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도밭의 멧돼지 **

2017.11.02 07:34

김승훈(41) 조회 수:291



비텐베르크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울창한 숲과 밭 사이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하얀 모래 언덕 위에 세워져 ‘흰 산’이라는 뜻의 비텐베르크(Wittenberg)란 이름이 붙었다. 중부 유럽의 작은 마을의 하나로 남아 있을 뻔한 이곳에 16세기 초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프레데릭 대공이 여기다 대학을 짓기로 한 것이다. 이 대학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두 명의 인물을 배출했다. 하나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햄릿이고 또 하나는 1,000년 동안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기독교를 두 조각낸 마틴 루터다. 마틴 루터는 원래 법학도였다. 광산업을 하던 아버지가 루터를 변호사로 만들기 위해 에르푸르트 대학에 보냈지만 그는 1505년 어느 날 들판에서 폭풍을 맞는다. 바로 옆에 있는 나무가 벼락을 맞아 박살나는 것을 본 그는 겁에 질려 살려만 주면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수도사가 될 것을 맹세한다. 무사히 살아난 그는 맹세한대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원에 들어가며 비텐베르크로 옮겨 1512년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다. 작은 시골 마을 교수로 일생을 마칠 것으로 보였던 루터의 삶과 유럽 역사를 뿌리부터 뒤흔든 사건이 1517년 발생한다. 성 베드로 성당 증축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로마 교황청은 면죄부를 팔아 이를 마련키로 하고 요한 테첼을 독일로 파견한다. 테첼은 “돈 통에 금화가 딸랑 떨어지면 구원받은 영혼은 천당으로 팔짝 뛰어 오른다”는 구호로 면죄부 판매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다. 그러나 루터는 죄를 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며 면죄부가 죄를 사하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허위라는 내용 등을 95개 항목에 걸쳐 조목조목 지적한 후 이를 성채 교회 문에 붙인다. 이 글은 교회 권력에 맞서 힘을 키우고 있던 세속 영주와 면죄부 판매라는 이름으로 독일 돈을 로마로 보내는데 대한 독일 국민들의 반감 등이 겹쳐지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시골 대학 교수의 헛소리 정도로 이를 무시했던 교황청은 1520년 루터가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모든 기독교인은 사제고, 진리는 성경 속에만 있다면서 교황과 사제의 권위를 무시하자 “멧돼지가 포도밭을 침공하고 있다”며 회개하지 않을 경우 파문할 것을 경고하는 교황령을 내리고 비텐베르크 지역 지배자인 프레데릭에게 그를 더 이상 보호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1521년 보름스 회의에 소집된 루터는 회개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처형될 것이란 협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주장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여기 서 있다. 그 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다”(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는 말을 남겼다 한다. 루터의 고집에 분노한 교황청은 그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한다. 프레데릭 대공이 그를 납치하는 방식으로 잡아 바르트부르크 성에 가둬두고 보호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여기 있는 동안 신약을 원 그리스 말에서 독일말로 번역하는데 이 번역물은 근대 독일어 탄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모순을 지적한 것은 루터가 처음이 아니다. 그보다 100년 전 체코의 얀 후스가 대동소이한 주장을 펼쳤으나 그는 종교 재판에 회부돼 화형당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후스는 실패하고 루터가 성공한 주 원인의 하나로 1450년 탄생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들고 있다. 이로 인해 값싸고 빠르게 사상을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됐고 이 때문에 교황청은 루터 주장 전파를 막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루터는 농민 탄압에 앞장서고 유대인과 여성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교회 개혁에 그만큼 큰 공을 세운 인물도 드물다. 가톨릭교회는 사실상 그의 개혁 주장을 거의 수용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올 일도, 오늘의 미국도 없었을 것이고 미국 원자탄으로 일본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31일은 루터가 95개 조를 교회 문에 못 박은 지 500년이 되는 날이다. 비텐베르크 시는 교회 벽에 동판으로 95개조를 새겨 그를 기리고 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그의 메시지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오늘 날 교회는 그의 가르침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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