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직원’이라는 럭키 서플라이의 직원들이 새해를 앞두고 연말모임을 갖고있다. 2019년 황금돼지

고객 80%가 150여 도매상…꾸준한 거래에 더 책임감
직원은 우리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직원투자에 최선
올해는 어려운 환경많아 고객과의 동반 고통분담에 초점

뉴욕 델리나 식당에서 아침이나 점심 혹은 투고를 하는 한인들은 한 번쯤은 럭키 서플라이(대표 신범조)에서 구매한 일회용 용기와 컵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업종의 첫째, 둘째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성장한 럭키 서플라이를 방문, 창업 및 성장 스토리를 들어봤다.

■ 창업 및 성장
비닐봉투, 포장재료 등을 취급하는 럭키 서플라이(Lucky Supply. Inc)는 2002년 창립됐다. 회사 설립 당시 신범조 대표가 지닌 것은 ‘형님이 비상금으로 주신 1,000달러가 전부’였다. 그리고 건축 일을 하던 형이 사용하던 밴 트럭을 얻었다. 


이후 150 스퀘어 피트의 다른 집 개러지 렌트부터 시작하여 점차 창고 면적을 넓혀 나갔다. 지금 이전 창고가 브루클린 지역 창고인데, 면적이 넓어서 중국 회사와 같이 계약을 해서 나누어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계약 만료로 이전하게 되었을 때, 4만 스퀘어 피트 창고를 계약하려 했으나 갑자기 다른 회사에 그 건물이 팔렸다. 그래서 은행에서 가능한 론만큼의 창고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BBCN 은행에 근무하던 김동욱님의 많은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장소를 구입하게 되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고 신범조 대표는 말한다.

현재 MASPETH 지역에 소재한 럭키 서플라이의 8개 덱은 새벽부터 바쁘다. 새벽4시와 4시반에 트럭 2대가, 5시~6시 사이에 다른 트럭 3대가 딜리버리를 위하여 출발한다. 5시경이면 어김없이 DART 트레일러가 물건을 내리기 위해 대기하고, 물건을 사기위해 5시 전에 오는 고객도 있다. 새벽 5시면 4개의 창고 문이 동시에 올라가며 일의 시작을 알린다. 출근 시간은 5시 반이지만 자발적으로 5시 이전에 출근하는 직원이 많다.

럭키 서플라이는 퀸즈, 롱아일랜드, 브루클린, 스태튼 아일랜드, 뉴저지 등 어디나 쉽게 갈 수 있는 길목이자 공동묘지 앞에 자리하고 있다. 불평하는 이웃조차 없으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장소다.

이곳은 7만3,000스퀘어 피트 면적에 작업장과 스탁장, 사무실로 나뉘어져 있다. 일회용 컵, 컨테이너, 플라스틱, 페이퍼 백 등의 포장재료 1,900여종의 아이템이 차곡차곡 1,2층으로 분류 보관되어 있다. 가정은 물론 일상생활 어디서나 사용되는 모든 종류를 취급하다보니 원스탑 샤핑이 가능한 것이 강점이라, 창고 없이 도매를 하는 고객들이 많다.

럭키 서플라이 고객 80%가 홀세일 도매상, 20%가 델리를 비롯한 소매상이다. 고객 분포는 한인 고객 40%, 타인종 60%다. 파킹장에 빈 콘테이너 6개를 두고 사용 할 정도다. 창고 도·소매업은 창고면적이 매출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넓은 면적이지만 아이템이 많고 입·출하량이 많다보니 항상 자리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신범조 대표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자리 맞춤형 오더 및 관리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7만3,000 스퀘어 피트 공간의 아래층, 위층 및 파킹장의 콘테이너까지 물건 두는 곳이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입력되어 있다.

새벽 4시 8개 덱이 열리고 물건을 싣고 나르는 트레일러들이 움직인다.


■성장 비결
현재 럭키 서플라이가 거래하는 도매업체가 150여개 정도이다. 럭키 서플라이의 성장 비결은 이렇다.
“이 업종의 특징은 고객들과의 릴레이션십이 첫 번째다. 웬만하면 거래선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경기가 위축되고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상황에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약하고자 한다. 가격이 파격적이면 선택 할 이유가 됐다. 두번째는 델리 그로서리가 24시간 오픈 하는 곳이 많은데 착안하여 야간이나 새벽에 딜리버리를 했던 것이 주효했다. 트래픽이 없고, 티켓 받을 일도 적으며 밤낮으로 일을 할 수 있어서 서로 좋은 일이었으며, 부지런 하다는 평판도 덤이었다.

세번째는 유능하고 성실했던 동반자와의 만남이다. 신범조 대표와 안중욱, 두사람은 근 2년동안 7일내내 하루 20시간가량 일을 하며 회사의 기초를 다졌다.

