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읽는법

2019.06.14 15:46

김일하 조회 수:960

8, 廬山瀑布: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는 그림을 통칭하는데. 廬山은 江蘇省(강소성) 九江縣(구강현) 남쪽에 있는 名山으로 경치가 빼어나  廬山眞面目이라 불리운다. 즉 중국최고의 빼여난 경치라는 말이 된다.

盛唐詩人 李白의 詩에,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長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何落九天

誰把天紳掛半空

上疑銀漢河疑虹

謫仙於此吟長句

萬丈光焰較孰雄

햇살이 향로봉에비쳐서 붉은색 연기를 피우네/ 멀리 보이는 폭포는 마치 한줄기 긴 강물을 걸어 놓은듯/ 곧 바로 떨어져 내리는 긴물은 길이가 삼천장/의심할 여지없다 이것 구천 은하에서 떨어지는 물이 아니면 어디서/라며 시작하는 이 詩는 李白 아니고서는 쓸수 없는것, 

이 七言絶句를 읽고 있노라면 나도모르게 폭포의 아름다움에 매려되고 만다. 옛 선비들은 이런 폭포그림을 걸어놓고  李白 시인을 흠모하며 그와같이 아름다운 시를 써 보려고 공부에 정진 했을 것이다. 

 

9. 霸橋騎驢(패교기려);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 나귀를 탄 사람이 다리위를 건느는 모습을 그린 그림.

이다리는 중국 陝西省(섬서성) 長安 동쪽에 흐르는  패수라는 강에 걸쳐진 다리로 능수버들이 한없이 늘어선 주변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옛 長安 사람들이 친구, 정인을 이별 전송 할때이 다리께로 나와 이별의 상징 버들가지를 꺽어주며 송별 했던 곳 이다. 唐나라 정승 鄭계에 얼킨 이야기로서  어떤날 사람들이 근래에 지은 詩중에 어떤것이 있습니까 라는 말에, 詩思라는것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 나귀등에 앉아 패교를 건늘때나 쓰게되는 것이지 요즘같이 바쁠때,   詩는 무슨 詩 .한 고사에서 비롯된 그림이다. 평양시 보통강 가에는 수양버들이 10리에 걸쳐 심어져 있다(1991년 평양에서 모았던 장관).

산버들 가지를 꺽어서 님에게 보내오니 ,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십시오, 밤비를 맞고 새잎이 나거든 (애련하게 피어있는 그모양이)나인듯 생각해주십시오.  선조때, 함경도 鏡城 기생  洪娘이 北海評事 孤竹 崔慶昌과 이별할 때, 永興까지 딸아 왔다 배웅하고 咸關領에 이르러 저문날 비 내리는 속에서 이 노래와 버들가지를 함께 보낸 것. 함경도에는 능수 버들이 없어  산버들을 꺽어 보냈던 것이리라. 옛 사람들은 이렇게 여.유있는 낭만을 즐겼던 것일까 ?

 

10. 栗里寄松(율리기송);

      陶淵明(도연명)이 고향 栗里 돌아와아침 동쪽울타리 밑에 심어놓은 국화꽃에서 이슬을  받아 먹을 갈고 소나무 등걸에 앉아 見南山 하며 유유자적하며 살았다는 고사에서 비롯한 그림. 이때, 소나무는 반드시 赤松인 경우가 많다.  商山四皓 赤訟子를 상징해서일까 ?

陶淵明 하면  歸去來辭를 연상한다. 그의 대명사라고 할수 있기 때문이다.

 

歸去來(귀거래);

 

사회를 떠나서 개인은 없다;

社會가 先이냐 ? 個人이 先이냐 ? 라고 하는 문제는 鷄가 먼저냐  卵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이것을 논리적인 문제로 취급본다든가 ,아니면  역사적으로 취급해 본다 해도, 또는 반대로 다른 어떤 생각을 갖이고  일방적인 주장을 한다해도 이 논리가 바로 해결  될수가 없다는 것이다, 외냐하면 그것이 사회와 개인간의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서로가 보합(補合)할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 바침하는 영국의 形而上學的 詩人 Jhon Donne(1573~1631) 의 유명한 말을 빌린다면  "어떤 인간이라 해도 섬(島)은 아니다(완전할수는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대륙의 한조각(一片) 본토의 일부인 것을" 이 말의 뜻은 이세상에 완전히 독립된 주체는 있을수가 없고 누구든 그가 소속되여 있는 곳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것, 또 다른 고전적 개인주의자  J. S  Miren 의 말에 의하면 "설혹 많은 사람이 뫃였다 하드라도 자체만을 그들이 다른 종류의 실체(實體)로 바뀔수는 없다" 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인 것은 , 이들이 거기 뫃이기 이전부터 거기에 있었다든가, 거기 뫃이기 이전부터 어떤 실체로서 존재 했다던가 하는 생각을 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벳속에서 탄생, 이 세상에 나오자 마자 부터 이 세상은 우리들에게 어덯게든지 작용을 하기 시작하여 우리들이 단적으로 생물적통일체로부터 사회적 통일체로 점차로 바뀌어 가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시대, 또는 그 이전인 역사이전시대로 하던지 간에 , 어떤 계급의 인간이라 하드라도 하나의 사회속에  출생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실체 전부는  그의 출생시기로 부터 그가 속한 사회에 의해 꾸며질수 밖에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타고날때 갖이고 나온유전적인것도 아니고 그가 나서 자랐던 집단으로 부터의 사회적 획득물(社會的獲得物) 이라는 것이다. 언어, 환경에 따라서 그의 사상 ,성격 이 결정 된다는 것이고 , 그러기 때문에 그가 어렸을때 부터 갖이고있던 관념 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어 갖인 것이라는 것이다. 알려진대로 사회로부터 유리된 개인의 언어 라든가 정신은 있응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Robinson Cruse 라는 소설이 우리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인간을 창조 할수 있는가를 상상해 보려고  한 시험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 이 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실패로 돌아 갔다. 외냐하면, Robinson은 추상적개인(推想的個人) 이 아니었고, York 출신의 영국인 이 었다는 것과 자신의 Bible을 버리지 못했던 개인 이기 때문 이었다.  이 소설속 에서  그는  그의 하인이 된 Friday와 같이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 하는데 그것이 구태의연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것과 관계되는 것으로 Tostoepsky의 소설 "악령(惡靈)속의 주인공의 이야기로서. 이 주인공은 자기의 완전한 자유를 입증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하고 마는데, 그것은 자살만이 개인이 할수있는 가능한 유일의 완전한 자유로의 행위였다고 하며 다른 모든 행위라는 것들은 모두가 사회에 소속된 것의 하나라는 것이 라는 것이다. (전재한 글은 What is history라는 E.H Carr의 著, 淸水幾太郞 譯, 巖波新書 )

이세상에서 진짜 자유스러운 인간이 만들어 질수 없다는 것은 이미 말 했던것과 같다.  陶淵明의 歸去來 를 이야기 하는 전제로 삼으려고 글의 서두에 길게 이야기 할수 빆에 없었던데는 나만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 질듯 하여 다음글에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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