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인간正讀] 
포스코청암상 받는 베트남 첫 사회적 기업 대표… 한국계 호주인 지미 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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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호주 국적을 갖고 있는 지미 팸은 24세 때 여행 가이드로 베트남에 왔다가 거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는 알 수 없는 열정에 이끌려 그 아이들을 위해 살기로 했고 결국 베트남 최초의 사회적 기업 ‘코토’를 세웠다. 코토 학생들은 지미 팸(사진 한가운데)을 “우리 형님(오빠)”이라고 부른다. /코토 제공
21년 전인 1996년 호주 여행사 가이드였던 지미 팸(Pham·당시 24세)은 베트남 관광 가이드를 맡게 됐다. 그가 단체 여행객들과 호찌민 시내를 둘러볼 때 코코넛을 팔던 아이들이 다가와서 "곤니치와" 하고 말을 걸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를 일본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8세 때 호주로 이민 간 그는 베트남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더듬더듬 이야기를 나눴다. 몇 살이냐, 학교 안 다니냐 같은 이야기를 건네던 그와 아이들은 금세 친해졌다. 여행 가이드인 지미가 늘 아이들이 몰리는 관광지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느 날 거리에서 지미는 엄마한테 빌고 있는 베트남 여자아이를 목격했다. 그 아이는 "엄마, 엄마, 내일은 더 잘할게요"라며 울며 빌었고 엄마는 그런 딸을 쇠파이프로 때리고 있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도박 중독인 엄마는 10대 딸에게 관광객 상대 구걸을 시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내가 저 아이들의 미래를 바꿔줄 것인가, 아니면 '아, 너무 비참해. 호주에 가서 쟤들을 위해 기부라도 하자'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이었죠." 그는 베트남에 남기로 결정했다. 거리의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며 영어와 요리를 가르쳤다. 지금까지 총 1000명가량의 베트남 거리의 아이들이 지미 팸이 세운 학교를 졸업한 뒤 요리사와 바텐더, 호텔리어로 취업해 어엿한 생활인으로 살고 있다.

베트남 최초의 사회적 기업 '코토(KOTO)' 대표인 지미 팸(45)은 올해 포스코청암재단이 수여하는 포스코청암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3월 29일 서울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그는 상금 2억원을 받는다. 지난 4일 베트남 하노이 외곽에 있는 '코토 트레이닝 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베트남 최초의 사회적 기업

―'코토(KOTO)'는 무슨 뜻입니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맡아 가르친다(Know One, Teach One)'는 뜻이에요. 제가 그 모든 아이를 다 가르친 게 아닙니다. 저는 처음 몇 명이 자립하도록 도왔고, 그 아이들이 다음번 아이들을 가르쳤죠. 지금 코토 직원 중 62%가 이곳을 졸업한 사람들이에요.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주지 않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은 또 다른 아이에게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죠."

―왜 하필 요리를 가르친 건가요.

"저는 호주에서 관광학을 전공했어요. 여행 가이드로 사람들을 식당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음식이야말로 가장 전수하기 쉬운 기술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특히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거리의 아이들에게는요. 제가 만난 아이들은 거리에서 물건을 팔지 않으면 공장에 갈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들이 번듯한 직장에 가려면 영어와 요리를 가르쳐야 했지요."

―어떻게 요리를 가르쳤습니까.

"저는 요리를 못해요. 제가 가르치지 않습니다. 1999년 아이들과 첫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을 때는 제가 가르쳤죠. 호주에서 자랄 때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서 샌드위치쯤은 만들 줄 알았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만든 샌드위치는 정말 맛없었어요. 하하하."

1996년 베트남 아이들과 처음 만난 지미는 3년 반 준비 끝에 1999년 하노이 시내에 15㎡(약 4.5평)짜리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다. 거리의 아이 9명과 함께였다. 이 가게에서는 참치와 달걀, 햄 샌드위치와 밀크셰이크, 주스 같은 간단한 음식을 팔았다. 이듬해 호주에서 트레이시 리스터라는 여자 요리사가 찾아왔다. "호주에서 당신 기사를 읽었다.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각종 빵과 케이크 굽는 법을 비롯한 진짜 요리를 가르쳐주며 3년을 함께 일했다. 그녀는 이후 호주로 돌아가 베트남 요리책 4권을 펴내기도 했다.

2000년 11월,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났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다가 지미의 샌드위치 가게에 들른 것이다. 지미는 "지금까지도 왜 클린턴 대통령이 우리 가게에 와서 점심을 먹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갑자기 방문했습니까.

"클린턴 대통령이 그때 우리 가게 근처 하노이 문묘(文廟)에 들렀어요. 수천 명이 몰려들었고 저도 나가서 그 인파를 구경했죠. 그런데 갑자기 검은 차가 서더니 어떤 사람이 내려서 '여기가 코토냐'고 물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미국 대통령이 점심 먹으러 올 것'이라고 해요. 30분 후 CIA가 들이닥치더니 선반이며 주방을 다 뒤져가며 경호 준비를 하더군요. 클린턴이 실제로 왔을 때 저와 우리 아이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미의 아이들이 만든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떠났다. 지미는 "그 두 달 전 베트남 영문 잡지에 우리 가게 이야기가 커버스토리로 실린 적이 있다. 아마도 미국 대사관 사람들이 그 기사를 읽고 대통령에게 방문을 권한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美대통령 방문에 이은 악성 루머

―그 뒤로 고생이 시작됐다면서요.

