해도 그  조그만  배를 채울  이상이야 어찌 마십니까. 자 당신도 그런 말씀 하시지 마시고 돌아가 쉬시지요. 나에게는 천하라는것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아무리 게으름을 피운다 한들 尸祝이 (시축,제사때 제사를 주관 하는 사람이 읽는  글 )  술통이나 도마를 뛰여 넘어가서 대신 할 것이야 없을 것 입니다."  莊子의 逍遙遊를 읽노라면 莊子의 이 Fiction을 조곰은 이해가 된다. 莊子는 환상적인 면이 강 해서 이론 사이에 Fiction을 삽입 하기를 좋아 했다. 許由와 堯 의 이야기도 그가 만들어 낸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가 잊혀 지지 않는 것은 그 이야기 속에 우리에게 남기는 인상이 우리의 삶에 한 진실이 내포 되여 있기 때문 일 것이다. 逍遙編을 읽다 보면 莊子가 우리에게 주는 Message가 무엇이 였을 까에 짐작이 간다. 

또   莊子 , 讓王編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말이 呂氏春秋에 도  적혀 있습니다.  "許由는 穎陽에서 娛(즐거워할 오) 했으며, 而(그리고) 共佰은 丘首(구수산즉고향)를 得(얻을득) 했도다 " 라는 구절이다. 許由는 태고의 현인으로서, 堯 임금 으로부터  천자의 자리를  양도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그것을  마다하며  潁水 북쪽 箕山에 살면서 은둔 생활을  즐겼다고 전해 집니다. 그는 堯 임금으로 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귀가 더러워 졌다 면서 潁川에 가서 潁水로 귀를 씻었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전해 졌습니다. 전형적인 無慾人間  입니다. 그런 許由와 어께를 나란히 한 인물이  共伯 (공국의백작) 이라면 그 역시 無慾의人間 일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丘首라고  하는 곳은 共國에 있는 산 이름 으로서  이것의 이름을  共首 라고 도  부릅니다.  共伯의和(共和)는  14년 이라는 긴 섭정의 세월을 이르는 말인데, 이 섭정후 共伯은 깨끗이  실권을  포기하고  고향인 首丘山으로 은퇴하고  맙니다. 이 글에서는 그냥  得(얻을득) 이라고만  썻는데  여기서 말하려는 得字의  뜻은志(뜻지)를  이루었다 라고 하는 뜻 입니다.  이것을 의역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이라면서  나는  나의 뜻을  바르게 관철 시켰다 라는 것으로  됩니다. 그렇게 하므로서 찬탈자라는 오명 대신  共和伯은  賢人의 면영을  보였다는 것으로 됩니다. 위에서 말한 인간의  전형적인 無慾人 인  許由는 신화적인  인물이고  共伯은 역사적 인물 이라는 것에  유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共和 라고  하는  말에 대하여  잠간 집고 넘어 기 보려 합니다. 황제나 국왕이 군림해서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君主制라고 하는 것에 반하여 제왕이 없는 그것을  共和制라고  부르게  됩니다. 옛날에는 제왕이  없는 정치체제란 감히 생각 해 볼수 없는  것이 었는데, 근대에  들어와서 그와같은  정체의 국가가 외국에 있다 라는 것을 알고 우리도 그것을 채용해  보자 하며  채용하게 되였는데  이것을 영어로  Republic  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도 여기에  이것을 어덯게  번역하면  좋을 까 고심허던  끝에  얻은  말이 共和라는 두 글자 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명을  대한민주공화국이라 이름하며  부르게 된 것도 여기 여에 연우 한 것 입니다.

그런데 기원전  841년  으로부터  동  828년 까지 14년간 周 나라에는 제왕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외냐하면  厲王(려왕)이 무장반란세력에  의하여  타국으로  도망 갔었기 때문 입니다.  중국에서 제왕이 없던 시절을  이야기 할때는  언제나 이 14년간을  말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史書는 共和 시기라고  이름 했 습니다. 그러니까 제왕이 없든 정치체제는 君主制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共和라 불렀고 역사상 근대에 이르기 까지 중국에서는 한번 밖네 없었먼 시기가 되겠 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들이 쓰고 있는  말의  뜻과는  같으나  그  어원에 있어서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史書에 쓰여 있는대로 共伯이 和 하며 한 정치라는 의미에서  共 과 和 자를 따와  만들게 된 글자 였던 것 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共和라는 말은  사실은 옛부터 있었던 말을 쓰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共和 14년을 史記에 따라 달리 해석하며 이런저런 해석을 하고 있는데  즉  唐 의 司馬貞 의 史記라든가 史記索蘊 에서 竹書記年에 쓰여진 "共和伯王位干"이라는 글을 인용하며 王位를 찬탈 했다고 했는데,   이 干(간)이라는 字는  찬탈이라는 의미로  해석 했기 때문이다. 만약 王國維(1877-1927)의 "今本竹書記年疏證"에 쓰여진 것과 같은 생각을 , 즉  " 共伯和 天子事攝行" 이라는 구절을(陳瞬臣의 中國歷史에서 인용, 講談社文庫)  呂氏春秋 라든가  莊子가 같은 생각으로 보았 다면  국가 존망시에 혼란을 막아 섭정을 잘 했다고 하는 칭찬을  하며   찬탈이라고 할수있는 여지는 전연 없다는 주장을 할수 있다고 보겠 습니다. 어쨋던 共和伯에 의하여 帝位는 厲王의 아들 에게 선위 되였고 그는 찬탈자라는 불명에를  벗고  賢人이라는 명예와 더불어 전형적인 無慾人 이 됩니다.  潁川洗耳圖는  이러한 無慾人을 그리워하며  기리는 동양 선비들의 흠모가 배여 있기에 이런 그림을 걸어 놓고 보며 그를 모방 하려 했고  본 받으려 했던 교육적인 목적이 담긴 그림이었다 보면  되겠습니다. 오늘 날  우리주변의 정치인 행정 관리들 모두가 이런 無慾人들이  되였으면 하며  꿈을 꾸어 봅니다.  無慾人을  추구하려는  근대 유럽 철학 사상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들은  쇼펜하우어, 니이체, 뒤를 이어  킬게고르 , 싸르트르. 하이데거 등 많은 철학 윤리사상가 들을 들수가  있겠습니다. 

*首丘初心

여우는 죽을 때 자기가 살고 있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 고 하는 四字成語. 근본을 잊지않으려는 일심으로  타고난 초심을(인간의본질) 간절히 그리워 하면서,,,,,,,,,,

이 首丘 비유는 共伯의 전형적인 無慾心을 그리는 우리들의 마음 가짐을 촉구 하려 하는

의미가 담겨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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