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서로 다른 상반된 처신>

옛날에 골목을 누비며 자잘한 물건을 파는 황아장수 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형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낮선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의 갈림길에서 형제는 각자 다른 길로 헤어져 물건을 팔기로 했다.

동생은 동쪽으로 갔다.
멀리서 북치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여 가까이 다가간 동생은 깜짝 놀랐다.
모닥불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알몸’이었다.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일제히 동생을 쳐다보았다.
동생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정신이 퍼뜩 났다.
“이럴 일이 아니지. 까짓것 저 사람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이 뭐야.”

동생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곤 마을 사람들의 춤동작을 흉내 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동생의 뻣뻣하고 어색한 춤에 깔깔대며 좋아라 웃었고, 그 덕분에 동생은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다.
동생이 썩 마음에 든 촌장은 동생의 물건을 모두 사주기로 했다.

한편 반대 방향으로 간 형도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나체로 춤추는 모습을 보았다. 
놀란 형은 버럭 화를 내며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 예의와 도덕을 모르는 짐승 같은 놈들아. 너희들이 부끄러움을 안다면, 내가 가져온 옷을 사서 입어야 …”
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분노에 찬 마을 사람들은 형을 끌어내 두들겨 팼다.

동생은 물건을 모두 팔고 우정을 얻었지만, 형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머리가 깨지고 피가 났다.

<생각과 이해방식을 바꾼다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상 역시 바뀐다.>

위 일화는 ‘육도집경(六度集經)’이란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의 입장을 두둔할 것이다.

그럼에도 도덕과 예의를 강조하는 불경에서 알몸이 되어버린 동생의 행동을 지지하는 일화를 실은 것이 참으로 궁금했다.

하지만 곧 동생의 당혹스런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사람들은 한번 자신의 의견을 굳혀 놓은 뒤에는 그 믿음을 정당화하는 일에 생애를 건다. 
세상을 보는 자신의 시각만이 유일하게 옳은 길이라고 확신한다.

도덕이란 생활의 경험이 쌓이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생활에서 서로 다른 도덕관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의 현상이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면 여러 정답이 나올 수 있고 전혀 이상하지 않다.

타인을 해치지 않는 형태의 도덕심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진정한 ‘관용’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세상은 오로지 하나의 세계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세상은 수천만 가지가 된다.

우리가 가진 세상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은 세상이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선에 영향을 준 것은 우리의 내면이고,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기로 결정한 방식이다.

생각과 이해방식을 바꾼다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상 역시 바뀐다.
우리가 세상사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세상을 달리 보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주관적인 마음대로 본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쉽게 하나의 길에 고정되어 버린다.
서쪽만 보고 있으면,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없다.

나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는 우리가 가진 위대한 능력 중 하나이다.

다른 생각이나 관점에 마음의 문을 열어 보자.
다른 사람의 의견에서 티끌만한 진실이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해 보자.
그 순간 당신은 인내심 강하고, 더 너그럽고, 보다 합리적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모셔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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