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퀴아오의 은퇴 무대 **

2016.04.11 05:40

김승훈(41) 조회 수:1657

파퀴아오, 브래들리 압도…심판 전원일치 판정승
 

'복싱의 성지(聖地)'라 불렸던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는 최근엔 종합격투기(UFC)로 더 유명한 곳이 됐다. 복싱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팬들은 팔꿈치 안면 가격까지 허용되는 종합격투기 유혈극에 더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10일 열린 세계복싱기구(WBO) 웰터급 매치는 스포츠 팬들에게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의 '원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린 경기였다. 1만4000여 명이 들어찬 경기장에서 '이것이 진정한 복싱이다'라고 전 세계를 향해 외친 이는 '복싱의 살아있는 전설' 매니 파퀴아오(38·필리핀)였다.


미국에서 열린 경기였지만, 관중은 미국 국적의 브래들리가 아닌 "매니"를 계속 외쳤다. 팬들의 응원에 답하듯 파퀴아오는 5세 어린 브래들리를 향해 전매특허인 전진 스텝에 이은 연타를 쉴 새 없이 날렸다.

10일 은퇴전을 마친 파퀴아오가 아내와 찍은 사진. 그는 “아내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내 곁에 있었다. 하느님께 영광을”이란 글을 붙였다. /파퀴아오 트위터

시간끌기용 클린치는 12라운드 경기 내내 거의 볼 수 없었다. 파퀴아오는 439번의 펀치 가운데 122개를 적중시켰고, 7라운드와 9라운드에는 잇따라 브래들리를 다운시켰다. 경기 결과는 심판 전원일치 파퀴아오의 판정승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미국 폭스스포츠는 "파퀴아오가 은퇴를 다시 생각해야 할 정도로 멋진 경기를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마지막 12라운드 시작 공이 울리자 파퀴아오와 포옹을 나눈 브래들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경기 내내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고 평했다.

파퀴아오의 전설은 1998년 WBC(세계복싱평의회) 플라이급(50.80㎏) 챔피언이 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IBF 주니어페더급(55.34㎏), WBC 수퍼페더급(58.97㎏), 라이트급(61.23㎏) 등에서 챔피언 벨트를 수집하던 파퀴아오는 2010년 수퍼웰터급(69.85㎏) 타이틀을 따내며 사상 처음으로 8체급을 석권한 복서로 역사에 기록됐다. 12년 동안 약 20㎏을 불려가며 자신보다 5~10㎝ 큰 상대들을 때려눕히며 거둔 기록이었다.

파퀴아오의 경기가 열리면 그의 조국 필리핀에서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을 선포하고, 여야가 정쟁을 멈춘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필리핀에선 이번에도 '난리'가 났다. 로이터는 "극장과 공원, 심지어 군부대까지 필리핀 전체가 파퀴아오의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했다"고 보도했다. 파퀴아오가 승리하자, 필리핀 대통령실은 "그가 필리핀인들을 다시금 자랑스럽게 만들었다"는 논평을 내놨다.


 필리핀 재선 하원의원인 파퀴아오는 경기에 앞서 "이 매치 이후 정치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파퀴아오는 오는 5월 필리핀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은 18년간 복싱계를 지배한 레전드의 퇴장을 이야깃거리로 삼았지만, 은퇴 경기 후 파퀴아오가 남긴 말은 간단했다. "복싱 팬들께 감사드립니다(Thank you boxing fans)."

성적은 곧 돈으로 연결됐고, 파퀴아오는 지난해 1845억원을 벌어들이며 미국 포브스 선정 수입이 가장 많은 운동선수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작년 수입만 따지면 수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거의 두 배다. 파퀴아오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린 선수는 작년 그에게 패배를 안긴 미국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3460억원)뿐이었다.


▲ 가난한 빈민촌의 아들 파퀴아오

1978년 필리핀의 작은섬 민디나오 키바웨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파퀴아오는 전형적인 가난한 아이였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산 그는 5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잡일을 돕던 파퀴아오는 12살에 길거리에서 담배를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필리핀 최대 도시인 마닐라로 떠났다.  이미 키바웨에서 2달러를 받는 거리의 복서 생활을 했던 파퀴아오는 사제가 되려고 했다.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복서가 됐다. 이름을 알렸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했다.

/연합뉴스

2년이 지난 16세 때 파퀴아오는 정식으로 프로 경기에 나섰다. 타고난 스피드와 노력을 바탕으로 경기를 펼치는 파퀴아오를 당해낼 자는 없었다. 폭발적인 능력을 발휘한 파퀴아오는 미국으로 건너가며 명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를 만났다. 이후 파퀴아오의 경기력은 더욱 완벽해졌다.  복싱 사상 최초로 8개 체급 타이틀을 획득하는 새 역사를 썼다.

그리고 파퀴아오는 8개 체급에서 10개의 타이틀을 획득했고, 복싱 사상 처음으로 4개 체급에서 연속으로 타이틀을 따는 기록을 세웠다. 그가 상대했던 선수들은 모두 쟁쟁하다. 전설의 복서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스카 델 라 호야(미국), 후안 마뉴엘 마르케스(멕시코), 안토니오 마가리토(멕시코), 미누엘 코토(푸에르토리코) 등을 차례로 격파하며 세계 최고의 복서가 됐다.