"모든 사람이 '왜 미국 대통령이 저 작은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을까' 의심했죠. 베트남 정부는 저를 CIA 요원이라고 생각했어요. 매일 베트남 경찰이 찾아왔죠. 당신 누구냐, 왜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느냐, 무슨 돈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 이후 4년 동안 저에 대한 베트남 정부 조사가 이어졌습니다. 경찰이 우리 집을 뒤지고 제 이메일을 압수수색했어요. 저희 아이들도 모두 조사했죠. 제가 마약 중독자라는 소문, 아이들을 중국에 팔아 장기매매를 한다는 소문,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소문도 돌았어요."

―견디기 힘들었겠네요.

"아이들 때문에 견딜 수 있었어요. 그때 우리 가게에 아이들이 20명쯤 있었는데 경찰 조사에서 한결같이 '지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당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라고 답했거든요. 너무 힘들었지만 저에겐 신념이 있었어요. 제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이유가 저 아이들이라는 신념 말이죠. 그런 신념이 없었다면 벌써 오래전에 이 일을 그만뒀을 거예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다녀간 뒤로 코토는 유명 레스토랑이 됐다. 덴마크 여왕 내외, 호주 총리, 세계적 기업가들이 베트남에 들를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결국 베트남 정부는 작년 7월 코토를 베트남 최초의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하기에 이르렀다. 지미는 "샌드위치 가게를 시작한 지 18년 만에 결국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토 이후 베트남에 사회적 기업이 400개 정도 생겨났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400개가량이 '불법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인증해주지 않거든요. 그나마 작년에 저희가 인증받은 뒤 20여개 사회적 기업이 추가 인증됐습니다. 우리가 아직 인증받지 못한 사회적 기업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지요." 현재 코토는 하노이에 레스토랑 2곳, 호찌민에 1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케이터링 회사도 두고 있다. 하노이에 있는 '코토 트레이닝 센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다.

코토 트레이닝 센터에서는 6개월마다 60~70명을 새로 선발해 2년 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출신으로,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16~22세 남녀 중 선발한다. 2년간 이들의 의식주와 교육에 드는 비용은 1인당 2억동(약 1000만원). 이들이 2년 과정을 수료하는 비율은 90%가량이고, 수료자가 5성급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 등에 취직하는 비율은 100%에 이른다. 일부는 코토로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치는 스태프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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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거리의 아이들과 첫 샌드위치 가게를 연 이듬해인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지미의 가게를 찾아 베트남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②이어 덴마크 여왕 내외가 코토 레스토랑을 찾는 등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잇따라 방문했다. ③코토 트레이닝 센터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지미 팸. /코토 제공
아이들 한 명당 교육비 1000만원

1996년 거리의 아이들을 돕겠다고 마음먹은 지미는 호주로 돌아가 베트남 관련 책을 2권 읽은 뒤 3개월 만에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주머니에는 단돈 200달러가 있었다.

―처음 거리에서 찾은 아이는 누구였습니까.

"후이라는 17세짜리 남자애였어요. 길에서 그림엽서를 팔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호객을 하고 있었죠. 한 명 두 명 아이들을 모아 먹여주고 재워주고 영어를 가르쳐줬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직업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세운 게 코토가 됐죠."

―아이들이 처음에 의심하거나 하지 않던가요.

"저를 속이기도 했어요. 제가 아이들 살 집을 구해줬는데 그 집주인에게 월세를 더 받으라고 꼬드겨서 수수료를 받아내기도 했지요. 친구들은 저에게 '네가 네 돈 쓰며 아무리 돌봐줘야 쟤들은 널 봉(fat turkey)으로 생각할 뿐이야'라고 충고했죠. 어떤 아이는 제가 맡겼던 금목걸이를 전당포에 팔고는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죠. 내 재킷을 훔쳐다가 전당포에 판 아이도 있었어요. 그때 저는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하나의 커다란 전당포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미래가 없고 지금 당장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만 있는 상태였어요."

―배신감이 들지 않던가요.

"12㎏짜리 코코넛 바구니를 메고 하루 16시간 동안 20㎞씩 걸으며 일하던 아이들이에요. 거리의 아이들에게는 거리의 법칙이 있는 법이죠(Street kids are streetwise). 그걸 배신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어떤 열정을 진짜 갖고 있다면, 오로지 그 열정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코토를 만들고 18년이 지났어요. 그때 내 물건을 전당포에 팔았던 아이들도 다 멋진 곳에 취직했어요. 저는 아이들이 실망스러운 짓을 해도 나의 의지와 신념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나는 너희들에게 뭔가 약속한 뒤 잊어버리는 관광객이 아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습니다."

