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소개했던 그의 詩 " 飮酒 " 그 5, 에서 감지 할수 있었던 처럼 陶淵明은 전원생활에 만족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게 관계를 떠났던 그로서는 여러가지 감개가 있었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그렇드시 처음부터 은둔자는 아니었다는 것은 그의 행적이 충분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曾祖父 陶侃이 이루었던 훈공과 권력을 꿈 꾸어 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인데, 이는 그의 雜詩 속에 실린 그의 詩로서 역역해 집니다. 그의 詩 두어편을 읽어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1,

億我小壯時 내 어릴때를 되돌아 보면

樂無自欣子 즐거움도 없었고 혹 있었다해도 참여하지 않았다

猛志四海逸 맹지를 사해에 떨쳐 보려는 것 일념

XX(羽揚)遠X(飛)思 두 큰 날개를 활짝 펴서 먼 하늘을 날아 보려고(羽揚,飛라는 글자도 의역한 글자

그2,

日月人擲去 세월이 사람을 버리고 떠나가누나

志有騁人獲 뜻이 있어 달려가려해도 사람이 따라오지 않으니

此念悲慘懷 이런 생각에  슬프고 참담함을 생각하면 

요(새벽요)終靜能(不) 밤이 다 지나도록 마음을 잡을수가 없도다

특히 이 두번째 詩는 그가 은둔한후에 썼던 것 입니다.(잘못된 풀이가 있었다면 용서를)

그럼에도, 우리가 陶淵明의 詩를 사랑하고 읽게 되는것은 처음부터 그를 우리들을 초월한 별세계의 인간 이었다면 우리들은 그의 詩에 공감 하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 입니다. 그의 증조부 陶侃(도간)은 溪蠻이라 불리우는 소수민족출신이 었는데, 이런 배경을 갖인 자는 군대이외에는 상층계급으로신분을 상승시킬수가 없는데, 陶淵明은 그의 작품속에서 직접 자신의 신분에 대하여 말 했던 부분은 찾아 볼수 없습니다. 위의 詩 1 에서 "猛志 " 라고 표현했던것은 정치무대에 뛰여들어 높은 지위에(임금의 다음가는, 증조부가 그랬드시)올라 세계를 한번 움직여 보겠다는 , 또는 보겠다는 바램이 아니었나 볼수 있겠는데, 기혹되였던지, 역사적으로던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뜻을 펴 보겠다는 마음을 갖인 인간이 어디 陶淵明 뿐 이 였을까 하는 그림을 그려 봅니다. 陶淵明은 詩文을 남겼기 때문에 그의 일생이 어떠했던가를 우리는 알수가 있었다면, 그와 비슷하게  어떤면에서 더 훌륭하게 산 사람들도 많았던 것일 것 입니다. 즉 한사람의 陶淵明 에는 十人 , 百千人의  陶淵明이 있었을 것 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속에서 당시 인간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 즉 전원생활, 식생활 서민들의 사고 감정등을 알수 있게 된것은 그의 커다란 공이라 할수 있는 것이 만약 우리들에게 正史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면 서민들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孫恩의亂 정도였지 않았을까 생각 됩니다. 孫恩의 死후 그의 후계자 盧循(노순)이  廣東 으로 부터 長江에 들어 왔으나 安帝復位 七年(411)  劉裕에 의해 격파되고 맙니다. 劉裕가 선양이라는 이름으로 帝位에 올라 宋朝( 우리가 아는 宋은 아니고 南六朝중 마지막 왕조) 를 시작 했는데 이것이 陶淵明이 57세 나던 때 였고, 劉裕는 그 2년후에 죽습니다.陶淵明은 63세 까지 살다 죽엇는데,  때는 宋 文帝 元嘉 四年(427) 이었습니다. (陳舜臣의 중국역사제 4권, 講談社 본문과 다를수 있음)

이글을 마치면서 일본 소설 平家物話 의 첫글 " 祈園精舍의 鐘소리 諸行無常의 울림이 로다.沙羅雙樹의 花色 盛者必哀의  理를 나타 내누나 "  인간의 삶이란 無常, 無常 입니다.

*오늘의 無常關, 思想으로서의 無常關을 다음글로 말해 보겠습니다.

https://youtu.be/y0WWIwy3Y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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