태풍 절망 속 1억 필리핀인에게 희망을 준 사내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가 2013년 11월 마카오에서 열린 세계복싱기구(WBO) 웰터급 타이틀전에 출전, 1년 5개월 만에 치른 복귀전에서 미국의 브랜던 리오스를 누르고 챔피언의 왕좌를 탈환했다.

이날 파퀴아오의 승리는 초강력 태풍 하이옌 피해 복구를 위해 땀을 흘리던 필리핀 타클로반 주민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였다. 타클로반 주민들은 이날만큼 시름을 잊고 챔피언을 연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경기 날 타클로반 시내 체육관에는 프로젝터를 이용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복싱 경기를 보기 위해 주민 4000여명이 운집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은퇴 경찰관 이네고 플로레스씨는 파퀴아오를 응원하기 위해 태풍이 몰아친 이후 처음으로 집을 나서 이날 체육관을 찾았다. 그는 “파퀴아오가 경기할 땐, 모든 필리핀 국민들이 경기를 지켜본다”고 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태풍 피해가 극심한 타클로반 지역 5만5000개의 가정 가운데 4만여 가정이 태풍으로 주택 피해를 입었다고 WSJ는 전했다. 낮 시간 동안 대부분의 가정은 무너진 집을 수리하며 복구작업에 한창이다. 하지만 파퀴아오의 복귀전이 열린 이날만은 예외였다. 사람들은 시내 체육관을 비롯해 광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대규모 응원전을 펼쳤다.

파퀴아오는 이번 경기를 앞두고 "패배할 경우 은퇴를 고려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재기전에 자신의 복싱 인생을 걸었다. 맞붙은 상대 브랜던 리오스도 호락호락한 선수가 아니었다. 31승 1무 1패의 전적을 지닌 라이트 웰터급 강자로, WBA 라이트급·WBO 라티노 라이트 웰터급 챔피언을 지냈다. 지난 3월 첫 패배를 당했을 때까지 무패 행진을 이어온 미국의 저명 복서다.

필리핀 마닐라 시민들이 길거리에 모여 자신들의 영웅 파퀴아오를 응원하는 모습. /AFP

필리핀 주민들은 파퀴아오가 내지르는 주먹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국민 영웅의 승리를 염원했다. 파퀴아오의 승리가 확정되자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팩맨"을 외치며 길거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영웅의 복귀에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퀴아오의 복귀전은 태풍 피해로 시름에 젖은 전 국민을 하나로 이었다. 파퀴아오 고향인 제너럴산토스 시 주민들은 "파퀴아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타클로반 희생자들을 위해"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고 아시아뉴스통신이 전했다.

경기 전 파퀴아오는 “이번 복귀전을 태풍 희생자들에 바치겠다”며 승리상금 1800만달러(191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를 마치고서는 “타클로반에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방송을 지켜보던 타클로반 주민들은 복싱 영웅의 방문 약속을 접하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고 WSJ는 전했다. 현지 경찰 지돈 이스라엘(35)씨는 “파퀴아오는 단순한 복싱 선수가 아니라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그를 만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WSJ는 “파퀴아오의 일방적인 승리는 필리핀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켰다”고 평가하며 그의 경기 장면을 1면 사진으로 소개했다.

파퀴아오 주먹이 별로다 싶더니…

파퀴아오는 2015년 WBC(세계복싱평의회)·WBA(세계복싱협회)·WBO(세계복싱기구) 웰터급(66.68㎏ 이하) 통합 타이틀전에서 메이웨더에게 12라운드 심판 전원 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메이웨더는 48전 전승 행진 기록을 이어갔다. 경기가 끝난 뒤 파퀴아오는 평소처럼 화끈한 공격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해 "3주 전 훈련 도중 어깨를 다쳤다"고 설명했다. 경기를 미루는 방안까지 고려했으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치료가 효과를 보여 예정대로 경기에 나섰다고 했다.

문제는 그가 경기 전날 미국 네바다주 체육위원회의 서면 조사에서 자신의 부상 상태를 묻는 항목에 '부상이 없다'고 체크한 것이다. 파퀴아오는 경기 직전 도핑 문제가 없는 소염제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위원회에 요청했으나, 위원회는 전날 서면 조사에 부상 관련 내용이 기재되지 않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위원회 측은 "선수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모든 것을 밝히게 되어 있다"며 파퀴아오에 대해 벌금이나 일정 기간 출전 금지 등의 제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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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복서 파퀴아오 "동성애자는 동물만도 못해" 발언 논란

필리핀 출신으로 '8체급 석권의 전설'을 이룬 세계적인 복서 매니 파퀴아오(36)가 “동성애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그의 오랜 스폰서인 나이키가 결별을 선언했다.

파퀴아오는 최근 필리핀 현지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동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은 동물보다 못하다"고 말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구의 80%가 카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는 동성 결혼이 금지돼 있다.

/파퀴아오 인스타그램

주요 후원사였던 나이키는 파퀴아오와 후원 계약을 즉각 중단한다고 밝혔다.

나이키 측은 18일(현지 시각)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에도 반대해 왔고, LGBT(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권리를 지원해온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며 " 파퀴아오의 발언은 혐오스럽다. 우리는 더이상 파퀴아오와 관련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파퀴아오는 동성애를 비하한 자신의 발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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