현재 코토 트레이닝 센터 신입생 경쟁률은 7대1에 달한다. 여러 가지 과정과 면접을 통해 뽑는데,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2년을 수료한 뒤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가족과 사회를 위해 기여할 자세가 돼있는지 여부다. 고아, 착취당하는 아이들, 인신매매됐던 아이들 등을 하노이와 호찌민 거리에서 만나 코토로 데려온다.

생존 기본법도 모르는 아이들

―영어는 왜 가르칩니까.

"영어가 서비스업에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영어를 할 줄 알아야 레스토랑이나 5성급 호텔에 취직할 수 있어요. 또 호주를 비롯한 외국에서 유학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러려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하고요." 현재 코토 출신 중 20여명이 호주에서 유학 중이고 60여명이 외국에서 취업해있다.

―과목 중에 '생존 기본법(Life Skills)'이 있더군요.

"직업 교육만 한다면 6개월에 끝낼 수도 있어요. 2년이나 가르치는 것은 살면서 건강한 결정을 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아이들에게 성교육도 해요. 예전에 16세짜리 여자아이가 원치 않는 임신을 했는데 당시 베트남엔 그런 아이들이 받을 만한 의료서비스가 없었어요. 상의 끝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로 하고 병원에 갔어요. 복도에 앉아 있는데 아이가 수술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지미, 왜 이렇게 아파요? 이런 거였어요?' 저는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어요." 지미의 눈시울이 빠르게 붉어졌다. "우리는 마약 재활치료, 분노 조절, 돈 쓰고 관리하는 법도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1달러씩 벌다가도 좀 큰돈이 생기면 바로 도박장에 가거든요."

코토는 아이들을 모집할 때 남녀 비율을 5:5로 지킨다. 여성 장관이 1명밖에 없을 만큼 가부장적 사회인 베트남에서 의식적으로 성비를 맞추려는 시도다. 지미는 "여기서 배운 여자아이들이 헤드 셰프, 디렉터, 총괄 지배인이 되기도 했고, 그것이 이 사회와 여성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믿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몰랐던 위대한 분

지미의 한국 이름은 문용철이다. 부친(1995년 작고)은 1966년 말 베트남에 사업차 정착했다가 지미의 어머니를 만나 문용희·용철 남매를 낳았다. 이후 베트남전 종전을 앞둔 1974년 가족들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주했다가 77년 다시 사우디아라비아로 옮겼다. 사우디에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은 부친은 1980년 가족을 호주로 이민 보내고 홀로 지내다가 59세에 병을 얻어 숨졌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아버지와는 8세에 헤어졌고, 또 그때까지도 집에 잘 머물지 않는 분이었어요. 호주로 이사한 뒤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가 제가 21세 때 한국대사관을 통해 아버지를 찾아냈어요. 여전히 사우디에 계셨는데 사업이 어려워져 고생을 하고 계셨어요. 우리는 전화와 편지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어요. '용철아, 한국에 네 이복형이 있다. 형을 만나봐라. 좋은 형이 돼줄 거야.' 그러고는 1995년 6월 어느 날 새벽에 낯선 목소리의 남자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 그가 '용철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고 했어요. 형이었어요." 지미의 눈이 다시 붉어지더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그해 12월에 아버지가 호주로 와서 우리랑 같이 살기로 약속했었는데…"라고 했다. 그는 형과 함께 사우디로 가서 부친의 시신을 한국으로 운구해 와 장례를 치렀다. "그때 고모와 고모부를 처음 만났는데, 내 모습과 걸음걸이가 아버지와 똑같다며 더 슬퍼하셨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원망했습니까.

"아니에요. 아버지가 그때 가족과 함께 베트남을 떠났기 때문에 지금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때 아버지가 우리를 버렸다면 저는 시클로(베트남 자전거 택시) 운전사가 됐을지도 몰라요. 나이 들면서 그런 깨달음을 얻습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것 말이죠. 저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아보면 제가 지금 이 일을 하게끔 제 인생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저를 더 극진히 사랑해 주셨거든요." 그는 누나 결혼식에 맞춰 작고한 부친을 생각하며 노래를 한 곡 썼다. 그 제목은 '우리가 몰랐던 위대한 사람(The Greatest Man We Never Knew)'이었다.

―한국에서 주는 상이어서 더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항상 저의 일부가 한국이라고 느껴왔어요. 아버지의 피가 저에게 흐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서 저를 인정해 준 거잖아요. 아버지께 이 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코토 서울'에 대한 계획도 갖고 있다. 탈북 청소년을 비롯한 한국의 소외된 10대들을 돕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 제 이야기를 읽고 '그래, 당신에게 한국에서도 기회를 줘보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코토 소개 책자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실려있다. 지미야말로 "사람들이 덜 간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은" 사람일 것이다. "이 길을 걸으면서 상심과 비통, 고난과 눈물의 나날을 겪었지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제게 '나에게 미래를 줘서 감사하다(Thank you for my future)'라고 말해요. 그거면 됐어요. 그게 제 인생이에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17/20170217016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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