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는 만큼 남는다 **

2016.04.28 08:21

김승훈(41) 조회 수:3517


‘팝의 전설’ 프린스가 지난 주 세상을 떠났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그의 죽음에 음악팬들은 충격과 함께 큰 상실감을 나타내고 있다. 프린스는 천재성을 보인 아티스트였다. 개인적으로 크게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조지 해리슨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기타로 연주하는 걸 유튜브에서 본 후 호감을 가지게 된 뮤지션이다. 그의 죽음으로 신이 내려주었던 재능도 함께 묻혔다. 57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 그가 조금 더 살았더라면 남겼을 음악적 성과와 자취까지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프린스의 죽음을 보며 삶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불과 며칠 전까지 라이브콘서트를 소화했던 그의 급작스런 죽음을 접하니 새삼 “생명은 주머니 속의 유리잔 같다”는 비유가 실감나게 와 닿는다. 주머니 속 유리잔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질지 모른다.

1980년대 미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정신과 의사 스캇 펙 박사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아직도 가야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에서 케이크 먹는 습관을 예로 들며 바람직한 삶의 태도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케이크를 먹을 때 크림과 과일 부분을 먼저 먹는 사람들은 우선 즐거운 일을 한 후 나중에 고통스러운 일을 억지로 해치우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먼저 고통을 겪고 극복하면서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룰 때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고 말했다. 

스캇 펙 박사의 메시지는 ‘마시멜로 이야기’에 나오는 교훈과 똑같다. 마시멜로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당장의 유혹을 이겨냈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장기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대인관계 등에서도 훨씬 성숙함을 보였다. 만족과 보상을 뒤로 지연시킬 줄 아는 태도가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마시멜로 이야기의 핵심이다. 

맞는 말이다. 삶을 준비하고 미래를 위한 기초를 형성해 나가는 시기에는 이런 유보와 유예, 그리고 지연시킬 줄 아는 습관과 태도가 요구된다. 절제할 줄 아는 성숙한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성공하고 앞서 나가는 것을 학교와 사회에서 얼마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형성기를 지나 인생 후반에 접어들어서까지 이런 태도를 고집하는 걸 과연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때쯤이 되면 케이크의 맛있는 부분부터 손을 대도 괜찮은 것 아닐까.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게 지나친 버릇이 되다보면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자칫 숙제만 하다가 떠나는 삶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철저히 즐거움을 절제하고 쾌락은 유예하면서 돈 모으는 것만이 궁극적 목표인양 사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목표달성에는 성공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는 병들거나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것을 보게 된다. 돈과 시간을 쓰는 데도 열정과 욕구, 체력 등이 뒤따라야 한다. 잘 쓸 수 있는 때가 있는 것이다. 

현인들은 ‘현재’와 ‘여기’를 살라고 조언한다. 그렇다고 마구 무분별하게 살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의 욕구를 절제하는 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인생 후반기의 지나친 절제와 유예는 결코 현명하다고만 말할 수 없다. 

젊은 시절 떠나기 힘들었던 조금 긴 여행도 좋고 약간의 호사를 부려보는 것도 괜찮다. 계속 미뤄왔던 새로운 취미생활과 여가를 큰 맘 먹고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죽기 전 가진 것을 나눌 생각이 있다면 너무 막바지 순간으로 실행을 미룰 게 아니다. 

나이 오십 중반을 넘어서면 “안 쓰는 만큼 남는다”에서 “쓰는 만큼 남는다”는 관점모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여기저기 쌓아둔 재산, 그리고 경험과 통계에 의거해 머릿속에서 산정하고 있는 미래시간 가운데 지금 쓰고 있는 돈과 시간만이 온전히 내 소유라는 사실을 프린스의 급작스런 죽음은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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