“네번째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비용 절감을 하려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구입 및 개발의뢰를 통해 사무실 인원을 최소화하고 세일즈 퍼슨이 직접 오더를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세금을 적극적으로 납부해 온 것도 결과적으로 지금의 창고를 살 수 있게 한 발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전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믿음을 얻고자 노력’ 한 것이다. 물건 가격의 변동이 많은 업종이다 보니 가격이 오를 때는 따라 올려야 하지만 가격이 내릴 때 내려주지 않고 그대로 받고 싶은 것이 본심이다. 하지만 끝까지 고객들과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채찍질 한 것이 고객들로부터 믿음으로 되돌아오고 성장하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

■직원은 가장 중요한 자산
“직원들은 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직원 급여를 비용 쪽보다는 투자로 인식하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투자하겠다는 방향을 지향해 왔다. 일례로 4년 전 새로운 창고로 이사하여 자금 순환이 원활치 않은 가운데서도 은행 론을 사용하여 직원들에게 여름 휴가비 지급을 시작 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성장의 비결은 고객들이 믿고 성원해 주도록 한 사람들 즉 럭키 서플라이 직원들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금년의 위기만 잘 극복해 낸다면 장기적인 면에서의 안정이 올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회사가 견디어 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인 구매로 원가 절감을 통해 그 수익이 고객에게도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

신범조 대표는 ‘고객이 번창해야 회사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어 같이 살아남기 위해 올 한 해도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회사 개업후 좋은 사람들·수많은 행운 함께 해”
■ 신범조 대표 인터뷰

“올 7월이면 미국에 온 지 만 20년이다. 미국에 와서 라이프&헬스 라이선스를 취득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다. 무역회사 다니는 선배를 따라 텍사스 및 루이지애나까지의 남부 코스와 정션 시티 및 시카고까지의 중부와 북부 코스로의 트럭 운전 조수로 일했다. 이후 진한식품에서 트럭 운전과 세일즈, 델리 그로서리 매니저, 그레이스 팜에서 물, 달걀 등의 세일즈로 근무 했다.”

신범조 대표는 이렇게 미국에서 2년 반을 보냈지만 한국에서 나름 전공분야에서 일하던 것과는 너무 차이가 많았고, 무엇보다 혼자 벌어서 가정을 꾸려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덕수상고 졸업후 조흥은행에서 2년 근무한 후 단국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군 제대 후 1984년 5월 연세대학교 재단에 입사, 대학을 야간으로 변경하여 졸업한 후 1998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러나 99년 미국으로 오면서 학업은 중단되었다. 그에게는 15년간 연세대학교 재단에서 예산, 결산, 세무 업무 및 자금관리를 담당한 경력이 있었다.

“모든 것이 생소한 환경과, 영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도 없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늘 행운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어떤 망설임 없이 정한 회사의 이름이 럭키 서플라이( Lucky Supply.Inc)다.
“사업 시작 전이든 후든 열심히 살다보니 한국이 그립다거나, 친구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못 해본 것 같다. 아내는 애들을 돌보고, 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업무 분담을 했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2~3년간 한 번도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고 밤새워 구슬을 끼워가며 묵묵히 내조 해준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는 그다.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한 회사에 수많은 행운이 함께했지만 최초의 행운은 염화선 형제다. 가진 돈도 아닌 카드 론으로 8,000달러를 선뜻 건네 준 그 고마움은 지금도 문득 문득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고. 

“그 돈으로 150스퀘어 피트의 차고 반쪽을 렌트하고, 몇 백달러 어치의 물건만 사다가 몇 천달러 어치의 물건도 살 수 있었다. 회사의 종자돈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안중욱씨와의 만남. 현재 K&L PAPER를 운영 중인 이 영 사장, 창고를 나누어 쓰게 해준 전 코리아 페이퍼 라 사장님, 6,000스퀘어 피트의 브루클린 창고 주이시 랜드로드, 이외 수많은 행운이 함께하였으나 가장 큰 행운은 어느 고객이 해준 말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럭키 서플라이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절대로 회사를 바꾸지 않을 거다.”

이 말이 더욱 더 큰 책임감과 더 잘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고 한다.


2019년 황금돼지 새해를 맞이하여 그동안 럭키 서플라이에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고객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7년 전 자그마하게 출발했던 우리 회사가 현재의 성장된 회사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우리를 믿고 끊임없이 사랑과 성원을 보내주신 고객들의 힘이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목표에 성장이라는 단어는 극히 생소했었으며, 지금도 성장을 위한 특별한 정책이나 행동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고객들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믿고 실천해 나갈 뿐입니다.

금년에는 고객과의 동반 고통분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럭키 서플라이는 설립시부터 고객님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익, 그럼으로써 공유 할 수 있는 이익의 산정을 토대로 함으로써 상품을 팔기 이전에 믿음을 먼저 드릴 수 있는 회사가 되도록 힘써 왔습니다. 그러한 초심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올해에는 최저임금 인상, 재료비 상승, FOAM 재료로 만든 상품 사용금지 등등으로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특히 많은 인원을 고용해야 하는 고객들과 우리와 같은 업종은 치명적인 타격이 올 것이라 예상합니다. 럭키 서플라이는 그 충격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고객들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객들의 성원과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큰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직원들과 그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제 가족 및 처가 식구들 특히 신범생 형님께 큰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Lucky Supply, Inc 신범조 대표 드림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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